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보건복지부가 전국 성인 남녀 6022명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근 1년간 약 16%에 해당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평생 우울증을 앓은 경험이 있는 이는 약 271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 성인남녀 6명 중 1명꼴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최근 들어 정신과를 찾는 이들이 증가하는 동시에 ‘심리회식’과 같은 독특한 요법의 우울증 탈출 프로그램들이 유행하고 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이 대리, 내가 미안하네.”
평소 나를 구박하던 상사나 ‘직장 내 왕따’를 주도한 동료에게 허심탄회한 사과를 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심리회식’이 등장하면서 직장 내에서 틀어졌던 인간관계가 극복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리회식이란 술잔 대신 마음을 주고받고, 권위를 내려놓고 존중을 트레이닝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식명칭은 ‘심리워크숍’이다. 현재 서울, 인천 등지에서 심리상담 카페가 연달아 문을 열어 호황 중이다. 심리상담 카페는 지난해 정신과 전문의이자 칼럼니스트인 정혜신 박사가 국내 최초로 도입해 직장 회식문화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 심리궁합 추가요.” 모 기업에 근무하는 박 아무개 씨(35)가 회식 자리에서 외친 독특한 주문이다. 이처럼 심리회식은 삼겹살과 소주 대신 심리프로그램을 주문해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심리카페에서는 게임, 성격분석, 갈등원인 해결 등 다양한 심리분석 프로그램을 토대로 약 2~4시간 동안 심리상담이 진행된다. 이때 교류분석전문 상담사들이 투입돼 독특한 테스트와 게임을 통해 틀어진 직장 내 관계를 해결하는 것을 돕는다.
실제로 몇몇 심리상담 카페를 방문해보면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의 심리를 분석하는 독특한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은 이런 수요를 반영하듯 지난해 8월부터 아예 사내에 ‘심리카페’를 열었다. 당시 사원들의 참여가 다소 저조했으나 올 들어 서는 이곳을 이용하는 직원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심리회식으로 팀 내 문제를 해결했다는 S 기업 박 아무개 과장은 “그동안 음주가 가미된 회식은 남성적인 문화가 강해서 여사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심리회식을 통해서 팀 내 화합을 도모할 수 있었다”며 “특히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여사원들과의 갈등을 심리회식을 통해 조정할 수 있었던 게 의외의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맞는 색을 찾는 ‘컬러테라피’도 심리회식과 더불어 20~30대 직장인들 사이서 우울증 치료법으로 단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컬러테라피는 전문 컬러리스트가 일대일 상담을 통해 개인고유의 성격,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는 맞춤형 컬러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한 개그맨 지망생 A 씨는 그간 거듭된 불합격으로 우울증 증세를 보였으나 이를 극복하고자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맞춤형 컬러를 상담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자신감을 되찾아 결국 모 지상파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해 화제를 모으면서 컬러테라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 유명 컬러리스트 김미진 씨는 “컬러 진단을 내릴 때 의뢰인의 이미지, 눈동자색, 피부색, 눈매, 성격, 얼굴형 등을 고려해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떤 타입인지 알아낸다. 개인 맞춤 컬러를 찾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최소 1시간 정도”라면서 “이런 조사를 토대로 소심한 성격이라면 얌전하고 신중하게 보일 수 있게 하는 개인 컬러를 찾아준다. 외면(겉모습)이 바뀌면 자연히 자신감도 생기게 마련이다. 컬러테라피를 받고 우울증을 극복한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컬러테라피를 받고자 하는 정치인들도 알게 모르게 늘었다는 게 해당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20대의 경우 진로 문제를 고민하다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장진주 드림디자인 연구소장(여·32)은 ‘드림디자인’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장 소장은 국내 최연소 리포터(20세)로 방송을 시작해 아나운서, 연극배우, 작가, 교수 등을 두루 경험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드림디자인이란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드림디자인은 진로 설정을 3D 방식으로 구조화해 심리 진단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18개 국내 유명 대학에서 강연을 했는데 참여 인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취업 문제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정신과 가기 전에 드림디자인을 받아보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들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양재진 W진병원 원장은 최근 한 케이블 TV에 출연해 ‘성형수술을 결정하는 이면에는 정신적인 상처가 있다’는 말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인의 가슴이 크든 작든 바람 필 놈은 핍니다” 등 허를 찌르는 발언은 이미 온라인상에서 ‘양재진 어록’으로 떠돌 정도로 인기가 높다.
양 원장은 “환자와 진심으로 소통하고자 하고 그 상담 과정을 객관화하는 노력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산 것 같다”며 “최근 몇 년간 연예인 자살 등 우울증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도 이런 관심을 받게 된 요인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