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격호 회장 외손녀 장선윤 블리스 대표.
재벌들의 연이은 사업 철수 결정은 최근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서 먼저 벗어나겠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특히 호텔신라의 결정은 재벌들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이 말썽을 일으키자 삼성이 발 빠르게 아이마켓코리아(IMK)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연상시킨다.
재벌 2·3세들이 커피나 빵 등 소상공인 업종을 영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형성된 지는 오래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차치하고라도 ‘부모 잘 만난’ 재벌가 자제들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사업을 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 롯데 신세계 등 재벌가 자녀들은 커피·베이커리 등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그룹의 지원을 받아왔다. 동네 골목에서 빵집과 커피전문점을 창업해 힘겹게 운영하고 있는 소상공인들과 비교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비난 여론에 불을 지핀 재벌 중 하나가 롯데다.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차녀 장선윤 씨와 그의 남편 양성욱 씨가 장본인이다. 장 씨는 지난 2010년 11월 주식회사 블리스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주로 빵류·과자 제조 및 도소매업을 하고 있다. 장선윤 씨가 70%의 지분을, 나머지 30%는 어머니인 신영자 사장의 롯데쇼핑이 갖고 있다.
블리스는 프랑스 고급 베이커리 ‘포숑(FAUCHON)’을 들여와 운영했다. 블리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성남공장지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롯데백화점 내에 매장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 매장을 여는 데 별로 힘들이지 않았다는 것과 어떤 식으로든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도 짐작 가능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녀도 매장 열기가 힘든 소상인과 비교하면 식은 죽 먹기다. 그럼에도 ‘포숑’의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아 오히려 매장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블리스는 지난 31일 “포숑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장 씨의 남편 양성욱 씨의 사업도 눈길을 끈다. 2010년 12월 24일 부인 회사인 블리스 감사에서 사임한 양 씨는 지난해 9월 자본금 9억 원으로 브이앤라이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생활문화전문기업을 표방한 이 회사의 법인등기부상 사업목적은 무려 34개 항목. 부동산개발과 건설업, 의약품·의료기기, 화장품, 위생용품, 교육, 주류, 여행, 커피, 빵·과자, 재활용, 건강기능식품, 스포츠용품 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독일산 아기 물티슈 ‘포이달’
법인등기부상 블리스와 브이앤라이프의 본점 주소는 같다. 두 회사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같은 빌딩 같은 층에 있다. 부부가 사업을 함께 꾸려간다고 볼 수 있다. 부인은 빵집, 남편은 물티슈·생리대 사업까지 발을 넓힌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인 비난이 거세진 탓인지 양 씨는 지난 1월 20일 브이앤라이프 사내이사(사실상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한 것으로 <일요신문>이 처음 확인했다. 대신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은 1985년 국내 최초로 피자헛을 들여오고 이후 ‘성신제피자’로도 유명한 성신제 대표. 성 대표를 영입함으로써 브이앤라이프가 새로이 외식사업 진출을 계획했는지 모를 일이다.
삼성·LG가 등 재벌들이 잇따라 ‘골목상권’에서 철수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브이앤라이프 측은 입장 표명을 확실히 하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이 된 롯데가의 3세 부부의 행보는 계속 뜨거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