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작은 사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2012년 업무보고를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여당인 한나라당을 앞서면서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정치권 분위기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곳은 기획재정부다. 민주당이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해왔던 감세정책과는 백팔십도 다른 ‘증세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감세정책으로 연소득 1200만 원 이하에 대한 소득세율은 8%에서 6%로, 1200만 원 초과∼4600만 원 이하는 17%에서 15%로, 4600만 원 초과∼8800만 원 이하는 26%에서 24%로 각각 낮아졌다. 다만 최고세율 구간이었던 8800만 원 초과에 대한 소득세율만큼은 35%에서 33%로 낮추려고 했지만 민주당의 반발로 시행되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해 국회 세법 개정과정에서 소득세 최고세율구간(3억 원 초과)이 신설(세율 38%)됐다.
문제는 이러한 증세 공세가 총선 이후 대규모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복지제도 확대를 위해서도 증세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해 신설된 과세표준 3억 원 초과에 대한 소득세 최고세율을 과세표준 ‘1억 5000만 원 초과’로 낮추는 세제개편안을 고려 중이다. 또 법인세 과표 최고구간 신설 또는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재벌들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대기업의 자회사 주식 배당금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움직임에 기획재정부는 현재 여소야대 정치지형에 대비해 증세 방어 논리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박재완 장관은 올해 들어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6시 칼퇴근령’을 내렸다. 이 덕분에 오후 6시가 되면 사무실들은 대부분 불이 꺼졌다. 하지만 청사 6층에 자리 잡은 세제실만은 예외였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증세 요구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지난해 이뤄진 세법 개정안의 후속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세법 개정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바꾸는 작업은 3∼4월에 진행됐기 때문에 2월까지 세제실은 한산했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증세 요구가 높아지는데다 4월 총선 이후 각종 증세법안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아지자 세법 후속 작업을 2월초까지 마무리 짓기로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총선 이후 나올 증세법안에 대응할 시간적 여력을 갖자는 전략인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유럽 재정위기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점을 활용해 정치권의 증세와 관련된 방어 논리를 만들어 놓을 예정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여소야대가 되면 의원 입법을 통해 증세를 내세운 세제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매년 해오듯이 9월에 감세를 중심으로 한 세제개편안을 내놓더라도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모두 뒤바뀔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세제 개편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만약 자신의 경제 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야당 증세안에 대해 거부권이라도 행사하면 논란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CNK인터내셔널의 다이아몬드 광산개발 관련 주가 조작 사건으로 사상초유의 검찰 압수수색을 당한 외교통상부도 여소야대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감사원 감사로 김은석 에너지 자원대사와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 등이 카메룬 다이아몬드 매장량을 부풀린 허위 보도자료를 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외교부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김 대사 등 관련자들은 이 같은 감사결과에 수긍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김성한 외교부 장관은 감사원 감사결과를 받아들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가 이명박 정부의 실세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CNK를 적극적으로 도운 경위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는 비판이 높아지면서 검찰이 외교부를 대상으로 수사를 시작한 상태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총선이 여소야대로 끝날 경우 검찰 수사 결과에 관계없이 국정조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외교부는 국정조사가 사실 규명보다는 의혹 부풀리기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딸 특채 사건으로 손상을 입었던 외교부 위상이 더욱 땅에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반면 그동안 찬밥 취급을 받아왔던 동반성장위원회는 여소야대가 될 경우 오히려 힘을 더 실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이익공유제 등을 주도해왔으나 대기업은 물론 정부 내부의 반발에 발목이 잡혀왔다. 한때 정운찬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실세 중 한 명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잦은 비판에 사퇴를 거론할 정도로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대기업 압박이 높아지는데다 여소야대 가능성까지 생기면서 동반성장위원회에 힘이 실리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여부를 놓고 논의 중인 빵집과 외식업 등의 경우 결론이 나기도 전부터 삼성과 롯데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철수를 선언했다. 또 대기업들은 그동안 이익공유제에 반대하며 동반성장위원회 전체회의에 불참해왔으나 높아지는 정치권의 압박에 못 이겨 2일부터 회의에 복귀했다.
대기업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정치 흐름을 타고 대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매출액의 5%를 넘어서거나 50억 원이 넘는 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 내역을 3개월마다 모두 공개토록 했다.
또 대기업을 상대로 한 소비자 집단소송에 대한 예산지원도 하고 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에 대해서는 현재 경제상황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침투와 재벌 일가의 사익 추구를 막을 대체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