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춘호 농심 회장. |
국내 먹는샘물은 매년 10%의 성장을 기록하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중 ‘제주삼다수’는 판매 1위, 점유율 50%(매출액 약 1770억 원)라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1998년 첫 판매부터 농심이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와 계약을 맺고 13년간 전국 유통을 담당해왔다. 그 결과, 제주삼다수는 농심 음료사업의 80%를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당장 내년 3월, 농심은 제주삼다수에 대한 유통권을 내놔야 할 상황에 처했다. 지난 12일 제주개발공사는 농심에게 판매협약 해지통지서를 보낸 것. 매년 공사 측이 정한 구매계획 물량을 이행하면 이듬해 판매권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방식으로 계약된 터라 사실상 ‘영구계약’으로 여겼는데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물론 갑작스런 변화는 아니다. 올 들어 제주도 내에선 농심의 유통 독점을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불공정 계약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결국 도의회가 근거 조례를 직접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변경된 조례에 따르면 제주삼다수 유통권을 민간 사업자에게 맡길 경우 반드시 경쟁 입찰을 거치도록 했다. 그간 논란 속에서 계약 기간을 5년, 3년, 1년으로 줄이면서 대처를 해왔는데 이번엔 아예 계약 해지통보가 이뤄져 농심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주도개발공사 관계자는 “계약을 맺은 1997년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먹는샘물 시장이 지금처럼 성장하지도 않았을 때라 당시는 독점 계약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조례 개정으로 유통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제주도민의 이익 증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새로운 방식으로 일반 사업자들에게 입찰 기회를 제공할 예정인데 아직까지 참가 자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입찰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니 롯데칠성 등 다른 기업의 참여도 있을 수 있다”면서 “만약 상황이 변하면 삼다수의 가격 변동도 따를 수 있다. 유통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할 순 없으나 가능성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심 관계자는 “제주삼다수가 전체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현재 12일 제주개발공사로부터 받은 서면을 면밀히 검토 중이다. 계약서에는 문제가 없었던 만큼 좋은 쪽으로 결정이 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동작구 신대방동에 위치한 농심 본사. 농심이 내년 3월 제주삼다수에 대한 유통권을 내놔야 할 상황에 처했다. 여기다 라면업계 1위 신라면의 입지도 위협받고 있다. 김미류 인턴기자 kingmeel@ilyo.co.kr |
하지만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도 전부터 가격 논란에 휩싸이며 평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기존의 신라면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비슷한 제품으로 고가로 편법판매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이에 농심은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을 담고 있는 완전식품에 가까운 라면’이라는 광고를 내보내면서 프리미엄 라면임을 강조했다.
초기엔 이런 농심의 마케팅이 성과를 보는 듯했다. 출시 한 달 만에 9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면 블랙의 대박행진은 거기까지였다. 한 달이 지나자 신라면 블랙을 찾는 소비자들이 뚝 떨어졌다. 매출도 자연스레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출 60억 원 이상은 돼야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였지만 출시 2개월 만에 적자를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도 신라면 블랙을 휘청거리게 한 주 요인이 됐다. 공정위는 지난 6월 ‘신라면 블랙’이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1억 5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결국 농심은 판매부진과 공정위의 판결에 신라면 블랙 판매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신 회장의 야심작 신라면 블랙은 출시 4개월 만에 사라졌다.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신라면 블랙이 판매되고 있으나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재판매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신라면 블랙 실패에 이어 ‘하얀 국물의 반란’은 신 회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과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은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무한 질주를 이어가며 올해의 대박 상품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신라면과 안성탕면 등의 매운 국물로 국내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농심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평도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12월 초에는 ‘나가사끼 짬뽕’이 일부 이마트 매장에서 한시적이긴 하나 신라면 판매를 앞질렀다는 소식도 전해져 농심의 진짜 위기를 맞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지난 2분기 중 라면시장의 70.5%에 달했던 농심의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은 3분기 들어 68.1%로 떨어지기도 했다.
농심 관계자는 “라면시장에서 농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브랜드 대 브랜드로 보면 차이가 크다. 멀티 제품으로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지 몰라도 위협까지라고 볼 수는 없는 실정”이라며 “타사가 1등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는 하지만 지엽적인 수치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래 농심을 이끌어갈 동력이 없다는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식습관 변화로 인해 라면시장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프리미엄 과자시장에서도 딱히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반적인 업계 분위기다. 성장정체기 속 잇단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신춘호 회장이 어떤 방법으로 위기를 헤쳐 나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