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공장 벽면에는 탄환으로 패인 흔적이 엿보인다. |
이 사건은 왕따에 대한 보복일까, 아니면 정신이상자의 광기일까. 피의자 사망으로 원인 규명이 힘들어진 가운데 서산 엽총 난사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찾아가 봤다.
지난 2월 15일 오전 9시 40분께 서산시 동쪽 외곽에 위치한 수석동 농공단지 내에서 난데없는 총성이 울렸다. 자동차 시트 제조공장의 시끄러운 기계음이 무색할 정도로 총성은 컸다. 총성은 모두 50여 발로 이 공장의 전 직원이었던 성 씨가 엽총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성 씨는 공장 입구에 차량을 주차한 뒤 승용차에 탄 채 미리 준비한 수렵용 엽총을 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50여 발을 난사한 성 씨는 범행 후 인근 서산IC를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울 방향으로 달아났다. 이때부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차량 추격전이 벌어진다. 공장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곧바로 추격에 나섰다. 고속도로 CCTV 확인결과 성 씨의 차량은 당진 IC 전 4㎞ 부근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곧바로 성 씨의 차량을 뒤쫓았고, 성 씨는 추격 중인 경찰을 향해서도 엽총 10여 발을 발사했다. 총알은 경찰 차량의 운전석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관도 생명이 위험할 뻔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성 씨는 이후에도 밀착 추격 중인 경찰 차량을 향해 엽총 10여 발을 추가로 발사했다. 경찰은 약 20㎞에 달하는 추격전을 벌인 끝에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를 지난 지점에서 성 씨를 검거했다.
이번 엽총 난사로 공장 하역장에서 일하던 직원 최 아무개 씨(37)가 숨지고 임 아무개 씨(30)와 문 아무개 씨(56) 등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최 씨는 성 씨가 조준 사격한 탄환 10여 발을 가슴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고, 가슴에 총상을 입은 임 씨는 폐를 일부 절제하는 등 중상을 당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 씨는 경찰에 붙잡히기 직전 농약을 마셔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다. 위세척 등 긴급조치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성 씨는 2월 18일 약물중독에 의한 급성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
사건 발생 하루 뒤 찾은 사건 현장은 갑작스런 동료의 죽음에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총기 난사가 벌어진 자리를 지나가던 한 공장 직원은 “지금은 페인트칠도 다시 했고 화장실 문도 교체했다. 하지만 사건의 후유증 때문인지 직원들이 이 자리에 담배 피우러 잘 나오지도 않는다. 세상에 별 일이 다 있다”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 탄환 발수를 표시한 숫자는 47번까지 적혀 있었다. |
그렇다면 성 씨는 왜 이와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세간의 관심은 성 씨의 범행 동기에 집중되고 있다. 성 씨는 검거 직후 범행 동기에 대해 “공장에 다니던 시절 직원들이 나를 괴롭혀서 보복하기 위해 총을 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와중에 2월 16일 서산시에서 기자와 만난 택시기사 A 씨는 과거에 이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A 씨는 “그때 그 사람이 총 쏜 사람(성 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공장에서 일할 당시 사내에서 수습사원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자꾸 까먹어 왕따를 당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총격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과거 직장 내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공장 측은 몹시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성 씨는 2009년 2월부터 그해 5월까지 이 공장 관리부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했다. 사망한 최 씨는 성 씨의 직속 상사로 같은 시기 함께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두 사람과 함께 근무를 한 공장 관계자를 통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어봤다. 공장 관계자는 “그때 당시에 최 씨는 과장이었고 성 씨는 수습사원이었다. 관리부 직원은 그 두 사람뿐이었다. 집단 따돌림은 말이 안 된다”면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성 씨에 대해 “차분하고 건의사항 한 번 없었다. 다소 내성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덧붙였다.
성 씨가 일을 그만두게 된 상황에 대해 묻자 공장 관계자는 “어느 날 최 씨가 성 씨의 사직서를 들고 왔었다. 당시 최 씨의 말에 따르면 성 씨가 ‘일이 어렵다. 적응이 안 된다’며 사직서를 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엽총 난사 사건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 발생 며칠 전 공장에 어떤 남자로부터 최 씨의 재직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었다는 사실도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대해 공장 관계자는 “누가 전화했는지 확인 된 바 없다. 성 씨가 전화했는지, 과거 거래처 직원이 전화했는지 알 수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각도로 수사하던 가운데 피의자가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산 엽총난사 사건은 피의자의 사망과 함께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