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이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1월 15일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55)가 교수재임용 판결에 불만을 품고 당시 재판장이던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의정부지법원장)를 석궁으로 위협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지난 1월 25일 개봉한 이 영화는 8일 만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사법부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사건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사회적 공론을 불러일으키는 ‘제2의 도가니 사건’이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특히 2009년 8월 출간된 작가 서형 씨(37)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내용의 90% 이상이 실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서형 작가를 만나 영화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석궁사건이 영화화된 배경에는 서 작가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소속도 없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서 작가는 석궁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3년간 고군분투해 왔다. 그간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 작가가 쓴 <부러진 화살>은 출간 후 판사들은 물론 사업연수원생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한 변호사는 “충격적이다. 같은 법조인으로서 부끄럽다.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뉴스로만 접했던 석궁사건에 대해 낱낱이 파헤친 서 작가의 책을 읽은 동료 법조인들도 대부분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그는 “오죽하면 교수가 판사를 향해 석궁을 들었겠느냐”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을까. 영화속에 등장하는 공판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 서 작가는 “공판 내용은 실제와 비슷하다. 다만 인물 설정이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김 교수 역을 맡은 배우 안성기 씨가 너무 선하게만 그려졌다. 때문에 김 교수 특유의 성격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 작가는 이어 “안성기 씨가 워낙 신뢰감 있는 이미지 아닌가. 따라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마치 김 교수의 모든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일까 염려스럽기도 하다”는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서 작가에 따르면 김 교수는 고집 있는 원칙주의자다. 그동안 김 교수는 ‘승진을 염두에 두고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몇몇 판사들의 실태’와 관련한 음모론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또 김 교수가 ‘법 안 지키는 판사는 판사가 아니다’라며 법정에서 재판장을 ‘○○ 씨’로 칭했던 일은 이미 유명하다.
원칙주의적인 김 교수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은 이뿐만 아니다. 석궁사건이 일어나기 한 해 전 김 교수는 판사실명을 적은 피켓을 들고 지속적인 1인 시위를 벌여 명예훼손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서 작가는 “‘서울고-서울대-아이비리그’를 거친 김 교수는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인물이다.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는 그는 법원에 포진해 있는 인맥들을 활용해서 얼마든지 사건을 쉽게 풀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방법을 거부했다. 지인마저 적으로 두는 싸움방식을 택할 만큼 ‘꼼수’ 쓰는 것을 싫어했다”고 귀띔했다.
▲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
김 교수 특유의 꼬장꼬장한 성격은 그가 벌인 단식투쟁에서도 엿볼 수 있다. 1심 판결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김 교수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자 무려 32일간이나 단식을 하기도 했다. 서 작가에 따르면 김 교수가 단식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1심 판결문에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할 열정으로 인격 수양이나 하지 그랬느냐’는 내용이 버젓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 작가는 “김 교수의 자질과 인격을 심각하게 모독하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의 성격상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 언론은 개인에 대한 재판부의 모욕적인 처사에 대해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내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호소했으나 칼럼으로 지원사격을 해 준 사람은 언론인 손석춘 씨뿐이었다. ‘대쪽’ 이미지로 유명한 한 언론인은 내가 쓴 호소 편지의 문장을 분해해서 ‘이 부분은 일반적인 오류’라며 과외 선생님 같은 황당한 답장만 해왔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서 작가는 “단식을 결정할 무렵 김 교수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죽은 김형곤 말이 생각나는 군요. 내비둬, 나 이렇게 살다 그냥 죽을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 교수가 얼마나 억울하고 괴로웠으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할 결심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3년 전 다수의 언론들에게 배척당했던 석궁사건의 진실이 이번 영화를 통해 재조명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식과 재판 거부, 2011년 1월 만기 출소할 때까지 500여 건의 헌법소원 등 김 교수의 힘겨운 행적에 대해 세상이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 작가는 “그동안 사법부는 성역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법을 안키지는 판사는 잘못됐다’는 김 교수의 주장은 사법부의 고질적인 병폐에 메스를 들이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가 석궁을 쐈는지 안 쐈는지, 유죄냐, 무죄냐를 떠나 이 부분에서만큼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평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가 김 교수의 공판 기록을 보고 ‘정치적 퍼포먼스’로 폄하했던 것과 관련해서 서 작가는 “퍼포먼스라고 하기엔 김 교수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 일관성 있는 일을 벌여왔다. 초반에 김 교수를 괴짜로 여기던 주변인들까지 그의 행동에서 진정성을 느꼈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무죄라고 생각하느나’는 기자의 질문에 서 작가는 “석궁 들고 간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가 될 수 없다. 다만 충분한 증거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단언하기 어렵다”며 “특히 재판부가 석궁 실험, 혈흔, 감정 등 제대로 된 입증 노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아직도 아쉬움이 크다”고 답했다.
‘박훈 변호사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서 작가는 “박 변호사는 김어준 스타일”이라고 답했다. 한 마디로 매력적인 연설을 구사한다는 뜻이다. 서 작가는 책 <부러진 화살>에 박 변호사가 참여했던 대우자동차 부평사태를 넣고 싶었으나 박 변호사가 이를 거부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박 변호사는 부평사태를 이끈 주역이라는 이유로 남들을 이용해 자신을 포장하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책에 넣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니 거기엔 부평사태가 나오더라. 그래서 박 변호사한테 ‘너 겉멋 든 것 같다’며 쓴 소리 좀 해줬다”며 웃어 보였다.
박 변호사나 김 교수는 모두 캐릭터가 독특하고 친해지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작가가 2~3년간 아무런 대가 없이 오직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겠다는 명분으로 노력한 결과 지금은 서로 농을 주고받을 만큼 격의 없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영화에 관한 저작권도 크게 따지지 않고 책 제목을 무료로 영화사 측에 제공한 것도 이러한 돈독한 관계가 작용했다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서 작가는 “영화에서 문성근 씨가 분한 신태길 판사에게 아쉬움을 느낀다. 김 교수와 박 판사가 다투는 장면이 찍힌 CCTV 영상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사실조회를 보지도 않고 사건을 종결시킨 것은 큰 잘못”이라고 평했다. 이어 그는 “반면 문형배 판사의 경우 <부러진 화살> 저자인 나와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소속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할 만한 일이었는데 이를 각오하고 자문해줬다. 유명 판사임에도 국민과 소통하려는 진정성을 지켜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고 덧붙였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