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법증여 논란 등이 다시 불거지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 ||
지난 10월4일 서울지방법원은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에게 삼성에버랜드(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 발행한 것에 대해 배임 혐의를 인정해 당시 경영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또 10월28일 대법원은 삼성그룹이 불법 정치자금 제공, 계열사간 부당거래 등에 대해 이건희 회장 등 전·현직 이사들에게 1백90억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온 나라가 안기부 도청파일에 등장하는 삼성 수뇌부의 대화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마당에 엎친 데 덮친격이었다.
이 와중에 10월31일 참여연대는 이재용 상무에 대해 전환사채(CB)를 헐값 발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통신기술의 당시 경영진(노석호 당시 대표이사 등 8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같은 혐의로 삼성SDS의 당시 경영진(김흥기 당시 대표이사 등 6명)도 함께 고발했다. 삼성그룹에 대한 여론의 눈길이 갈수록 악화되는 와중에 법적인 주변환경도 삼성에 점점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 ‘황태자’ 이재용 상무(삼성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부담스런 상황이다. 그가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로 등장하면서 완결된 줄 알았던 상속구도가 편법증여 논란이 불거지고 그 와중에 있었던 절차들이 법원에 의해 불법으로 판결나면서 그가 이 모든 트러블의 주인공처럼 비치고 있다. 게다가 그동안 논외로 남아있던 서울통신기술의 대주주로 이재용 상무가 등장하는 과정이 정식으로 법원에서 다뤄지게 생겼다.
이 상무의 위기의식이 극에 달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무의 심기가 편치 않을 건 당연지사. 실제로 이 상무는 최근의 상황전개에 대해 주위에 고충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이름이 ‘편법상속’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에 버금가게 언론매체에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삼성 내에서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삼성그룹을 온전히 물려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당면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현재 검찰수사에까지 다다른 편법증여 논란이다.
증여 당시에는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최근 ‘삼성공화국론’으로 표면화된 반삼성 여론이 편법상속 논란에 날개를 달아준 형국이다. 논란이 거듭되면서 여론의 질타→대통령의 문제제기→검찰수사→유죄판결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는 것.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않을 경우 이 상무가 삼성그룹을 승계한다고 해도 여론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이 상무가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그룹을 이끌 정도로 경영능력을 아직 검증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 7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구조본)가 주도하고 계열사들이 협력해 이 상무를 간판으로 내세워 야심차게 진행했던 e삼성은 철저히 실패했다. 이 상무에게 날개를 달아주려는 삼성 구조본의 ‘배려’가 오히려 이 상무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 이재용씨가 대주주로 있는 서울통신기술(위), 이재용씨가 소유했던 벤처업체 ‘이누카’. | ||
이 중 서울통신기술은 향후 이 상무 재산형성 논란의 새로운 핵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서울통신기술은 자본금 55억원으로 비교적 작은 회사이지만 삼성 계열사 중 이재용 상무가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1993년 2월4일 삼성전자에서 분사한 정보통신 전문업체로, 삼성전자에서 제작된 유무선 통신 장비를 이용하여 KT, KTF, SK텔레콤 등 기간 통신사업자에게 네크워크 구축, 시스템 성능개선, 운용상 문제점 등을 해결해 준다.
1999년부터는 홈네트워크 사업을 시작해 삼성그룹 관계사인 삼성물산 등의 건설업체에 관련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삼성전자와의 거래규모가 전체 매출액의 38%가 될 정도로 삼성그룹의 지원에 힘 입어 매년 순익이 늘어나 지난해에는 1백15억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이 때문에 서울통신기술은 이 상무의 ‘캐시박스’로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최근 삼성전자가 향후 홈네트워킹 사업을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서울통신기술을 다시 편입하든 안하든 서울통신기술이 사실상 이 상무 개인회사에 다름아니라는 점 때문에 향후 논란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합병을 하게 되면 합병비율을 놓고, 외부 관계사로 놔두면 왜 대주주에게 혜택을 주느냐는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참여연대가 고발한 이 상무의 서울통신기술 대주주 등극 논란을 더 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통신기술이 저가의 CB를 이 상무에게 발행한 것은 1996년 11월. 주식으로 전환된 것은 한 달여 뒤인 12월10일이다. 서울통신기술은 최소 15억원에서 최대 20억원치의 CB가 이 상무에게 발행되었다. 에버랜드가 이 상무에게 CB를 발행(1996년 10월)해 주식으로 전환된 시점(1996년 12월17일)과 비슷하다.
참여연대는 당시 CB가 주식으로 전환될 때의 가치는 1만5천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CB 발행 직후 삼성전자가 서울통신기술의 주식을 주당 1만9천원에 매수한 적도 있는 만큼 이 상무가 주당 5천원에 인수한 것은 편법증여를 위한 저가발행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삼성SDS의 경우 1999년 2월 신주인수가격 7천1백50원에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이 상무 등에게 인수케 한 것이 고발대상이 되었다. 참여연대는 1999년,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고발한 바 있지만 당시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에버랜드 판결로 법률적 환경이 변해 다시 고발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편 에버랜드 판결 이후인 지난 10월13일 참여연대는 e삼성의 부실과 관련해 이 상무를 직접 고발했다. 당시 부실이 누적돼 청산절차를 밟은 e삼성의 IT계열사들을 제일기획 등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이 나서 지분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 상무가 책임져야 할 손실을 삼성의 계열사들이 떠안았기 때문에 이 상무는 부당이득을 본 셈이고, 계열사들은 손익이 크게 줄면서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그동안 삼성 전문경영인들의 책임을 묻던 시민단체의 칼끝이 이재용 상무를 직접 겨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분 승계를 완료하고 대관식만 남긴 이 상무와 삼성이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