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증권이 강남파이낸스센터에 오픈한 HNW점포. VVIP 대상으로 영업하는 프라이빗뱅킹이다. |
PB는 금융업체가 거액자산가의 자금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1000만 원을 예치하는 고객 100명을 유치하는 것보다 10억 원을 가진 고객 1명을 유치하는 것이 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에 거액자산가일수록 금융권의 효자 고객으로 분류된다. 물론 이에 대한 대가로 세무·부동산·상속·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일대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부가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증권사는 PB 대신 WM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는데, 아무래도 PB에는 ‘뱅킹(은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개 PB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금액은 금융업체에 따라 5억~10억 원이다. 특히 30억 원 이상 예치하는 고객은 HNW(High Net Worth)로 따로 분류하고 있는데, 최근 삼성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 한국투자, 우리투자증권이 VVIP지점으로 만드는 점포가 HNW점포를 표방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신한, 하나은행이 PB업계의 강자로 통하고 있다. 한 증권사 PB 담당자는 “국민은행은 자산규모는 가장 크지만 서민은행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우리은행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국가 소유이다 보니 그간 PB 영업의 역사가 길지 않다”면서 “지난해 삼성증권이 PB 영업 강화를 위해 영입한 PB 직원이 대부분 신한·하나 출신으로 국민·우리 출신은 하나도 없었다”고 전했다.
▲ 이재용 사장. |
업계에서는 본격적 자산관리를 하는 곳으로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을 꼽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자산관리영업이라는 것은 장기적인 마인드로 안정적인 자산운용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증권사는 아무래도 주식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면서 “지금은 자산관리에서 수익이 발생한다기보다는 투자로 봐야 한다. 오너 차원에서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지 않으면 힘들다”고 밝혔다. 이 말을 삼성증권에 비춰 보면 그룹 차원에서의 전폭적 지원 없이는 증권사가 자산관리영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증권사의 자산관리영업은 블루오션으로 불리기도 한다. 증권사로서는 그간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장이지만, 은행으로서는 고객을 빼앗기는 입장이다. 이는 ‘예금·대출은 은행, 주식·펀드는 증권사’라는 공식이 깨지고 많은 영역이 겹치기 시작한 것이 원인 중 하나다. 은행은 직접 주식 거래는 못 하지만 펀드를 비롯한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고 있고, 증권사도 주식담보대출 등의 대출과 3년 만기 국공채 등 예금과 유사한 상품을 팔 수 있다. 부자들도 과거에는 은행에 모두 맡겼다면, 이제는 일부를 증권사와도 거래하면서 교차 검증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증권사가 가져가는 자산관리 물량이 워낙 미미해 은행은 그간 증권사에 대해 별도로 대응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증권이 은행권에서 20명가량의 PB 인력을 빼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2011년 3월 삼성증권이 서울파이낸스센터(SFC)에 지점을 내면서 같은 건물에 있는 신한은행 PB 직원 3명을 영입하자 신한은행이 같은 건물에서 업무를 보지 못하도록 소송을 낸 것은 유명하다. 은행에서 봤을 때 증권사에 빼앗기는 영역이 미미할지라도,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인력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의 공격에 은행들은 기존 PB센터 내에 계열 증권사 직원을 상주시키거나, 조금 발전된 단계로 은행과 증권사의 복합 점포를 만드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GFC에 확대, 오픈한 국민은행 PB지점은 증권사 직원 3명을 새로이 상주시켰고, 우리은행 GS타워점은 우리투자증권과의 복합점포다. 신한은행은 지난 연말부터 은행과 증권사를 합친 ‘PWM’(Private Wealth Management)점 3곳을 신규로 냈다.
한편 보험사로서는 최초로 삼성생명이 올 1월 GFC에 자산관리 전문 점포인 ‘패밀리오피스’를 오픈했다. 전통적으로 보험 영업은 개별 FC(옛 보험설계사)들에 의존해 점포영업이 중요하지 않았지만, 삼성생명은 FC들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발굴한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자산관리영업에서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들이 ‘은행고객 뺏기’에 주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삼성그룹이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피해 간접적으로 은행업을 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05년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공개한 ‘삼성금융계열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로드맵’에 따르면 은행 또는 금융지주사 설립이 용이하지 않을 경우 ‘은행업 포기, 증권·보험 위주 성장’이라는 시나리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2012년 인사를 통해 김석 삼성증권 현 사장과 박준현 삼성자산운용 현 사장의 자리를 맞바꾸고 김인주 삼성선물 사장이 가세한 것도 금융업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읽히기도 한다. 박준현 삼성자산운용 사장이 삼성생명에 오래 있다 보니, 삼성증권에서 관록을 쌓은 김석 사장을 포진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금융 계열사의 움직임은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삼성그룹 후계는 현재 이재용 사장이 전자·금융 계열, 이부진 사장은 유통·서비스 계열, 이서현 부사장은 패션·화학 계열을 나눠 맡는 것으로 윤곽이 잡혀 있다. 이재용 사장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금융업에 더욱 힘을 싣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인 셈이다.
이인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