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성립 후 보복성 갑질 벌이는 기업들도…합의 이행 여부 모니터링도 ‘사각지대’ 있어
조정원은 불공정거래행위로 발생한 사업자 간 분쟁을 조정하는 ‘분쟁조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공정거래·가맹사업거래·하도급거래·대규모유통업거래·약관·대리점거래의 분쟁조정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해마다 발표하는 ‘분쟁조정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9~2021년 분쟁조정 사건은 평균 2974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평균 1262건에 달하는 사건의 조정이 성립됐다.
그러나 이 자료에는 조정 성립 이후의 상황에 대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조정원 관계자는 “재조정을 신청하는 사례가 거의 드물다. 당사자들에게 1분기 뒤쯤부터 연락해 합의 사항 이행 여부를 묻고 있다. 이행이 완료될 때까지 재차 물어보고 있다”며 “합의 사항 이행이 안 되면 당사자가 공정위에 신고하거나 소송지원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요신문i 취재 결과 조정 이후에도 여전히 피해를 보는 업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밀 측정기와 측정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업체인 미쓰도요의 한국지사 ‘한국미쓰도요’와 A 대리점은 B 특약점과 지난해 12월 분쟁 조정절차를 밟고 합의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한국미쓰도요가 B 특약점의 제품 판매에 간섭, 즉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한 것이 발단이었다. 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사업자가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할 때 거래 상대방에게 특정 가격으로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할 것을 강제하거나 규약 등에 구속조건을 붙이는 행위다.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며 위반 시 과징금이 부과된다.
합의서를 작성했음에도 B 특약점은 여전히 A 대리점이 교묘하게 자신들을 차별하고 한국미쓰도요는 이에 대해 개의치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B 특약점 관계자는 일요신문i와 통화에서 “특약점 지위 회복 과정부터 원활하지 않았다. 판매처에 전달할 특약점 리스트에 우리 명단을 제외하거나 특약점 관계자들끼리 모이는 세미나 등에 초대하지 않는 등 교묘하게 우리를 차별했다. 현재 우리는 A 대리점에서 제품을 주문하지 않고 있는데, A 대리점 직원들이 타 특약점 방문 시마다 우리가 어디서 제품을 주문하는지 묻고 다닌다더라. 여전히 차별 대우와 사찰이 이어지는 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미쓰도요 관계자는 일요신문i에 “문의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합의서상 ‘비밀준수 의무’ 위반의 우려가 있어 답변을 드릴 수 없다. 또 B 특약점도 동일하게 ‘비밀준수 의무’를 지고 있음을 참고해 달라”고 답변했다.
가맹사업이나 대리점 거래와 같이 분쟁조정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관계가 수직적일수록 피신청인의 보복성 갑질이 일어나기 쉽다. 조정원 관계자는 “기업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조정 후에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업체들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한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자는 “나는 가맹사업자들을 모아서 단체활동을 하며 본부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 가맹본부가 조정을 거절한 후 갑자기 예정에 없던 위생 점검을 나와 벌점을 매기는 행위들이 잦아졌다. 결국 본부로부터 계약 갱신을 거절당해 장사를 접었다. 가맹본부에 대항한 것에 따른 결과였다”고 전했다.
피해 업체(신청 업체)가 동일한 업체(피신청 업체)를 상대로 다시 분쟁조정 절차를 밟는다 해도 가중 처벌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 더 문제다. 조정원 관계자는 “분쟁 조정 제도는 대체적 분쟁 해결 제도(ADR)일 뿐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중재·조정·화해 등을 통해 당사자 간 분쟁을 해결하도록 도울 뿐이다. 여기서 해결이 안 되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정확한 결과를 내는 법은 원칙적으로 소송을 통한 판결이기에 ADR에서 소송을 통한 판결과 같은 효력을 당사자에게 부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조정 조서 작성 시 재판상 화해 효력이 발생한다. 불이행된 사례에 대해서는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정원 관계자는 “금전적인 부분처럼 이행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행위 등의 사례라면 강제집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리고 부당한 행위의 반복인지, 또 다른 불공정 행위인지 따져 봐야 한다”고 전했다. 합의 후에도 피해 업체가 계속해서 재차 갑질을 당한 것에 대한 증거 자료를 수집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피해를 증명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조정원은 이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모니터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필수사항은 아니다 보니 모든 합의사항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B 특약점만 하더라도 약 10개월이 지나도 연락받지 못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자체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해달라는 메일만 전달받았다. 이에 대해 조정원 관계자는 “월 300건 이상 모니터링을 한다. 그런데 간혹 보면 통화 연결이 안 되거나 전화번호가 바뀌는 등 당사자와 연결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조정원은 모니터링 후 업체에 공정위 신고나 민사소송을 권유한다. 그러나 피해 업체 대부분이 영세한 소상공인이어서 공정위 신고나 민사소송을 통해 가해 업체와 또 다시 다툴 만한 시간적·재정적 여유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정원에서 소송 지원 제도를 통해 피해 업체를 돕고는 있지만, 이 역시 가맹사업거래 분야만 지원되는 사항이고, 조정원의 소송 지원단 소속 변호사만 선임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공정거래조정원의 분쟁 조정 사건들은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관계가 수평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소상공인인 신청인들이 참고 참다가 조정을 신청하는데, 이들은 소송까지 생각하고 분쟁조정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즉 둘의 관계가 조정, 소송 등 종료 후 평화롭게 유지되기가 어려운 셈”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사후 모니터링 제도를 의무화하는 게 어떨까 싶다. 인력 충원 등으로 조직을 체계화해서 사후 부당한 대우나 갑질 등이 이어지지 않도록 모니터링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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