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무안의 작은 마을에 18년 동안 손수 가꾼 집에서 유유자적 살고 있는 박종현(57) 씨가 있다. 자연 바람으로 긴 머리를 말리는가 하면 산 속에서 무술 동작을 수련하는 모습까지 영락없는 도인 같아 보인다.
그의 진짜 직업은 도예가로 가난해도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사는 '행복한 선비'가 되기 위해 선택한 삶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청빈낙도의 삶을 방해(?)하는 말썽꾸러기들이 있었으니 웰시 코기 '춘향이'와 고양이 '파키스탄', '경자', '흰둥이', '초코', '네로'다. 아침 요가 좀 하려고 하면 품속으로 파고들어 방해하는 경자, 도자기 좀 구울라 하면 황토 가마에 들어가서 꼼짝도 안 하는 춘향이까지 종현 씨 못지않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도반들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할 것 없이 지치기 쉬운 한여름 무더위. 아니나 다를까 9살 노견인 춘향이가 요즘 들어 부쩍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종현 씨는 춘향이를 시원한 물에 목욕시키기로 하는데 어쩐 일인지 물을 틀자마자 36계 줄행랑을 치기 바쁜 춘향이.
알고 보니 4년 전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올 때부터 물과 막대기에 대한 공포가 있었단다. 하지만 사랑으로 돌본 끝에 고무대야에 받은 물에 몸을 담그는 목욕 정도는 가능해졌다고. 그런 춘향이를 볼 때마다 종현 씨 마음이 애잔해진다.
종현 씨에게는 오래된 단짝이자 연인이 있다. 종현 씨 보다 두 살 연하의 미나 씨로 오늘은 미나 씨가 오는 날 그녀와 함께 종현 씨가 모처럼 외출에 나섰다. 꽁냥꽁냥 사이좋은 고양이들과 달리 나 홀로 외로운 춘향이를 위해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멀리 땅끝마을까지 가서 데려온 꼬물이의 이름은 '옹기'다.
돈 부자 대신 시간 부자가 된 종현 씨에게는 삶의 지론이 있다.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삶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반려동물들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녀석들이 천둥 번개가 쳐도 평안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됐다고.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녀석들의 몸보신을 시켜주기로 한 날. 화덕에 조기를 굽자 냄새를 맡은 고양이들이 하나 둘 몰려든다. 살코기를 발라 동물들부터 챙기는 종현 씨. 평범한 일상을 보물처럼 귀하게 빚어내는 종현 씨와 춘향이, 그리고 고양이들의 여름나기를 만나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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