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회 품절돼 구입하기도 어려운 연금복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2011년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재정위기 등 대내외 악재를 헤쳐 온 기획재정부 직원들이 요즘 어느 부서가 1년간 가장 눈에 띄는 업적을 남겼는지 선정하는 투표에 들어가면서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일부 정책들은 수상 대상이 될 경우 자칫 지탄이 쏟아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고, 그렇다고 수상 대상에서 탈락한 부서들은 내부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재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각 과에서 정책 효과가 좋았거나 국민들 인지도가 높았던 정책, 실패 위험이 큼에도 과감히 시도했던 정책 등을 뽑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재정부에 출입하는 기자단 170여 명을 상대로 13일부터 투표에 들어갔다. 이 ‘정책 MVP’ 행사는 재정부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박재완 장관이 새롭게 도입한 것이다. 박 장관이 고용노동부 시절 기자단을 대상으로 했던 투표 행사를 발전시켰다.
정책 MVP 투표는 5개 분야로 실시되는데 최고의 영예인 MVP는 ‘정책기획과 효과가 우수하고 국민들의 인지도도 높은 정책’에 주어진다. MVP에 선정된 정책을 내놓은 과에는 트로피와 함께 포상금 150만 원이 주어질 예정이다.
‘창의적인 발상 또는 방법으로 시행한 정책’에는 ‘참신상’이, ‘올해 정책 중 홍보가 뛰어나 많은 국민이 알고 이용한 정책’에는 ‘미인상’이 각각 주어지는데 이 상을 받은 과는 100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된다. 또 ‘시도와 내용은 좋았으나 홍보가 부족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정책’에는 ‘그림자상’이, ‘정책성과는 미흡하였으나 실패의 위험을 안고 시도한 정책’에는 ‘도전상’이 각각 포상금 70만 원과 함께 주어진다.
처음으로 진행되는 정책 MVP 투표에 각 과들이 고심을 거듭해 여러 정책을 제출하면서 모두 23가지의 정책이 후보에 올랐다. 대외경제국에서는 지역별 맞춤형 협력방안 등 ‘신흥국과의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10대 종합대책’과 세계 경제 상황을 분석했던 ‘대외 경제 주요 이슈 분석’을 후보로 제출했다. 공공정책국은 ‘공공기관 실시간 온라인 채용 정보 제공’과 ‘공공기관 고졸자 채용 확대’를, 재정정책국은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의 경제 상황을 정리했던 ‘주요국 해외재정동향 분석 시리즈’를 후보로 올렸다.
국제금융국은 ‘한·일, 한·중 통화스왑 확대’와 함께 외환건전성부담금, 선물환포지션제도 강화, 외국인 채권투자 비과세 폐지 등 ‘자본유출입 변동 완화 3종 세트’를 제출했고, 세제실은 대기업의 변칙상속을 막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 신설’과 ‘수입주류 유통구조 개선’을 후보로 내놓았다. 예산실은 청년전용 창업자금 2000억 원 신설 등 ‘청년 창업 지원 시스템 획기적 개편’과 ‘장애아동 양육 수당 지급’을, 정책조정국은 ‘내수활성화 대책’과 ‘기업환경 개선 대책’ 등을 내놨다.
FTA(자유무역협정)국내대책본부는 중소기업 FTA 지원을 위한 ‘FTA 닥터’, 재정관리국은 300여 개 예산낭비신고센터를 운영한 ‘국민과 함께 하는 예산낭비 대응’, 경제정책국은 2014년까지 복지담당 공무원을 7000명 확충키로 한 ‘복지전달체계 개선대책’ 등을 제출했다. 복권위원회의 경우 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연금식 복권 도입’을 후보에 올렸다.
각 과들은 이러한 정책을 후보로 내놓으면서 눈길을 끌기 위해 각종 설명 자료까지 덧붙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정부 기자들에게는 5개 분야를 선정하는 투표용지만 2장, 각 후보 정책들에 대한 설명 자료만 30장이나 되는 묵직한 투표 관련 자료가 주어졌다.
▲ 박재완 재정부 장관. |
연금식 복권은 올해 7월 기존의 팝콘 복권을 대신해 도입됐는데 매주 630만 매(63억 원)가 전량 판매되고 있고, 일부 판매소에서는 몇 주 후 당첨되는 연금식 복권까지 품절되는 사태가 빚어질 정도로 인기다.
연금식 복권 열풍이 다른 복권 판매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2011년 복권 매출은 당초 목표치인 2조 5518억 원을 6000억 원 초과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연금식 복권의 경우 정책기획과 효과가 우수하고 국민들의 인지도도 높은 정책이라서 MVP 조건에 부합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연금식 복권이 MVP가 되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재정부가 해왔던 다른 정책들이 묻힐 우려가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연금식 복권 외에 일부 다른 정책들은 과연 이것을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내부 지적에 직면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외경제국의 ‘대외 경제 주요 이슈 분석’, 재정정책국의 ‘주요국 해외재정동향 분석 시리즈’, 정책조정국의 ‘내수 활성화 대책’ 등이다.
‘대외 경제 주요 이슈 분석’과 ‘주요국 해외재정동향 분석 시리즈’는 세계 경제나 각국 경제상황을 분석한 자료로 어떤 성과를 이뤄낸 정부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내수 활성화 대책’의 경우 재정부뿐 아니라 다른 부처들과 함께 한 96개 정책과제를 뭉뚱그려 넣은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는 재정부의 업무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후보들도 나름대로 재정부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재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책조정국이나 대외경제국의 경우에는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고, 세계 경제 흐름을 분석하는 일을 한다. 이들 업무의 고유성을 감안하면 재정 동향 분석 시리즈나 내수 활성화 대책들이 후보가 될 수 있다”면서 “다만 재정부에서 이런 정책이 잘 된 정책이었다고 대외적으로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교육과학기술부나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의 경우 이름만으로도 업무의 고유 영역이 드러나기 때문에 정책 MVP를 선정하는 행사를 해도 논란이나 무리가 없다. 반면 재정부는 경제정책을 포괄하다보니 재정부만의 정책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업무들도 적지 않다”며 “박 장관이 제안한 정책 MVP가 과거 고용부에서는 의미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재정부에 적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