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과실치사상이나 직무유기 적용 가능…법조계 “유죄 입증은 다른 문제, 법적 다툼 여지”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법적 다툼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에게 적용 가능한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인데, 이들의 업무가 통상적인 대응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과실’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경찰이 ‘납득할 수밖에 없을 만큼 명백한 실수’를 찾아내 검찰에 사건을 넘기는 게 아니라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찰청장 집무실 압수수색
11월 8일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오전부터 경찰청과 용산구청, 용산소방서 등 55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특수본은 서울경찰청 정보·경비부장실과 112상황실을 비롯해 용산경찰서장실, 용산서 정보·경비과장실을 들이닥쳤다. 특히,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는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집무실도 포함됐다. 이 밖에도 용산구청에도 수사 인력을 보내 박희영 용산구청장 집무실과 부구청장실, CCTV 통합관제센터 등 19곳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경찰은 6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112 상황 관리관으로 당직을 섰던 류미진 총경, 용산서 정보과장과 계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는데 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셈이다.
특수본은 사고 현장에 늦게 도착한 이임재 전 서장과 사고 당시 112 상황실을 최소 1시간 이상 비우고 상부 보고도 늦게 한 류미진 총경을 1차 수사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임재 전 서장의 경우 삼각지역 인근에서 식사를 하다가 현장에 찾는 데 걸린 1시간여 동안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상황실을 지키지 않은 류 총경은 그동안 무얼 했는지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태원 일대 CC(폐쇄회로)TV 157개와 압수물 600여 개에 대한 1차 분석을 끝내고 현장 상황이 담긴 녹취 등도 분석 중이다. 또한 8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주요 피의자와 참고인의 휴대전화, 핼러윈데이 관련 문서, PC 전자정보 등도 분석해 혐의 입증에 주력할 방침이다.
#대통령 발언이 수사 가이드라인?
윤석열 대통령의 불호령이 있은 뒤 이뤄진 발 빠른 조치다. 압수수색 하루 전인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사고 관련 경찰에 대한 질책성 발언을 쏟아냈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데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제도 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아마 초저녁부터 사람들이 모이고 6시 34분에 첫 112 신고가 들어올 정도가 되면 (현장은) 거의 아비규환의 상황이 아니었겠느냐”며 “그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또 “정보역량이 뛰어난 우리 경찰이 왜 네 시간 동안 물끄러미 (상황을)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며 “(경찰들이) 현장에 나가 있었다. 112 신고가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걸 제도가 미비해 대응을 못 했다고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나”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10월 29일 사고 이틀 뒤인 31일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행사 책임자를 단정 짓지 않았던 것과 달라진 발언이다. 이날 회의엔 윤희근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도 참석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이뤄진 압수수색을 놓고 ‘수사 지휘를 한 셈’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는 “검찰총장 출신이니, 대통령의 발언이 어떻게 수사기관들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이번 이태원 참사의 가장 주된 책임을 경찰 핵심 관계자들에게 있다고 보고 이들을 수사해 사안을 마무리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날 회의는 비공개로 이뤄졌지만, 대통령실은 발언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수사 지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죄 받아내는 데 성공할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가 불가능한 지점이기 때문에 사건은 경찰 특수본이 전담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특수본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기면 그대로 재판에 넘겨 공소를 유지하는 선에서 협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법조계는 기소 범위와 유죄 판단 입증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이나 직무유기 정도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형법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업무상 과실 여부를 적용하기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는 분석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에는 ‘위험 방지’를 위한 경찰 직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경찰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 등이 있는 천재·사변이나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경찰이 위험 방지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고 적고 있다. 법원이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나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112 상황 관리관(총경)에 대해 “지휘권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2015년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당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은 현장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2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는 무죄였지만 2심 재판부는 “지휘권을 적절히 행사해 실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현장 지휘관과 살수차 조작 요원들에게도 각각 징역·벌금형이 선고됐다.
특히 이임재 전 서장이나 류미진 전 총경의 경우 직무유기 혐의도 적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하는 죄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사고 당시 자리를 비웠던 류미진 총경의 경우 직무유기를 적용하면 유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참사 사례 살펴보니…
과거 한국사회 속 참사들이 어떤 재판 결과를 받았는지 훑어보면 경찰 수사 방향을 더 예측할 수 있다. 1995년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붕괴해 사상자 약 1500명이 발생했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밝혀졌고, 당시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과 각 단계별 건설사, 시공사, 지자체 관계자들이 업무상과실치사상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각 단계별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있다고 봐 각 단계별 관련자들을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 해 앞서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때는 교량 건설회사의 트러스 제작 책임자, 교량공사 현장감독, 발주 관청의 공사감독 공무원 등이 업무상과실치상, 업무상과실일반교통방해, 업무상과실자동차추락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동정범은 고의성이 없는 단순 과실범의 경우에도 성립한다.
익명의 한 판사는 “피의자가 된 경찰 간부들이 다른 사건들과 비교해 통상적인 대응을 했는지, 혹은 명백한 실수가 있었는지를 경찰과 검찰이 충분히 입증했는지, 관련 증거를 재판부가 보고 판단하는 게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며 “가이드라인을 지켰고, 충분한 보고를 받지 못했거나 직접 확인하지 않아 참사가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고 볼 수 있는 증거들을 거꾸로 피고인들이 입증한다면 총경 이상급 책임자들이라고 해도 유죄를 선고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세월호 때도 그랬듯이, 15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참사이기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사건에 따른 여론을 달래기 위해 경찰들 중 일부가 꼬리 자르기 식으로 처벌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도 함께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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