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중 FTA는 협상 시작 전 단계인 산·관·학 공동연구를 지난 2008년에 마쳤지만 지금까지 협상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처럼 지지부진하던 한-중 FTA에 대해 양국 정상이 협상 가속화를 선언한 것이다. 벌써부터 이르면 2월, 늦어도 3월이면 한-중 FTA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중 FTA를 다루는 관가는 이러한 분위기와 달리 한-중 FTA 협상 개시가 그렇게 쉽게 시작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뒤를 이은 이가 박태호 서울대 교수라는 점이다.
통상교섭본부는 외무부가 외교통상부로 개편되던 1998년 3월 대외 통상협상 전담조직으로 설립돼 역사가 14년이나 돼가지만 지금까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이는 박 본부장까지 5명이 전부다. 1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덕수, 2대는 황두연, 3대는 김현종, 4대가 김종훈 전 본부장이었다. 모두 경제파트 또는 통상라인에 근무했던 관료 출신들이다. 특히 김종훈 전 본부장 같은 경우 ‘검투사’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이 협상 중 밀고 당기기에 능숙한 것으로 유명하다.
통상교섭본부장을 거친 이가 적었던 것은 다른 장관급과 달리 협상을 능숙하게 끌고 가야 하는 실무적인 자리인 탓이다. 정부 관계자는 “외교부 내에서도 통상교섭본부장 자리는 일이 많고 빛은 나지 않는 자리로 악명이 높다”면서 “이러한 탓에 통상교섭본부장에 어울리는 사람이 많지 않고,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숫자가 다른 장관들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고 설명했다.
한-중 FTA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통상절차법)에 있다. 이 법률은 정부가 통상협상 진행 상황을 공개하도록 하고, 통상 협상 개시 전에 통상조약 체결 계획을 수립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FTA 추진에 제대로 된 제동을 걸지 못했다고 판단한 국회의 의도가 다분한 법률이다. 이 법률은 공포 6개월 후부터 발효되도록 되어 있지만 이미 통합민주당 등 야당은 한-중 FTA에 이 법률을 발동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 한-중 FTA 협상 개시 선언을 위해서는 공청회와 대외경제장관회의 의결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공청회가 제대로 열릴지도 의문이다. 한-중 FTA가 다른 FTA에 비해 농어촌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 줄 수 있어 공청회에서 농어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이 정부가 3월 협상 개시를 밀어붙이는 것을 지원할 가능성도 적다.
정부의 재정 역시 여력이 없다. 한-미 FTA에 따른 농축산업 피해 대책을 위해 수십조 원을 쏟아붓기로 한 상황에서 한-중 FTA 피해 대책을 마련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한-미 FTA 반대 여론 무마를 위해 농·축산업에 10년간 총 54조 원을 지원키로 했는데 이는 기존 계획보다 2조 9000억 원이나 늘어난 액수”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한-중 FTA까지 추진하려고 할 경우 지원 금액은 눈덩어리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의 재정 여력이나 정치권의 복지 예산 증액 요구 등을 감안하면 한-중 FTA 협상을 강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이 기자들이 언제 한-중 FTA 협상 개시를 시작하느냐고 물으니까 한두 달 걸리지 않겠느냐고 답변한 듯한데 협상 시작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협상에 앞선 국내절차에서 농민이나 중소기업 등의 이야기를 가능한 많이 들으려 한다”면서 “한-중 FTA 협상은 농축수산물 등 민감성 분야에 대해 합의를 하고 이후 본 협상을 하는 2단계로 할 것이다. 1단계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2단계 협상을 시작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