▲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해외 직구족들의 마음은 바빠진다.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라 불리는 11월의 마지막 금요일이 첫 디데이.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이날은 전통적으로 연말 쇼핑 시즌을 알리는 시점이자 연중 최대의 쇼핑이 이뤄지는 날이다. ‘검다(Black)’는 표현은 상점 장부에 이날 처음으로 적자(Red Ink)대신 흑자(Black Ink)를 기재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블랙프라이데이가 대대적인 세일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 연이어 ‘사이버먼데이, 크리스마스세일, 박싱데이’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사이버먼데이(Cyber Monday)는 추수감사절이 끝난 월요일 회사에서 직장인들이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박싱데이는 미국·영국 등에서 크리스마스 다음날 유통업체에서 상품을 최대 80~90%가량 싸게 판매하는 연말 세일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배송비가 더 들겠다’는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이는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기회만 잘 이용하면 환율, 배송비, 세금 등을 모두 지불한다고 해도 국내보다 50%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살 수 있다. 또 국내에 잘 유통되지 않은 최신 전자제품, 도서, 의류 등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해마다 정해진 기간 동안 세일이 진행되지만 매년 할인 폭은 다르다. 어떤 브랜드가, 어느 정도의 세일 폭으로 할인행사를 진행하는지 쿠폰이나 부가할인 혜택이 있는지를 미리 조사해야 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할 수 있다. 또 인기상품은 금방 매진될 뿐만 아니라 사이즈 단위나 명칭이 달라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직구에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때문에 직구족들은 세일이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해외 유명 쇼핑사이트를 정기적으로 접속해 정보를 모은다. 혼자서 벅찰 경우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정보를 다 수집하고 나면 치밀하게 쇼핑 스케줄을 짠다. 해외 직접 구매시 1인당 면세한도는 15만 원 이하. 한도를 넘지 않기 위해 직구족들은 친인척을 총동원하는 등 나름의 전략을 세운다. 내년 3월 태어날 아기 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처음으로 직구를 해봤다는 이 아무개 씨(여·28)는 “똑같은 상품이라도 사이트마다 신 규회원 혜택이나 쿠폰 때문에 가격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보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면서 “덕분에 국내에서는 30만 원은 족히 지불해야 하는 아기 옷들을 2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금 문제가 걸렸으나 남편 이름으로도 나눠 구입하니 별 탈 없이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고 보탰다.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부탁을 하는 ‘SOS형’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직구과정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영어다. 특히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이상 직구족들은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강 아무개 씨(여·48)는 “평소 온라인 쇼핑을 잘 이용하는데 해외 직구가 워낙 저렴하다고 해 관심을 가졌다. 근데 문제는 영어였다. 주문 버튼이 뭔지도 몰라 해매다 이 나이에 영어사전을 펴고 공부를 했다”며 첫 직구의 경험을 떠올렸다.
강 씨는 “사전으로도 안 돼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는데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가까이 사는 초등학생 조카까지 불러 직구에 성공했다. 이제는 혼자서도 척척 직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때는 영어가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무심코 해외 사이트를 둘러보다 직구에 빠지는 ‘무대포형’도 있다. 워낙 세일 폭이 크다보니 쉽게 ‘지름신’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소 정보를 수집한 것도 아니고 직구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처음엔 다소 불안해 하지만 저렴한 물건 앞에서 이런저런 두려움을 잊어버린다.
직구족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옷을 사려했는데 우리나라와 사이즈 체계가 다르더라. 물어볼 곳도 없고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품절이 될 것 같아 손가락이 가는 대로 결제를 해버렸다. 주소도 코리아만 영문으로 쓰고 나머지는 한글로 썼는데 별 문제 없겠지요?”라는 식의 질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질문에는 “그 정도는 문제없어요”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