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SKC 최신원 회장, SK케미칼 최창원 부사장, SK(주) 최태원 회장, SK엔론 최재원 부회장 | ||
최재원 부회장의 대표이사 취임은 SK가의 4형제가 본격적으로 그룹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최재원 부회장은 SK텔레콤 전략지원부문장 및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분식회계 및 소버린 사태로 인해 그룹이 어수선한 가운데 고종사촌형인 표문수 SK텔레콤 사장과 함께 오너일가 일괄퇴진 방침에 따라 경영에서 물러났었다.
이후 광화문에 개인 사무실을 내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중 SK엔론으로부터 영입제안을 받고 자문역 부회장을 맡으며 경영에 참여했다. 주변에서는 최 부회장의 복귀가 경영일선에 나서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동반 퇴진한 표문수 전 사장이 이미 SK텔레콤 비상임 경영고문으로 경영에 복귀한 뒤였다.
당시 최 부회장도 이를 의식한 듯 ‘몇 번 고사했지만 엔론측에서 영입에 적극적이었다’는 식의 얘기가 SK주변에서 흘러나왔다. SK텔레콤 재직시절 신세기통신 인수합병 등에서 보여준 뛰어난 협상력과 재무기획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SK엔론의 지분이 엔론과 SK 간에 50 대 50이던 것을 최근 SK가 1% 더 확보해 경영권을 확실히 한 것도 최재원 부회장의 ‘솜씨’로 알려지고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 최재원 부회장의 대표이사 컴백으로 표 전 사장을 빼곤 SK오너들의 친정체제가 SK사태 이전보다 더욱 강화된 셈이다.
이들 사촌 4인방은 소버린 사태를 겪을 때 SK케미칼 지분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바 있다. 2003년 3월까지도 SK케미칼 지분은 최태원 회장이 6.84%, 최창원 부사장 1.24%, 최신원 회장이 0.41%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해 7월 최재원 부회장이 SK케미칼 주식 40만2천7백70주를 매입해 지분을 2.27%로 끌어올렸다.
이에 최창원 부사장도 주식매입에 뛰어들어 올해 5월 6.48%로 지분을 늘렸다. 최 부사장과 최신원 부회장의 0.94%를 합하면 최태원 회장의 지분 6.84%를 앞섰다. SK케미칼의 지분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것은 지분구조상 최창원 부사장이 주식 수를 늘리기만 하면 SK케미칼, SK건설이 최태원 회장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는 베이스캠프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최재원 부회장도 SK케미칼 지분 2.27%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태원-최재원 형제의 지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올해 5월 최재원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SK케미칼 주식을 모두 최창원 부사장에게 매각하면서 최창원 부사장 지분은 10.32%로 늘어나 1대주주에 등극하게 되었다.
최재원 부사장이 지분을 최창원 부사장에게 넘긴 이후부터 SK그룹의 분가설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SK측은 그룹 분리는 없다며 가볍게 넘기고 있다.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때문에 성급하게 사들인 것을 정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지분이 확실히 분리되거나 분가의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제 모두가 경영전면에 나서게 되면서 각자의 영역찾기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은 SK생명을 미래에셋에, SK텔레텍을 팬택앤큐리텔에 매각했고, SK증권도 매수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대신 인천정유를 인수해 에너지사업을 강화할 예정이다.
SK케미칼은 지난 7일 기존 유화부문을 분리해 SK석유화학이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 4월 SK제약을 SK케미칼로 흡수한 뒤 정밀화학과 생명화학을 주력사업으로 남기고 부가가치가 낮은 유화부문을 분리해 경영실적을 높이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선 이를 소그룹 체제의 시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신원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SKC도 8월에 2차전지 사업을 분할해 SK모바일에너지를 설립했다. 최신원 회장은 SKC와 SK텔레시스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최재원 부회장의 SK엔론도 9개 도시 가스공급회사의 지주회사로 최 부회장이 영역을 다지기에 적합한 곳이다. 지분구조와 상관없이 경영능력을 시험받는 위치에 선 것이다.
SK가의 형제들은 평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당분간 형제간에 자기몫을 두고 크게 갈등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이 그룹의 수장이 된 것도 사촌간에 ‘합의’해 정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 1대 회장을 지낸 최종건가에선 2대 회장인 최종현가에 재산을 위탁했던 것인 만큼 최종건가 명의로 돼 있는 지분이 적다는 게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사촌 중에 SK 지분이 제일 많은 최태원 회장의 재산도 그의 개인 재산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최태원 회장도 계열분리설이 나올 때마다 “분가라기보다는 전문경영인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분가한다고 해도 지분 정리에 필요한 거액의 현금이 오너들에게 없다. 사촌 전원이 경영일선에 나선 SK그룹의 사촌간 동업 모델이 향후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