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소문난 연애치고 결혼에 골인하는 것 못 봤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기업 인수·합병(M&A)과 관련해 한 말이다. 즉 떠들썩한 M&A는 성공하지 못하기 십상, 은밀히 진행해야 방해받지 않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의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하나금융이 돌연 외환은행 인수를 발표했을 때 시장은 깜짝 놀랐지만 하나금융이 진작부터 외환은행 인수 준비를 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김 회장의 이 말도 유명세를 탔다. 최근 하이마트 인수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움직임도 이 말과 관련이 있다.
지난 연말 극심한 경영권 분쟁을 겪은 하이마트가 매각되는 것으로 결정 났을 때 시장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과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사이에 벌어진 경영권 분쟁이 워낙 치열했던 데다 하이마트 임직원들이 결사항전을 각오했던 터라 유 회장과 선 회장의 매각 합의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매각 결정 이후 증권가에서는 ‘난파선’, ‘최대주주의 양심의 가책’ 등 험한 말까지 동원하며 매각 결정을 내린 유 회장과 선 회장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하이마트의 매각 결정을 내심 반기는 쪽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유통업계에서는 가전 유통의 독보적인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하이마트가 매물로 나왔다는 것은 큰 화젯거리였다.
경영권 분쟁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이제는 하이마트 인수전 열기가 매우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하이마트가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가 관심사가 된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하이마트 매각이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예를 하나 들려줬다.
“매각 주관사인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측이 해당 업무를 에이전시에 맡길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의가 쇄도해 다른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이기 때문이다.”
현재 하이마트를 노리는 곳은 롯데 신세계 GS, 3파전으로 압축된다. 셋 다 유통 강자로 꼽힌다. 이 중에서도 롯데가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부각되고 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직접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하이마트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7년 하이마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신 롯데 측은 너무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몸을 낮추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매각 일정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확답할 수 있다”며 “아직 하이마트와 관련한 자료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롯데는 올해 그룹 차원에서 전년 대비 50% 늘어난 6조 73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롯데의 유통 라이벌 신세계도 물망에 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신세계 측은 “내부적으로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따로 가전유통에 뛰어들 생각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신세계가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설사 아직까지는 조용하다 할지라도 막판에 뛰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 |
허 부회장이 하이마트 인수 실패를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알려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2010년 1월 허 부회장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이마트를 언급한 적이 있다. ‘하이마트 같은 기업을 인수하는 데 관심 있다’는 취지의 발언인데 구체적으로 ‘하이마트’를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미 유진그룹이 인수하고 2008년 1월 계열편입이 끝난 상태. 엄연히 남의 회사인데 이를 인수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비록 무의식중에 터져 나온 말이지만 그만큼 하이마트를 인수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다는 증거다.
허 부회장이 마치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하이마트가 매물로 나왔다. 허 부회장은 최근 “매각 절차에 따라 하이마트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GS리테일의 자금력이 롯데 못지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사업을 매각한 자금에다 지난 연말 GS리테일이 상장하면서 들어온 것까지 합해 돈은 넉넉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GS그룹 차원에서 올해 GS리테일에 3000억 원 이상 투자할 것으로 알려져 하이마트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문제될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입찰 가격에서도 GS리테일이 롯데보다 더 과감하게 써낼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M&A를 추진할 때 롯데는 과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롯데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통큰’ 전략을 이번에는 GS에서 쓸 것이라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하이마트 인수 가격을 2조 원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상장도 했으니 허 부회장이 성과를 보여주는 게 급선무”라며 “그중 하나가 하이마트 인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GS리테일 역시 너무 일찍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아직 제안서도 오지 않은 상태여서 구체적으로 진행된 바는 없다. 지금 나오는 얘기들도 대부분 원론적인 수준에 그친다”며 말을 아꼈다.
GS 역시 소문내지 않고 연애를 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미 소문은 날 만큼 나 있다. 허승조 부회장은 2007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까.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경영권 보장’이 조건?
▲ 선종구 회장 |
당초 하이마트의 매각이 결정됐을 때 의아해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이 과연 경영권을 내놓을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이다. 하이마트의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을 때 선종구 회장은 물론 하이마트 임직원들이 워낙 강경하게 경영권 보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M&A업계에서는 매각을 결정하고 계약이 이루어질 때 계약서에 보통 현 CEO(최고경영자)가 매각 후 동종업계에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명시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따라서 지분을 모두 내놓기로 한 선종구 회장의 매각 결정 역시 표면상 경영권을 포기하는 것이어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최근 하이마트가 사모펀드에 매각되면 선종구 회장의 경영권 유지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재 선 회장이 친분이 있는 모 사모펀드와 접촉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소문도 들린다.
하이마트 매각은 현재 3대 주요주주인 유진그룹, 선종구 회장, 에이치아이컨소시엄 중 둘이 합의하면 나머지 하나는 그 결정에 따르게 돼 있다. 따라서 선종구 회장이 유진그룹과 에이치아이컨소시엄 중 한 군데만 설득해도 사모펀드에 매각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유진그룹이 선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일 리 없는 데다 에이치아이컨소시엄은 유진그룹이 하이마트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000억 원을 끌어들일 때 참여한 사모펀드여서 선 회장 쪽으로 기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등이 그 이유다.
사모펀드를 끌어들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M&A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를 동원하려면 연간 일정 부분 이상 수익을 보장해줘야 할 뿐 아니라 콜·풋옵션 다 붙여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사모펀드가 이런 것들을 접어주면서 들어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종구 회장도 스스로 매각 결정 후 공개적으로 나이를 거론하며 “이제 좀 쉬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동종업계 진출이나 경영권 유지 등에 대한 의견을 일축한 것이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