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광 산업 침체로 웅진에너지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4월 13일 경북 상주에서 열린 웅진폴리실리콘 생산공장 준공식. 윤석금 회장(가운데·작은 사진) 등 참석자들이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 연합뉴스 |
지난 12월 초 웅진에너지는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을 목적으로 1200억 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행사가액은 4945원. 지난해 초만 해도 웅진에너지의 주가가 1만 7000원 정도였기에 꽤 매력적이었다. 주가가 바닥이라고 여겨진 만큼 많은 자금이 몰렸다. 웅진에너지는 12월 20일 증권발행실적보고서를 통해 BW 발행이 순조롭게 완료됐음을 알렸다.
그러나 12월 23일, 웅진에너지는 3건의 단일판매·공급계약해지를 공시했다. 현대중공업과 237억 원, 유니텍솔라와 238억 원, 제스솔라와 37억 원, 모두 500억 원가량의 공급계약해지였다. BW 발행을 완료했다고 공시한 지 불과 사흘 뒤였다. 웅진에너지의 행태는 ‘악재를 숨기고 BW를 발행했다’는 의혹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웅진에너지 측이 “의도적으로 늦게 알린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비난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웅진홀딩스의 주식담보대출이 더욱 주목받은 까닭은 웅진에너지의 주가가 현재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점 때문. 주가가 낮을수록 대출받을 수 있는 자금은 적다. 그럼에도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급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단기자금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라며 “그 돈은 이미 다 갚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자산이 5조 원에 달하는 회사가 고작 600억 원가량을 단기 대출 받았다는 것은 사정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웅진의 어려움은 태양광과 건설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무엇보다 태양광산업의 침체가 웅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웅진에너지는 태양광산업에서 각광을 받았다. 주가도 1만 7000~1만 8000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100억 원이 넘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3분기 적자로 돌아서고 말았다. 주가도 4000원대까지 하락하며 4분의 1토막이 났다. 부채가 늘어났고 부채비율도 높아졌다.
미국 선파워가 웅진에너지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여러 가지 관측을 낳았다. 웅진에너지는 2006년 선파워와 웅진그룹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30%가 넘던 선파워의 웅진에너지 지분은 2012년 1월 2일 현재 5.23%까지 확 줄었다. 선파워는 웅진에너지의 주요 매출처. “선파워가 자금이 필요해 지분을 매각하는 것일 뿐 두 회사의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는 웅진홀딩스 측의 설명에도 두 회사의 협력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아닌지, 선파워와 맺은 계약 중 뭔가 또 파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시선이 가득하다.
웅진그룹은 2007년 6600억 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한 후 사명도 바꾸지 않은 채 이듬해인 2008년부터 사업을 확장해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극동건설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웅진홀딩스가 극동건설 유상증자에 1000억 원을 참여하는 등 꾸준히 지원했으나 오히려 웅진홀딩스에 대한 신용과 인식도 함께 나빠졌다.
웅진에너지와 극동건설은 어느새 웅진그룹의 주력 계열사가 됐다. 이제 와서 두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멈추기는 곤란한 상황이다. 웅진의 더 큰 고민은 이 두 계열사가 영위하고 있는 태양광산업과 건설산업이 빠른 시일 내에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전망이다.
태양광산업은 국내 주요 대기업이 속속 투자를 보류하거나 철회할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해 있다. ㎏당 70달러가 넘던 폴리실리콘 가격이 지난해 20달러대까지 폭락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폴리실리콘 가격이 30달러선을 넘었다고 하지만 평균 제조 원가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마다 폴리실리콘 제조 원가는 각각 다르기에 영업비밀로 돼 있다. 그러나 윤석금 회장이 “폴리실리콘 제조 원가를 낮춰라”는 특명을 내린 것으로 봐서 웅진에너지의 폴리실리콘 제조 원가는 그리 낮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경기도 쉬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장담하기 힘들다”며 “총선 지나고 대선을 맞이하는 하반기쯤 정책적으로 뭔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바랄 뿐”이라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이밖에 웅진씽크빅과 웅진케미칼의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하다거나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웅진은 2005~2011년 계열사 5곳을 동원해 웅진홀딩스에 자재구매대행을 맡겼고 웅진홀딩스는 자재 판매 이윤과 추가로 53억 원의 구매대행수수료도 챙겨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34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아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
윤석금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그룹이 위기임을 암시했다. 윤 회장은 “때로는 아픈 자극이 변화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어려움을 겪으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그러면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또 “지금은 개인도 기업도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웅진그룹은 1980년 도서출판 헤임인터내셔널(현 웅진씽크빅) 설립으로 시작해 코리아나화장품, 웅진코웨이의 렌탈사업이 성공하며 크게 주목을 받았다. 2006년 웅진에너지 설립, 2007년 극동건설 인수, 2008년 새한(현 웅진케미칼) 인수 등을 거치며 재계 30위권까지 뛰어오르며 윤석금 회장에 대한 관심도 집중됐다. 그렇게 30년간 이어온 쾌속질주가 최근 급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제동에서 오는 충격도 크다. 웅진그룹과 윤석금 회장이 이 충격을 어떻게 이겨낼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