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연예계 음지에서 벌어지는 악습 가운데 하나인 ‘연예인과 스폰서의 부적절한 밀착’의 실태는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단장 권익환 부장검사, 합수단)이 에이스저축은행에서 7200억 원의 불법 대출을 받은 고양터미널 시행사 대표 이 아무개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씨의 불법 대출금 사용처를 추적하던 합수단은 그가 5년 동안 강남 일대 룸살롱에서 유흥비로 24억 원을 탕진했으며 120억 원을 들여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까지 인수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 인해 이 씨는 ‘강남 유흥가의 황제’로 군림해 왔다고 한다. 또한 포르셰, 벤틀리 등 고급 외제차 2대를 타고 다녔으며 롤렉스, 피아제 등 고급시계와 명품 가방을 사는 데에도 7억 원을 썼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 씨의 불법 대출금 가운데 일부가 연예인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연예인 A에게 아파트 전세금 명목의 2억 5000만 원과 5000만 원 상당의 BMW 차량을 준 이 씨는 연예인 B에게도 상당한 현금을 건넸다고 한다. 합수단은 이 씨가 연예인 A, B의 스폰서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A와 B의 소속사 측은 모두 이 씨와의 스폰서 관계를 강하게 부인했다. A의 소속사는 “잘 모르는 일”, B의 소속사는 “처음 듣는 얘기”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A의 경우 BMW 차량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A의 소속사에선 “A는 BMW 차량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과거에도 대형 비리 사건이 불거질 때 연루 여자 연예인의 이니셜이 거론된 바 있다. 아니 대형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이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꼭 한두 명의 여자 연예인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이는 연예인 C다. C의 경우 굿모닝시티 분양사기 사건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에게 1억여 원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돼 화제가 된 바 있다. C는 이 외의 몇몇 대형 비리 사건에서도 현금이나 외제 승용차 등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 ‘귀신처럼 돈 냄새를 잘 맡는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 거론된 B는 C와 유사점이 많다. 과거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연예계의 중심에서 멀어진 30대 후반의 소위 ‘한물간’ 여자 연예인인 것. B가 이처럼 사건에 휘말려 물의를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동안 관련 소문들은 심심찮게 들려오곤 했다.
반면 A는 다소 이례적이다.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인데다 잠시 방송 활동을 쉬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 인기가 하락해서, 다시 말해 한물갔기 때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20대 젊은 여자 연예인들 가운데에도 스폰서를 두고 부적절한 만남을 이어가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루머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수사기관의 수사에서 그 실태가 드러난 것은 A가 처음이다.
이 씨가 A에게 3억여 원이나 건넨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B와 C는 비록 지금은 한 물 갔지만 과거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화려한 이력이 있다. 반면 A는 꾸준한 활동을 해온 데 반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보긴 힘들다. 이런 까닭에 A에게 3억 원이면 다소 금액이 많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 씨가 ‘강남 유흥가의 황제’로 군림했을 정도였던 터라 유흥업계에서 그를 아는 이들이 많았다.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연예인 A와 B 외에도 이 씨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여자 연예인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A나 B보다는 다른 연예인들의 이름이 이 씨와 함께 거론되기도 했고, 실제로 그들이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봤다는 유흥업소 관계자도 있었다.
이 씨와 스폰서 관계였던 여자 연예인이 더 있을 수도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합수부가 아직 용처를 확인하지 못한 자금이 3800여억 원으로 전체 불법 대출금 7200여억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나 된다. 추가적으로 연예인에게 흘러간 자금이 드러날 수도 있는 것.
그렇지만 유흥업계 관계자들은 섣부른 추측은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룸살롱에 자주 드나든 것은 물론이고 나이트클럽까지 직접 인수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은 연예인이 더 많다는 얘기다. 결국 이 씨와 친분이 있는 연예인을 전부 스폰서 관계로 볼 순 없다는 것. 씀씀이가 컸기 때문에 그랬는지 유흥업소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 씨의 평판이 좋았다. 연예인과의 금전 거래에 대해서도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일반인이 아닌 나이트클럽까지 인수한 사업가였음을 감안할 때 단순히 연예인에게 돈이 갔다는 이유만으로 스폰서 관계라 볼 순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합수단의 수사는 이 씨가 에이스저축은행에서 불법 대출을 받은 것에 집중되고 있어 A와 B의 경우처럼 스폰서 관계로 의심되는 연예인에 대한 수사까지 이뤄지진 않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관계자는 “연예인과 스폰서의 관계는 이번 조사와는 별개의 사안으로 합수단은 이 씨의 불법 대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A와 B의 실명이 공개돼 연예계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등의 사태까지 진행되진 않을 전망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연예인과 스폰서의 부적절한 밀착 관계’가 허무맹랑한 루머는 아니었음이 밝혀졌고,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음도 일정 부분 확인됐다. 연예인들의 자정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