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최근 기업인수합병(M&A)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른 교원공제회가 삼양식품 지분 인수에 성공하고 나서 내세운 슬로건이다. 실제로 이번 삼양식품 지분 인수전엔 일본 라면업체인 닛신식품 등 외국자본이 참여해 국내 라면업계 2위를 지켜온 삼양이 외국계 자본에 팔려갈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교원공제회의 지분 인수로 국내 라면회사 중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삼양은 국내 자본의 울타리 안에 남게 됨 셈이다.
그러나 교원공제회의 투자 방식에 대해 업계에선 “잿밥에 더 관심이 크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삼양 지분 인수를 두고 “식품사업 개발에 대한 투자보다는 ‘돈 불리기’에 주력할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교원공제회측도 인정하고 있다.
이번에 교원공제회가 인수한 삼양 지분 27.66%는 종전까지 신한금융그룹 소유였다. 삼양이 화의를 졸업한 지 6개월이 넘은 시점에서 ‘은행이 타회사 발행주식 1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는 은행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신한금융그룹이 지분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삼양 지분 인수를 통해 교원공제회는 국내 라면업계 2위 삼양의 1대주주가 됐다. 삼양의 특수관계인 지분(23%)과 우호세력(20%)을 고려할 경우 경영권에는 큰 변동이 없을 전망이지만 여하튼 교원공제회는 삼양식품의 최대주주 자리에 등극한 셈이다.
이번 인수전에서는 일본 닛신식품 외에 국내업체인 한일시멘트와 사모투자펀드(PEF) 등이 관심을 보였다. 특히 한일시멘트와 PEF는 삼양 소유의 대관령 목장을 대단위 관광 리조트 단지로 조성하는 개발사업을 눈여겨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삼양 지분 27.6%를 차지해 단일 최대주주로 떠오른 교원공제회가 리조트 사업에 군침을 흘릴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삼양의 큰 자산 중 하나인 대관령 목장을 서둘러 관광리조트 사업용 부지로 전환하는 것은 삼양의 식품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M&A계 큰손으로 자리매김한 군인공제회의 자산규모가 5조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총 12조원의 자산을 가진 교원공제회는 덩치에 비해 M&A 및 금융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최근 기업인수합병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교원공제회의 행보에 대해 증권업계에선 ‘군인공제회의 투자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기업인수합병전에 파트너로 나서 큰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건설업 등 부동산 개발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전례가 있다. 때문에 교원공제회가 군인공제회를 벤치마킹하면서 이 점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란 관전평도 흘러나오고 있다. ‘토종자본 지킴이’는 이미 군인공제회가 이전에 써먹은 슬로건이란 점도 흥미롭다.
이에 대해 교원공제회측은 “같은 공제회라 비교되는 것은 알지만 군인공제회의 사업 성격과 우리는 무관하다”며 “삼양 지분 인수는 주식 취득을 통한 이윤 창출이 목적이며 대관령 목장 개발 같은 사업계획은 전혀 없다”며 일단 선을 긋고 있다.
한편 삼양 지분에 앞서 이뤄진 최근의 투자에서도 교원공제회는 제법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교원공제회는 올해 사들인 하이트맥주와 영남제분 지분 등으로 지금까지 약 7백20억원의 평가차익을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2천3백억원 상당의 하이트맥주 전환사채(CB)를 장외에서 매입했는데 여기에서 7백억원 이상의 이득을 봤으며 지난 8월엔 영남제분 지분 매입에 50억원가량을 투입해 여기서도 10억원 이상 평가차익을 남겼다.
교원공제회는 지난해 이랜드컨소시엄에 들어가 뉴코아 인수에 2천3백16억원을 투자했고 올 8월에도 진로 지분 인수에 7천4백억원을 쏟아 21%의 지분을 보유해 하이트맥주(52.1%)에 이은 2대 주주로 떠올랐다.
술장사에 밀가루, 라면 등 ‘문어발 확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막강한 자금력을 휘두를 수 있는 교원공제회 재정적 원천은 무엇일까. 교원공제회 관계자는 “전국의 전·현직 교직원 회원들이 일종의 적금 형태로 가입해 매달 일정액을 납입하고 있으며 회원들에게 이윤 배분을 하기 위해 주식 투자 등의 사업을 하는 것”이라 밝힌다. 전·현직 교직원 대상 전문 금융기관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 교원공제회에 매달 일정액을 납입하는 교직원 회원 수는 67만 명이라고 한다. 교직원들이 일반 금융기관보다 교원공제회를 선호하는 이유는 높은 이자율 때문이다. 비슷한 은행상품이 연 이자 4%대인 것에 비해 교원공제회는 매년 5.75%의 이자를 지급한다는 설명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회원들로부터 납입되는 금액이 1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매년 1조원의 신규사업 투자비용이 확충되는 셈이다.
공제회 관계자는 “학교 선생님들의 투자로 자금조달이 이뤄지는 만큼 서민의 벗으로 각인돼 온 삼양 지분 확보 같은 의미 있는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밝힌다.
이미 M&A계 강자로 자리잡은 교원공제회의 다음 타깃은 무엇일까. 교원공제회는 삼양 지분 인수 직후 대우건설 하이닉스 만도 대우인터내셔널 등 굵직한 M&A 매물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심지어 외환은행 쌍용화재 등 금융회사도 거론했다. 금융사 인수에 성공할 경우 교원공제회는 M&A 및 금융·주식시장의 판도를 결정짓는 큰손 중 하나로 등극할 전망이다.
군인들에 이어, 선생님들의 ‘티끌로 모은 태산’이 국내 금융시장의 대형 자본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큰손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