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의 전 부인이 알 만한 사모님들을 상대로 ‘통 큰’ 사기 행각을 벌이다 적발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1월 11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유 아무개 씨(여·47)는 지난 2004년부터 약 5년간 지인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유 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 중에는 대학총장, 정치인, 유명 사업가 부인도 다수 포함돼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의 전 부인이 일명 ‘사모님’들을 상대로 대담하게 사기를 벌인 것은 이례적인 사건이어서 사법부의 재판 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남 사모님들을 상대로 100억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전직 부장판사 아내의 간 큰 사기사건 전말을 들여다봤다.
“부장판사 부인이 사기꾼일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수억대 피해를 본 몇몇 사모님들은 가슴을 치며 유 씨와의 거래를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보석판매업을 하던 유 씨가 보유 중인 보석을 미끼로 지인 6명에게 돈을 빌리는가 하면 때때로 ‘보석을 함께 팔아 수익을 나누자’는 식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최근 그녀를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의 낙찰계 계주인 장 아무개 씨(여·46)는 2006년 계모임에서 유 씨를 처음 알게 됐다. 당시 유 씨는 자신의 남편이 ‘재경지법 수석 부장판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장 씨 등 주변 사람들에게 값비싼 명품 백이나 보석 등을 선물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짜 없이 그냥 주는 일은 없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유 씨는 곧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2008년 무렵 유 씨는 수시로 지인들에게 ‘남편이 부장판사를 하다가 이번에 서초동에서 전관 변호사로 활동 중’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한 뒤 자신의 보석 판매사업을 홍보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유 씨는 “내가 전부터 보석 판매사업을 했는데 수익이 아주 좋다”며 “집에만 있지 말고 같이 돈 벌어서 나눠쓰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유 씨의 남편이었던 신 아무개 재경지법 전 수석부장판사는 2007년 무렵 실제로 서초동에서 변호사로 막 개업한 상태였다. 이에 유 씨는 “우리 남편이 전관예우로 큰 사건만 수임하고 있다. 돈을 막 긁어모은다”는 말로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이에 설득된 피해자 장 씨는 1000만 원가량을 투자 명목으로 내놓았다. 그러자 유 씨는 1000만 원에 수익금을 보탠 2000만~3000만 원가량 되는 돈을 짧은 시일 내에 다시 장 씨에게 돌려줬다. 이는 유 씨가 본격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기 전에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10월 경 유 씨는 장 씨에게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유 씨는 다이아몬드 하나를 장 씨에게 보여주면서 “시가 8억 원이 넘는 다이아몬드를 담보로 주겠다. 2억 원을 빌려주면 원금에 이자 3000만 원을 붙여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또 한 달 뒤에는 “3억~4억 원짜리 다이아몬드를 담보로 1억 5000만 원을 빌려주면 원금에 이자 2000만 원을 추가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유 씨가 장 씨로부터 빌려간 돈은 총 4억 5000만 원에 달한다는 게 장 씨의 주장이다.
장 씨는 유 씨가 요구하는 금액이 조금씩 커지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유 씨와의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유 씨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직접 만나고 의심을 거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유 씨가 보여준 보석들은 조사 결과 인조 다이아몬드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의 사기행각에 피해를 입은 이는 비단 장 씨뿐만이 아니었다. 검찰은 “유 씨는 보석을 담보로 빌린 돈을 다른 사람에게 갚는 방법으로 ‘돌려막기식’으로 사기극을 벌였다”며 “장 씨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다이아몬드로 사업가 홍 아무개 씨로부터 3억 원을, 강남의 레스토랑 사장 이 아무개 씨한테는 수억 원을 더 빌렸다”고 밝혔다.
수석부장판사의 전 부인이라서 그런 것일까. 유 씨가 사기행각을 벌인 대상자들의 스케일 또한 남달라 눈길을 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대학총장 부인부터 정치인 부인, 사업가, 사채업자 등 소위 고위층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한 피해자는 “사기를 당한 대학총장 부인은 어느 대학인지 드러날까봐 신고도 못하고 있다가 공소시효를 넘겼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피해자들은 “남편이 판사니까 믿고 돈을 준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부 피해자는 “유 씨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 있어도 대검 중수부에 남편의 사시 후배가 있어 걱정 없다’며 위세를 과시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현재 피해자들 대부분은 “유 씨가 평소 스스로 ‘보석왕’이라고 지칭한 데다 유 씨 남편의 신분이 전 수석부장판사라는 점만 믿고 돈을 줬다가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유 씨의 사기행각은 피해자들의 고소로 종지부를 찍었다. 검찰에 따르면 유 씨에게 당한 피해자는 25명에 이르며 피해자 측이 주장하는 피해액은 1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유 씨는 현재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피해자들이 많아 사건도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유 씨의 사기는 남편이 부장판사이던 200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는 이번 사건 이외에도 지난 2004년 11월 가짜 블루다이아몬드를 10억 원짜리로 속여 사채업자 조 아무개 씨, 사업가 박 아무개 씨로부터 4억여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6년에는 같은 보석 사업을 하는 배 아무개 씨에게서도 2억 5000만 원을 받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는 현재 보석 중개업자에게서 실론 사파이어 반지, 다이아몬드 사각 프린세스컷 10캐럿 반지, 천연 백진주 반지 등 4억 3500만 원 상당의 보석을 받고 대금을 1억 원만 지급한 혐의로도 기소돼있다.
이에 대해 유 씨는 “사기를 친 적이 없으며 사건이 조작됐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이어 유 씨는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사기를 당해 고소한 상황”이라며 “남편과는 이미 이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