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청과물 시장에서 경매가 끝난 과일들의 하역 작업이 바쁘게 진행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급기야 지난 1월 5일에는 고구마를 단일품목으로 거래하는 한 중도매업자가 노조의 하역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양측 사이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양측은 이후 ‘하역권’을 두고 상급기관에 법령질의를 요청해 놓고 휴전을 선언한 상태다. 양측의 갈등은 임시로 봉합된 상황이지만 상급기관의 법령 해석이 나오면 다시금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일요신문>은 싸움터로 돌변한 가락시장 청과물단지 현장을 직접 찾아 양 측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1월 18일, 기자는 수도권 주민들의 농수산물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가락시장을 직접 찾았다. 가락시장은 최근 서울 최대의 농수산물유통시설이라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현대화시스템을 도입하고 일부 블록의 시장을 재건설하는 등 변신을 꾀하고 있다.
가락시장은 겉으로 봐서는 평온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최근 가락시장 내부사정은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5일 이곳에선 뜻밖의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고구마를 주품목으로 하는 중도매업자 및 출하농민 70명과 시장에서 하역을 줄곧 담당해 온 가락항운노조원들 사이에서 대규모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하역노조원 2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폭력사태를 둘러싼 사건의 쟁점이 간단치 않다. 갈등의 핵심은 ‘하역권’이다. 유통과정에서 하역이란 원산지에서 시장으로 넘어온 물건을 차에서 현장으로 내리는 작업을 뜻한다. 지난 27년간 가락시장에서 이러한 하역작업은 항운노조가 인력공급권을 행사하며 전적으로 담당해왔다. 사실상 하역작업에 있어서는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해 온 셈이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중도매업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항운노조에 대해 많은 불만을 제기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복잡한 유통구조 속에서 3년에 한 번꼴로 인상되는 하역비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에도 업자들과 노조 사이에서는 하역비 인상안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인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월 5일 고구마만을 단일품목으로 거래하는 중도매업자 김대수 씨는 원산지에서 고구마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항운노조의 하역권을 거부하고 현지 농민들과 ‘직접 하역’을 강행했다. 이에 자신들의 ‘하역권’을 주장해 온 노조 측은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몸싸움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노조 측은 독점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사실상 독점권이 없다. 단지 인력에 대한 공급권만 갖고 있을 뿐이다. 현지 농민들과 협의 속에서 우리가 알아서 물건을 들여오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조 측은 가격만 꾸준히 올렸지 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꾸물꾸물대는 통에 시간을 배로 잡아먹었다. 시간이 지연되면 될수록 상품의 질은 떨어진다. 때문에 농민들에게도 피해가 막대하다. 농민들과 직접 협의해 물건을 하역하면 우리도 농민들도 다 득이 된다. 농민들에게도 더 많은 몫이 돌아갈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충돌이 있기 전부터 노조 측에 법리에 따라 수차례 하역업무 중단을 요청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였다. 노조 측은 이를 계속해서 거부했다”며 그동안 노조 측과 주고받은 내용증명서를 제시했다. 내용증명에 따르면 김 씨는 ‘하역업무에 대해 외부의 용역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농수산물유통법 40조 4항을 제시하며 권리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존권이 걸려있는 노조 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기자와 만난 가락항운노조 측 관계자는 “우리는 27년간 하역을 해왔다. 인력공급권을 갖고 꾸준히 하역작업을 담당해 왔다. 가락항운노동자만 400명이 넘는다. 우리는 매일 14시간 넘는 중노동을 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힘없는 사람이다. 현재는 김 씨 한 사람과 갈등을 겪고 있지만 이것이 발판이 돼 연쇄적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끊으면 당연히 생존권을 위협받지 않을 수 없다. 또 상대편에서 자꾸 구조조정을 얘기하는데 우리는 지난 2003년부터 꾸준히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벌써 그 때보다 70여 명이 줄었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그는 “김 씨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작업을 느긋하게 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중도매업자들의 점포는 기껏해야 10평이다. 한 차씩 대놓고 차례차례 작업할 수밖에 없는 비좁은 환경이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또 고구마 같은 경우 품종이 워낙 다양해 선별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노조 측은 중도매업자들에 맞서 직업안정법 33조에 의거해 근로자공급사업 허가권을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가락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농수산물공사는 고용노동부와 농림수산식품부에 양측의 갈등과 관련한 법령질의를 해 놓았기 때문에 양측은 법령해석이 나올 때까지 잠정 휴전한 상태다. 상급기관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태지만 양측 모두 자기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는 만큼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오든 갈등이 도질 것으로 보여 우려를 낳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