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죤 본사 전경. 피죤이 잇따른 악재로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은 사진은 이윤재 회장. 김미류 인턴기자 kingmeel@ilyo.co.kr |
지난해 국내 섬유유연제 시장점유율 결과만 보더라도 피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 수 있다. 1월 29일 시장조사업체 닐슨은 LG생활건강의 섬유유연제 ‘샤프란’이 43.3%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피죤으로선 30년여 만에 빼앗긴 자리기에 씁쓸할 수밖에 없다. ‘샤프란’과의 격차도 약 15%포인트라 재탈환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피죤의 수장이 된 이주연 부회장은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1964년생인 이 부회장은 1996년 피죤 디자인팀장으로 입사한 후 전공을 살려 디자인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부회장은 영문학, 경영학뿐 아니라 미술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 미술대학과 뉴욕 퀸스대학대학원(회화)을 거쳤으며 미국 유학 당시에도 패키지 디자인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출발한 탓인지 현재까지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취임 자체를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이 부회장이 대표이사가 됨과 동시에 이 회장 부부가 사내이사로 남아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 게다가 이 부회장 취임 직후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준비한 대규모 패키지 리뉴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섬유유연제에 하얀색 용기를 도입해 깨끗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소비자들은 “먼지가 쌓여 지저분하게 보인다. 산뜻해 보이기는커녕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라는 불만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지난 1일 피죤 일부 제품에 대한 리뉴얼 취소 방침이 확인됐다. 피죤 관계자는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고려해 일부 제품의 패키지 리뉴얼은 취소하기로 했다”면서 “하얀색 용기로 변경됐던 제품은 기존의 반투명 패키지로 다시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피죤의 자금상항도 여유롭지 않아 보인다. 중국 사업이 신통치 않은데다 지난해 8월 70억 원의 전환사채까지 발행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그동안 채무관계만큼은 깨끗한 이 회장이었기 때문에 ‘진짜 위기가 닥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한때 회사 매각설까지 돌았던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량으로 ‘짝퉁’ 제품이 유통되는 사건이 발생해 물질적 손해는 물론 회사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1월 17일 서울 혜화경찰서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 화성의 세제공장에서 섬유유연제를 만든 뒤 가짜 피죤 용기에 담아 2만 4000개를 판매한 혐의로 이 아무개 씨(45)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씨는 피죤 대리점을 운영한 경력이 있어 쉽게 범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는 “피죤 회장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회장이 구속되면 회사도 도산해 제품관리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만들었다”는 황당한 범행동기를 밝혀 피죤에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피죤 측은 “일단 결과를 기다려보면서 회사에서도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이 소유한 서울 강남 피죤 건물에 입주했던 이 아무개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이 씨는 “관리비가 너무 비싸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결국 이사를 결심했는데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아 피죤과의 상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피죤이 접촉을 피했고 계약 만료 2개월을 남기고 이사를 했는데 나중에 딴죽을 걸어 난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를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사무실을 옮겼지만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아 두 달분의 임대료와 관리비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피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좋지 않지만 가족 간의 관계도 순탄치 못하다. 이 회장의 아들 이정준 씨(45)는 피죤의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피죤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이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론이 탄탄한 아들이 조만간 경영에 합류해 피죤에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부자지간에 소송전이 벌어져 관계를 되돌리기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들 이 씨가 지난해 6월 회사를 상대로 배당금 지급명령을 신청한 것. 인천지방법원은 “이 씨에게 5억 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회장이 즉각 반발에 나서 소송전이 벌어졌다. 이 회장은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정식 배당금 청구소송이 진행됐다. 피죤 관계자는 “9월 재판이 열렸고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후로는 이 회장과 이정준 씨 사이에 더 이상의 소송이 이어지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악재가 계속 되는 상황에서도 부회장을 내세운 피죤은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은 물론이고 소비자 트렌드에 맞춘 제품 리뉴얼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피죤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등장으로 회사가 좀 더 젊어질 것이다.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 부회장이 어떤 방법으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