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 승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의선 기아차 사장. | ||
정의선 사장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현대오토넷, 기아차 등의 주가가 연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 이는 현대오토넷과 본텍의 합병이 그룹전체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합병이 예정돼 있는 본텍은 글로비스가 대주주이고, 글로비스는 이르면 12월 중에 상장이 예정된 회사로 정의선 사장이 대주주다. 정의선 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곧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핵이 될 가능성이 높아 주가가 한층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자동차 전장부품 업체인 현대오토넷이 내년 2월 현대차그룹 전장부품 계열사인 본텍을 흡수·합병하게 되면서 향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정몽구 회장 외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후계승계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비치는 탓이다.
원래 현대차그룹이 본텍과 합병시키려했던 법인은 현대모비스였다. 현대차 지분 14.59%를 갖고 있는 현대모비스는 사실상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현대차와 기아차를 지배하고 있다.
지난 2월 정몽구 회장은 정의선 사장을 기아차 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현대모비스와 본텍 합병을 추진했지만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쳤다.
당시 정 사장이 본텍 지분 30%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의 주요 계열사 지분은 기아차 1.99%에 불과하다. 삼성의 후계자 이재용 상무가 지난 96년에 지배구조에 필요한 지분 확보를 완료하고 경영수업에 매진해온 것에 비해 정 사장의 지분 확보는 취약한 셈이다. 결국 정 사장이 30% 지분을 가진 본텍을 현대모비스와 합병시킨 후 정 사장이 실질적으로 모비스를 장악하게 만들어 승계구도를 연착륙시키려했던 것이지만 ‘비상장기업을 활용한 편법 승계’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좌절됐다. 이후 정 사장은 자신 소유의 본텍 지분 30% 전량을 지멘스에 매각했다.
이번에 발표된 본텍과 현대오토넷의 합병은 정 사장의 본텍 지분이 사라졌다는 점, 현대오토넷이 현대그룹과 지멘스의 공동 소유라는 점 때문에 일단 ‘편법 상속’ 논란과 무관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재계에선 이번 합병의 최대 수혜자는 정의선 사장이 될 것으로 본다. 본텍 지분구조는 정 사장이 매각한 지분 30%가 지멘스 것으로 돼 있고 기아차 40%, 글로비스가 30%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는 정몽구 회장이 35.15%, 정 사장이 39.85%를 갖고 있다. 정 사장이 자기 명의의 본텍 지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분구조상 여전히 정 사장의 영향력하에 놓인 회사로 볼 수 있다.
본텍과 현대오토넷의 합병 비율에 대한 논란도 정 사장의 지배구조 가속화에 대한 논란을 부추긴다. 양사의 합병 주당 평가액은 현대오토넷 8천9백84원, 본텍 23만3천5백53원으로 합병비율은 본텍 1주당 현대오토넷 주식 2.59주가 된다. 2개월 전 정 사장이 본텍 지분 30%를 지멘스에 매각할 당시 가격을 주당 9만5천원으로 잡은 것과 비교하면 두 달 사이 가치가 무려 2.5배가량 증가한 것. 정 사장이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하는 본텍의 가치를 부풀려 합병회사에서의 정 사장 지배력을 강화시켜 주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현대차측은 “(정 사장의 본텍 지분 매각 당시) 그룹 전장부문 육성을 위한 지멘스와의 기술협력 필요성과 해외진출 지원 등을 고려해 전략적인 차원에서 매각가격(9만5천원)이 (낮게) 결정됐다”며 경영승계와 무관함을 밝혔다.
글로비스의 연내 상장설 역시 관심사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이 지분 75%를 보유한 글로비스가 최근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해 이르면 연내 상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상장 이후 지배구조에 필요한 51%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매각해 정 사장이 기아차 지분을 사들이는 데 사용할 가능성이 높게 거론된다. 증권업계에선 정 사장이 상장 이후 글로비스 지배에 필요한 지분을 남기고 모두 매각할 경우 6백억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쥘 것으로 보고 있다. 본텍 지분 핵심을 이루는 글로비스의 상장과 가치 상승은 곧 현대오토넷+본텍 합병회사 내 본텍의 지배력을 강화시킬 것이며 이는 곧 정의선 사장의 합병회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평이다.
이번 합병 발표를 통한 본텍 주가 상승, 그리고 내년 2월 합병 이후 현대오토넷+본텍 주가의 상승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면서 차후 현대오토넷이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매집해 나갈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대모비스와 더불어 현대오토넷이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격으로 등장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곧 정 사장의 그룹 장악력 확대를 의미한다.
정 사장은 이미 지난해 11월 글로비스 지분 25%를 매각해 1천59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던 전례가 있다. 이 자금 중 일부로 정 사장은 지난 5월 현대차그룹 계열인 건설사 엠코의 지분 25.06%(1백13억원 투입)를 확보했다. 같은 달 설립된 종합광고대행사 이노션에도 지분 40%를 참여했다. 그룹 계열 비상장사 주식을 늘려가는 것이다. 엠코와 이노션은 모기업의 전폭적 지지하에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재계에선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정 사장이 주식을 다량 보유한 비상장사를 우량화해 상장시킨 뒤 정 사장이 이 회사들의 기본적인 지배구조에 필요한 지분 외의 주식을 매각해 막대한 이윤을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기아차 주식 매입에 필요한 자금 마련 차원이란 해석이다. 11월 초 정 사장은 기아차 주식 3백40만주를 사들여 지분비율을 종전의 1.01%에서 1.99%로 높였다. 이번 매입에 67억원가량을 쏟아넣은 셈.
그러나 기아차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이 정 사장에게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정 사장이 후계자로 인정받는 데는 분명 ‘호재’이지만 현재 지분 1% 확보를 위해 6백30억원가량을 쏟아야 하는 현실은 경영승계를 위한 인프라 확보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
이런 탓에 현대오토넷+본텍 합병회사의 향후 현대차 주요 계열사 지분 매입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