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 사이에 노스페이스 점퍼가 교복이 됐다면 재소자 사이에서는 F 브랜드 일색이다. 여기엔 선택의 자유가 없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교도소월드컵>. |
재소자들에게 한 달 동안 주어지는 물품은 휴지 한 통, 세탁비누 하나, 세숫비누 한 장이 전부다. 나머지는 교도소 내 매점을 통해 구입해야 한다. 재소자 가족들의 영치금 부담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속옷과 양말 같은 의류제품 구입에 드는 비용이다.
3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이 아무개 씨는 기자 앞으로 보낸 편지를 통해 “교정본부에서는 재소자 간의 위화감 문제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이유를 들어 밖에서 쓰던 물건들을 들여오지 못하게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법무부는 2009년 10월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러닝셔츠, 팬티, 양말, 신발 등 의류 제품과 생활용품 외부반입을 대부분 금지시켰다. 안경과 장갑, 포장이 훼손되지 않은 일반형 칫솔 등 극히 일부 제품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최근 이마저도 반입이 힘들다. 일부 교도소에서는 종교단체에서 보내준 속옷이나 양말을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조치는 재소자들을 수월하게 관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마약을 적신 수건을 교도소로 유통시킨 재소자들이 적발돼 언론의 호된 질책을 받지 않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문제는 교도소 내 의류 제품 구입비용이 결코 싸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성동교도소에 수감돼있는 이 씨는 “양말이나 팬티의 경우 국내 유명 브랜드인 F 브랜드 제품 빼고는 물건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재소자 간 위화감을 없앤다는 이유로 집에서 입던 속옷조차 못 들이게 하면서 국내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교도소 안에서 판다는 것을 어불성설”이라고 항변했다. 확인 결과 성동교도소 매점에는 F 브랜드 외 국내 저가 브랜드 제품들도 함께 팔고 있다. 하지만 고급 스판 재질 팬티를 착용하려면 F 브랜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이 씨는 “지금 성동교도소 재소자들은 팬티부터 양말까지 모두 똑같은 로고 제품을 입고 있어 섞어 놓으면 다 쌍둥이들 같다”고 표현했다.
교도소마다 구입 가격이 다르다는 것도 문제다. 성동교도소의 경우 F 브랜드 스판 팬티 가격이 1만 5000원 선인데 반해 청송교도소의 경우 1만 2000원이다. 바람막이는 성동구치소가 3만 3000원이지만 청송교도소는 2만 7000원이면 살 수 있다. 같은 제품인데도 20% 이상 차이가 난다. 성동구치소 이재성 구매팀장은 “지난해 전자입찰을 도입해 구매를 진행하면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고 밝혔다. 지난해 성동교도소는 타 교소도보다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납품받았다는 이유로 법무부 감사를 받기도 했다.
이 팀장은 “F 브랜드의 경우 전국 교도소 3분의 1 정도가 납품받을 만큼 일반적이고, 다른 교도소보다 비싸다고는 하지만 시중가에 비하면 훨씬 싼 가격이다. 의류 제품은 최저입찰 등으로 가격을 무한정 떨어뜨릴 경우 질 나쁜 제품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적정 심사를 통해 가격을 매겨 들여온다”고 밝혔다. 실제 교도소 판매 의류의 경우 일반 소비자 가격에 비해 40% 이상 저렴한 편이다. 이 팀장은 “올해부터는 다른 교도소들과 가격을 비슷하게 맞출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국내 교도소 내 F 브랜드 제품이 주류를 이루자 일부 재소자들은 교정본부와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와 교도소 측은 이런 유착 의혹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 팀장은 “교도소에서 파는 제품들은 통상적으로 공급수수료 명목으로 3.5% 정도를 뗀다”고 설명했다. 1만 원짜리를 팔면 350원 정도가 교정협회를 통해 교도소 운영비용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교도소 내 의류 가격이 비싸다고 불만인 재소자들이 있는 반면 일부 재소자들은 유명 브랜드 제품을 들여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국내 브랜드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재소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는 단연 해외 N 브랜드다. 하지만 확인 결과 N 브랜드의 경우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교도소 납품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결국 부담은 고스란히 재소자 가족들의 몫이다. 2010년 2월부터는 소송이 진행 중인 재소자들의 경우 밖으로 나가는 교통비와 톨게이트비 등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또 외부병원을 이용할 경우 치료비 개인부담 비중은 늘어나는 반면 국민건강보험 적용범위는 축소되고 있는 형국이다. 구속노동자후원회 이광열 사무국장은 “재소자 교화를 책임져야 할 교도소가 점점 사람을 가둬놓고 장사하는 유통회사가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액운도 막아준데” 수형자 제품 굿~
쇼핑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아무개 씨는 “교정본부 쇼핑몰의 인기 품목으로는는 광주교도소에서 만드는 미송나무 침대를 비롯해, 부산교도소에서 만든 비누, 장흥교도소 편백나무 좌탁, 대구교도소 학원용 책걸상 등이 있다”고 전했다. 수익금은 수형자들의 작업 장려금으로 지급해 출소 후 안정적 사회 복귀에 도움을 준다. 교정본부 한 관계자는 “교도작업 제품들은 수형자들의 재활 의지를 북돋아 주는가 하면 액운을 막아준다는 이야기도 있어 실속파들의 구매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고 귀띔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