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로지 기술력으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극복한 정재송 대표.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제가 그 ‘물칼’을 만든 사람입니다.”
(주)AST젯텍 정재송 대표이사(54)의 말이다. 1995년 (주)젯텍을 세운 정 대표는 ‘물칼’, 즉 워터제트(Water-jet)를 응용, 반도체 후공정 중 세정(디플래싱·Deflashing) 장비분야 세계 1위에 올려놓고 각종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로 영역을 넓혔다. 정통 엔지니어 출신 ‘강소기업’ 경영자, 정 대표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 봤다.
“제고향이 ‘삼강주막’으로 유명한 경북 예천 풍양면 삼강리입니다. 앞은 강으로, 뒤는 산으로 막혀 있는 곳이죠. 믿지 못하시겠지만 늑대가 출몰하는 새벽 산길 20리(8㎞)를 1시간 넘게 걸어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그토록 힘들게 새벽공부까지 했건만 정재송 대표 집은 고등학교를 보낼 형편이 안 됐다. 그의 선택은 기숙사 있고 학비 싸고 장학금 많이 주는 학교, 부산기계공고였다. 그는 한풀이라도 하듯 고2 때 단번에 정밀가공사 자격증을 따며 장학금을 받았다. 곧바로 설계사 자격증까지 추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는 1976년 동명중공업에 입사하며 유압 엔지니어로 거듭난다.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 선언으로 당시 재계 수위를 다투는 동명목재가 동명중공업을 설립하고 고 강석진 회장이 직접 학교로 와 인재를 발탁했습니다. 당시로선 최고 대우를 받으며 입사한 데다 기술제휴사인 가와사키중공업 기술진 눈에 띄어 연수 기회까지 얻었죠. ‘중공업의 꽃’인 유압 기술 전수를 제가 다 받았습니다.”
연수 후 어린 나이에 유압기술팀장에 오른 그의 기술력은 업계에 알려졌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1982년 대우조선으로 회사를 옮긴 그는 업무파악도 다 하기 전에 큰 사건을 통해 유명세를 탄다.
“자동차운반선을 시운전하면서 차를 싣는 다리를 내리다가 유압이 풀려 그냥 부두를 때리며 박살이 났어요. 수리기간 때문에 인도 지연금을 물게 생겼으니 난리가 났죠. 불러서 가보니 설계가 거꾸로 돼 있더군요. 설계업체가 처음엔 문제없다고 우겼지만 결국 설계 잘못을 인정했고 회사는 엄청난 돈을 물어주지 않아도 됐습니다.”
대우조선 입사 4년 만인 1986년 동명에서 사장을 지낸 선배가 창업하는데 기술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그는 미련 없이 거제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그가 1년 만에 개발한 게 바로 ‘물칼’이다.
“기술적으로 유명해졌지만 돈이 안됐습니다. 자동차 대시보드에 구멍 뚫는 장비는 괜찮았지만 생산성이 좋아 한 차종에 한 대가 고작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몇 종 안 되던 시절이라 몇 대 팔면 끝이었던 거죠.”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1995년 독립한다. 당시 막 발전하기 시작한 반도체 장비 산업에 뛰어든 것.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표면에 이물질을 제거하는 공정이 필요해요. 당시에는 고운 모래를 때려 닦아내는 방법밖에 없었죠. 일본에서 개발한 건데 문제는 가격도 비싸고 먼지 소음에 유지비도 엄청나요. 이걸 워터제트로 하면 어떠냐는 의뢰가 들어왔는데 사장과 의견이 맞지 않아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1995년 3월 회사 설립, 5월 특허등록, 7월 1호기 생산…. 창립 멤버 세 명이 개발과 영업을 진행한 결과 창업 이듬해인 1996년 1월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사에 첫 납품이 이뤄졌다.
“우리가 장비를 개발했다고 하니 반도체회사 중역이 못 믿겠다며 직접 확인하러 온대요. 공장도 없이 사무실에 시제품만 덩그러니 있는 걸 보여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분양하는 공장 3개월만 급히 빌리고, 친구 공장 장비를 실어와 채워 넣은 뒤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 중역이 와서 시제품을 보더니 바로 발주하겠다더군요.”
덕분에 1996년 매출은 12억 원에 육박했다. 그렇게 운이 트이는 듯싶었지만 정 대표는 바로 외환위기를 맞는다.
“해외에 나가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납품 대금으로 받은 2억 원을 일단 움켜지고 있으니 바로 IMF 외환위기가 터지더군요. 6개월 지나니 매출이 영(0)이 돼요.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몇 나라만 제외하고는 활황기였습니다. 수출 본격화 계기가 된 거예요. 게다가 그 전에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우수 인력도 확보할 수 있었고 벤처지원자금도 받아 자금난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현재 개발 중인 장비에 대해서 직원과 대화하는 모습. |
“사실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투자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때 ‘젯텍만 가지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RFID(무선인식), 레이저 커팅·본딩(접합) 장비 개발을 본격화한 게 그때쯤입니다.”
2010년 본딩 전문 AST(에이에스티)를 인수, 지난해 초 합병해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분야에 진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기반으로 AST젯텍은 2010년 매출 226억 원, 영업이익 65억 원(합병 전)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지난해 매출 554억 원, 영업이익 62억 원(합병 후, 잠정)을 달성한 그는 레이저에서 미래를 찾는다.
“정밀산업의 발전에 따라 레이저 수요도 늘어나는데 우리나라가 유독 레이저만큼은 선진국을 못 따라가요. 장기적으로 레이저 정밀가공 기술 개발에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① 준비를 하라. 항상 뭐가 필요할까 미리 대비해놓아야 한다. 준비하지 않으면 필요할 때 못 쓴다.
② 내 기술을 돈이 모이는 곳에 쓰이게 하라. 예를 들어 과거 반도체가 돈이 됐다면 이제 스마트폰에 기술이 쓰이도록 움직이라는 것이다.
③ 돈을 잘 써라. 돈 버는 건 여러 사람의 목적이니 힘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쓰는 건 그렇지 않다. 공정하고 공감 있는 분배에 신경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