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에는 서울시가 분위기를 띄웠다.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의 용도지역을 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이 아파트의 용적률은 기존 265%에서 285%까지 높아져 797가구의 일반 분양 물량이 더 생긴다. 조합원 부담금은 그만큼 줄어들고 투자수익률이 높아지므로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조치가 강남권의 다른 재건축 단지도 용도지역을 변경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는 점이다. 예스하우스 전영진 사장은 “둔촌주공 고덕주공 등 다른 재건축 단지 승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얼어붙은 재건축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잇따른 정부의 규제완화 방안 발표로 연말 주택 시장이 다시 ‘눈치작전’에 들어갔다. 규제완화 효과로 매수세가 늘어나면서 집값이 오를지, 반대로 양도세 부담을 던 집주인이 시장에 급매물을 쏟아내면서 오히려 집값이 더 내려갈지 예상하기 어려워서다.
일단 강남 개포주공 등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집주인들은 싸게 팔려고 내놨던 급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올리는 분위기다. 예컨대 7일 대책이 나오자 개포주공 1단지의 한 조합원은 6억 7000만 원에 팔려고 내놨던 전용면적 36㎡ 아파트 호가를 2000만 원 올렸다. 가락시영 아파트 주변 중개업소에도 내놨던 급매물을 일단 팔지 말라는 집주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분위기를 보고 호가를 조정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사려는 사람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강남권 공인중개업소마다 집주인들의 매도 문의만 이어질 뿐 매수 문의는 거의 없다는 게 공통적인 답변이다. 주택시장 침체가 심각해 아직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유럽의 금융 불안이 여전하고 집값이 더 떨어질 전망이 지배적인데 가격상승을 전제로 한 양도세 중과세 폐지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며 “규제완화는 추가적인 급락만 막을 뿐 대기수요자들을 신규 주택시장에 진입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정부 대책이 특별히 주목받는 까닭은 지금까지 규제완화에서 늘 제외됐던 강남을 주요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강남 부동산 시장은 한번 폭발하면 다른 지역으로 파급효과가 커 쉽게 건드리지 않아왔다. 강남 재건축은 집값 상승의 진원지, 혹은 전체 부동산 시장의 선행 지표로까지 통했다. 강남권 규제를 잘못 풀면 자칫 ‘부자 특혜’라는 비판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강남권 규제를 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정부가 지금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각 경제연구소들의 주택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가계대출 규제강화, 미분양 적체 등으로 내년 주택 시장 규모가 9.3%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건설산업연구원이나 주택산업연구원은 내년 주택시장이 서울 수도권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1~2% 오르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정부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본적으로 경기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정부가 몇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고 들썩일 분위기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게다가 국회에서 정부 안이 무사히 통과될지도 미지수다. 다주택자 양도 소득세 중과 폐지와 재건축 초과이익부담금 부과 중지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법 개정 사항이다.
서울시와의 갈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에 대해 서민 주거 안정을 해치는 일방적인 개발 사업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서울시 내부에서 12·7 부동산대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서민 보호 대책 없이 강남발 개발 바람을 일으켜 오히려 서민의 주거 안정을 크게 해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이번에 가락시영 아파트 용적률을 크게 올려준 것은 임대주택이 1400여 가구로 크게 늘어나는 등 달라진 서울시 정책기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리얼투데이 양지영 팀장은 “서울시가 내년 초 서민주거용 임대주택 기준 등을 강화하면, 재건축 사업성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강남 집값이 전체 시장을 이끌던 시대는 지났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강남구(-0.3%), 송파구(-0.9%) 등 강남권 아파트값은 대부분 하락했지만 중랑구(0.6%), 광진구(0.4%) 등 강북지역에선 오르는 곳도 많았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올해 주택시장에서 수도권은 침체됐지만 지방은 과열이라고 할 정도로 뜨거웠고, 수도권에서도 중대형은 침체였지만 소형은 인기를 끌었다”며 “과거처럼 강남 집값을 중심으로 전체 시장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내년에도 부동산 시장은 지역별, 금액별, 종목별로 엇갈릴 가능성이 크므로 세분화해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