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녕 석리성씨한옥마을 전경. |
전주나 서울 남산골, 아산 외암마을, 산청 남사예담촌 등 특정한 몇 곳이 한옥마을로 널리 알려졌지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함평의 모평마을이나 대구 남평문씨세거지, 함양 개평마을 등 보존상태가 양호한 한옥마을을 만날 수 있다. 창녕의 석리성씨한옥마을도 그런 곳이다.
창녕하면 우포늪으로 상징되는 곳이다. 우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내륙습지다.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세진리 등에 걸쳐 있는 이 늪은 1억 4000만 년 전 형성된 것이다. 자운영이 피는 봄, 가지를 머리처럼 드리우는 수양버들의 계절 여름, 물안개가 자욱이 피며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가을, 잠시 모든 생명이 숨을 고르며 다시 봄을 준비하는 겨울의 우포는 얼마 전 생명길이라는 산책로를 닦으면서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석리성씨한옥마을은 우포늪의 명성에 철저히 가린 창녕의 숨은 여행지다. 우포늪에서 멀지도 않다. 약 6㎞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녕에 이처럼 멋진 한옥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보수를 이유로 개방되지 않는 집들이 있다. 그 내부가 궁금해 여행객들이 담장 너머로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
석리성씨한옥마을에는 큰집인 일신당, 둘째집인 아석헌, 셋째집인 석운당, 넷째집인 경근당 등에 약 30여 동의 건물이 있다. 이 마을의 건물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부분 소실되었는데, 영원무역의 회장인 성기학 씨가 10여 년 전부터 복원에 힘을 실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은 최근 사망한 북한 김정일의 전처인 성혜림의 고향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명확하지 않다. 누구는 성혜림이 유년을 여기서 보냈다고 하고, 또 누구는 같은 성 씨이기는 하지만 이 마을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당연히 살지도 않았다고 한다.
석리성씨한옥마을은 양파의 시배지이기도 한 곳이다. 석리성 씨의 둘째집인 아석가의 우석 성재경의 조부 성찬영이 1909년 처음 양파를 재배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한다. 한국전쟁 이후 이곳은 보리 대신 환금작물로 양파를 널리 재배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한동안 양파하면 이 마을을 꼽았으나 현재는 마늘을 대부분 재배하고 있다. 양파보다는 마늘이 더 돈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옛 영광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 마을 앞에는 양파시배지임을 알리는 자그마한 탑이 하나 서 있다.
양파시배지탑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보통 때 이 한옥들은 일반에 개방하지 않는다.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창녕군문화체육관광과(055-530-1473)로 연락하면 이곳 관리자를 연결해 준다. 방문목적을 말하고 시간을 조율하면 된다.
특히 이 마을에서 가장 눈여겨 볼 집은 아석헌이다. 여름이면 구연정이라는 후원의 연못 주변에 백일홍이 피어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다. 후원을 내려다보는 정자에 앉아 있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
아석헌은 전체적으로 누마루가 시원하다. 석운당과 경근당 등 다른 일가의 집들은 담으로 구분되어 집과 집을 드나드는 문이 나 있다. 사람이 거의 찾지 않다보니 번잡하지 않고, 조용히 한옥의 이곳저곳을 산책하거나 툇마루에 걸터앉아 한가로이 햇볕바라기도 할 수 있으니 이 마을을 찾은 마음이 그저 가볍고 기쁘다.
일반적으로 한데 모여 있는 한옥들을 둘러보고는 훌쩍 떠나기 십상인데, 제일 큰집인 일신당이 마을의 맨 위쪽에 약 500m가량 떨어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향나무가 아주 멋진 집이다. 마을에서 약 1.5㎞ 동쪽으로 들어가면 물계서원이 있는데, 이곳도 챙겨 보면 좋다. 1710년(숙종 26년) 지은 서원으로 성씨의 시조인 성인보의 아들 성송국을 비롯해 성씨 문중 21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 노을질 무렵의 창녕 송현동고분군. |
고분군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화왕산 관룡사가 있는데, 이곳도 들러볼 만하다. 관룡사는 394년(내물왕 39년) 창건된 작고 볼품없는 일주문으로 유명한 절이다. 일주문은 쪽문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이 일주문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머리를 숙여야 한다. 이 작은 일주문에서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배운다. 관룡사에는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절에서 약 15분가량 화왕산으로 올라가면 아찔한 암릉 위에 부처가 앉아 있다. 보물 제295호로 지정된 부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가 뜨겁게 비치나 부처는 꿈쩍도 하지 않고 천하를 굽어보며 자비의 마음을 뿌리고 있다.
동삼층석탑도 빼놓지 말고 챙겨야 할 창녕의 문화재다. 창녕읍 술정리 시가지 내에 자리한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국보 제34호로 지정돼 있다. 일견 특별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크기와 조각수법은 불국사 석가탑과 비교된다. 탑이 제법 크고 균형미가 있다.
김동옥 여행작가 tour@ilyo.co.kr
▲길잡이: 중부내륙고속국도 창녕IC→좌회전→오리정사거리에서 좌회전 후 계속 직진→석리성씨한옥마을.
▲먹을거리: 창녕 영산면 죽사리에 도리원(055-521-6116)이라고 장아찌를 전문으로 하는 한식집이 있다. 대표메뉴는 장아찌밥상이다. 약초를 이용한 장아찌 5종을 맛볼 수 있다.
▲잠자리: 석리성씨한옥마을이나 송현동고분군, 술정리동삼층석탑이 모두 창녕읍내와 가깝지만, 숙소를 자동차로 부곡온천지구에 잡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읍내와는 자동차로 약 15분 떨어져 있다. 한성호텔(055-536-5131), 부곡가든관광호텔(055-536-5771), 부곡허브농원아로마빌리지(055-521-0980) 등 숙박업소가 많다.
▲문의: 창녕 석리성씨한옥마을을 방문하려면 먼저 창녕군문화체육관광과(055-530-1473)를 통해 문의를 하는 것이 좋다. 한옥마을 관리자를 연결해준다. 이 관리자와 통화 후 사전예약하고 방문해야 그 내부를 자세히 둘러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