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호제지측은 신한은행의 지분 매입 사실을 두고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시도라며 신한은행을 연일 맹비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월25일 서울역 앞에서 있었던 신호제지측의 규탄대회. | ||
신호제지 경영권 분쟁에는 국일제지 외에도 건설업체인 신안그룹, 컨설팅업체인 아람FSI, 그리고 신한은행까지 가세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복잡한 전개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신호제지 오너인 이순국 회장이 워크아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느냐 마느냐가 분쟁의 핵심이다.
1971년 삼성특수제지로 설립된 신호제지는 1998년 외환위기로 워크아웃기업으로 지정됐다. 이후 2004년 말 워크아웃 졸업을 앞두고 채권단(제일은행, 산업은행 등)은 아람FSI(Financial Service Inc.)가 구성한 컨소시엄에 신호제지를 팔았다.
구조조정 컨설팅업체였던 아람FSI는 신호제지 2차 채무조정시 실사 책임자로 참여한 바 있다. 컨소시엄에는 아람FSI가 직접 19.3%, 아람FSI가 주도한 아람구조조정조합(신호제지 대리점업체들이 참여)이 13.7%, 3개 캐피탈(신한캐피탈, 한국캐피탈, 신한3호구조조정조합)이 17.4%, 피난자인베스트먼트(인도네시아 투자사)가 8.7% 지분으로 참여했다.
인수 후 아람FSI는 기존 경영진의 퇴임을 요구했고 6명의 이사는 사임을 했으나 창업주인 이순국 회장은 이사직을 내놓지 않았다. 아람FSI는 회사를 인수했음에도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면서 양측의 갈등은 불거지기 시작했다.
신호제지측은 “워크아웃 작업으로 회사가 정상화되어 가고 있는데 아람FSI측이 회사를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반면 아람FSI측은 부실을 초래한 무능력한 경영진의 부도덕함을 이유로 들고 있다.
신호제지와 아람FSI가 8개월간 대립하던 가운데 지난 8월2일∼4일 국일제지는 신호제지 지분 19.8%를 사들이고 임시주총을 요구했다. 11월1일 수원지법은 임시주총신청을 허가했다.
임시주총이 허가된 지 일주일 후 레저·건설사업체인 신안그룹은 11월4일∼8일 신호제지 지분 11.8%를 사들이며 신호제지의 백기사를 자처했다. 신안그룹측은 주가차익을 위한 투자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신호제지의 이순국 회장이 평소 친분이 있는 신안그룹의 박순석 회장에게 구조요청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시 일주일여 만인 11월14일 신한은행은 아람구조조정조합이 가지고 있던 신호제지 지분 11.8%를 전격 매입하고 국일제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신한은행은 이를 주권정지일 직전 장후마감시간에 매입해 신호제지의 허를 찌른 것이다.
신한은행은 이를 사흘 뒤 공시했는데 이를 몰랐던 아람구조조정조합원(신호제지 대리점들이 주요 구성원)들은 15일 조합총회를 열고 신호제지 현 경영진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신한은행이 이 지분을 모두 사들인 상태라 그야말로 공염불이 되고 만 셈이다.
이 때문에 신호제지는 11월23일 신한은행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주요일간지 1면 광고에 싣는가 하면 25일 서울역 앞에서 신한은행 규탄대회를 여는 등 총공세를 펼쳤다.
신호제지측은 “신한은행은 신호제지 워크아웃 당시 2천5백억원의 대출약정서를 작성하며 ‘아람FSI와 아람구조조정조합의 지분이 33% 미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내걸었는데, 이를 스스로 깨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동시에 경영권 탈취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며 흥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은 “채권자가 자금을 빌려주면서 약속받은 조항을 채권자가 변경한 것인데 이를 비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현 경영진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무리한 차입경영과 유상증자를 해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소액주주에게 피해가 가는 만큼 새로운 경영진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1월16일 신호제지 대리점 등 협력사들은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 구조조정조합 지분을 신한은행에 매각한 아람FSI를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하는 한편 신한은행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한편 아람FSI도 법원에 신호제지의 신주발행금지가처분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현재로서는 신호제지·신안그룹의 우호지분이 29.9%, 국일제지·신한은행의 우호지분이 53.9%로 국일제지의 승리가 점쳐지지만, 신호제지는 신한은행의 의결권행사 금지 가처분신청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직까지 신호제지측에도 희망은 남아 있는 셈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