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과천청사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2012년도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한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요즘 색다른 변신을 꾀하면서 관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공무원식 발상’을 벗어난 업무보고와 경제 상황을 멀리 보는 조직개편 등으로 화제를 낳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색다른 도전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왜 그런지 그 까닭을 살펴봤다.
기획재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게 하는 신년 업무보고를 실·국장들이 아닌 서기관과 사무관, 일반인 등이 함께 모여 토론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 자리에서 공무원들은 일자리와 고졸 채용, 서비스업 선진화, 물가, 공공요금, 육아문제 등 자신들이 맡고 있는 업무의 어려움과 성과, 신년 목표 등을 이야기했다. 토론에 참석한 주부가 “정부가 물가 상승률이 3∼4%라고 하는데 체감이 안 된다. 십 수년째 시장을 다니는데 요즘 물가가 올라 장보기가 겁난다”며 물가 정책을 비판해, 재정부의 자화자찬이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등 예전 업무보고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연출됐다.
토론식으로 이뤄지다보니 일부 정책에서는 대통령 앞에서 부서 간 이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공요금 문제였다. 공공정책국 조영욱 서기관은 “공공요금 관련 원가보상율이 80∼90% 수준”이라며 “적자문제가 심각하고 수요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해야하기 때문에 공공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공공요금 인상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면 물가정책과의 정동영 사무관은 “공공요금 현실화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은 체감물가와 직결된다”면서 “공공요금은 물가불안 심리를 자극할 우려도 있고, 국민 신뢰 문제도 있다”고 공공요금 인상 억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이 같은 토론 방식에 이 대통령과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상당히 흐뭇해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재정부는 업무보고 외에 또 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설날(1월 23일)을 전후해 재정부의 조직을 개편하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합쳐져 기획재정부로 탄생한 이후 소폭의 조직변화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당한 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 장관은 ‘미세조정’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현재 나오는 안으로는 재정부의 업무 성격에 상당한 변화도 예측된다.
재정부 조직개편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래전략국의 신설이다. 현재 미래전략정책관은 경제정책국 산하에 있지만 국장급 자리일 뿐 실질적인 업무는 거의 없다. 재정부에서 거시경제 업무를 맡는 핵심 자리가 경제정책국장이다 보니 당장의 경제 정책 수립에 매몰돼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어려웠다.
여기에 올 하반기에 미래전략보고서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를 전담할 부서 자체가 없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미래전략국 신설은 이러한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전략국이 신설되는 대신 그동안 예산실과 업무가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아온 재정정책국은 해체된다.
또 주목되는 것은 정책조정국을 거시경제와 국제금융을 담당하는 1차관 산하에서 예산과 재정 등을 담당하는 2차관 산하로 옮기는 방안이다. 이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나 각 부처에서 쏟아지는 각종 선심성 사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책조정국이 여러 부처에서 내놓은 사업을 교통정리 하는 일을 맡아왔지만 정권 말이 다가오면서 각 부처가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정책조정국을 아예 예산을 맡은 2차관 밑으로 보내 돈줄을 쥐어줘 각 부처가 정부 거시 정책 기조에 어긋나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게 하고,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도록 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내부의 비판도 적지 않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신년 업무보고 때 실무진의 이야기나 서민들의 아픔을 듣고 싶었다면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뒤인 2009년이 가장 적기였다. 2010년에 했어도 늦지 않았다”면서 “지금에서야 실무진이나 서민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면 전시성 행정으로밖에 비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정부 당국자는 “위기 극복에만 매달리느라 중장기 국가 경제 정책을 어떻게 수립해갈지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다”면서 “5년 단임제에서 당장의 경제정책도 중요하지만 중장기 국가 경제 정책 방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청사진을 그릴 수는 있겠지만 정권 말에 이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서찬 언론인
‘인사 막차’ 타야 잘나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가 시작되면서 ‘인사 막차’를 타려는 공무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각 부처 차관으로 가기 용이한 재정부 1급 자리는 벌써 임자가 정해진 것으로 알려질 정도다. 정권 교체와 함께 퇴진해야 하는 장·차관과는 달리 재정부 1급 자리는 다음 정권에서 여러 부처 차관으로 발탁될 수 있는 요직이다.
실제 노대래 차관보가 조달청장으로 승진한 뒤 방위사업청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김교식 기획조정실장은 여성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윤영선 세제실장과 후임이었던 주영섭 세제실장은 관세청장직을 차례대로 맡았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권 말에 ‘친정’인 재정부에 있느냐 외곽에 있느냐는 천양지차다. 장·차관과 달리 눈에 띄지 않아 다음 정권 때 승진을 노려볼 수도 있지만 외곽에 있으면 복귀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번에 재정부 1급 중에서 행시 24회인 박철규 기획조정실장과 구본진 재정업무관리관이 용퇴하기로 하면서 재정부 1급 막차를 누가 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류성걸 2차관(행시 22회)도 교체가 확실한 상태에서 연쇄 인사이동이 있을 경우 재정부 1급 자리는 7개 가운데 3자리가 비게 된다. 현재 재정부 1급 자리 진입이 유력한 이는 행시 25회인 주형환 녹색성장위원회 기획단장이다. 재정부 출신인 주 단장으로서는 정권 말에 안전한 친정으로 복귀한 셈이다. 재정업무관리관에는 김규옥 예산총괄심의관(행시 27회)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차관의 퇴진으로 비게 되는 2차관 자리에는 김동연 예산실장(26회)이 승진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실장은 청와대 근무 당시 이 대통령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김 실장이 이동하게 되면 빈자리에 김용환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25회)이 올 것이라는 설이 적지 않다. 김 실장보다는 행시가 한 기수 앞이지만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을 김 실장 다음을 지내면서 순서가 밀렸다.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