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캡 최대 변수 작용…박민우 NC행은 ‘선수 의지’, 퓨처스 이형종 키움행은 ‘다년 계약’ 선물 덕
이번 FA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샐러리캡’이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샐러리캡의 상한액(114억 2638만 원)을 넘으면 첫해에는 제재금만 내면 되지만 2년 연속 샐러리캡을 초과할 경우 제재금에다 드래프트 순위까지 밀린다. 따라서 이번 FA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팀들은 샐러리캡에 여유가 있는 롯데, 한화, 키움 등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통합 우승을 이뤘고, 주전 포수가 필요했던 SSG가 포수 영입에서 한발 뒤로 물러선 건 샐러리캡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지난 11월 10일 SSG는 인천 영종도의 한 호텔에서 비공개 우승 축하연을 열었다. 정용진 구단주를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이 모여 통합 우승의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 축하연 후반부엔 선수들의 장기 자랑이 열렸다. 주로 나이 어린 선수들이 마이크를 잡았는데 분위기가 좀처럼 흥이 나지 않자 32세의 이태양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가 사회자한테 요청한 음악은 남진의 ‘둥지’. ‘너 빈 자리 채워주고 싶어 내 인생을 전부 주고 싶어 (중략) 우린 더 이상 방황하지마 한눈 팔지마 여기 둥지를 틀어’ 등의 가사로 이뤄진 노래를 부른 이태양은 FA를 앞둔 자신의 신분을 빗대 정용진 구단주 앞에서 “SSG에 둥지를 틀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당시 이태양은 참석자들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내며 1등 상금을 받았고, 정용진 구단주도 이태양의 셀프 홍보에 웃음을 터트렸다는 후문이다.
SSG와 계속 동행을 이어갈 줄 알았던 이태양은 11월 23일 한화 이글스와 계약 기간 4년, 총액 25억 원(계약금 8억 원, 총 연봉 17억 원)에 사인하면서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2010년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36순위로 한화에 지명돼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2020년 6월 SK 와이번스(SSG) 외야수 노수광과 1 대 1 트레이드로 이적한 바 있다. 2022시즌 이태양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8승 3패 1홀드 평균자책점 3.62로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FA 시장에 나온 이태양은 가장 먼저 SSG의 입장을 듣고 싶어 했다. SSG는 올 시즌 연봉을 적용했을 때 이미 샐러리캡 상한액이 초과된 상태이고, 고액 연봉자들의 연봉을 조정한다고 해도 샐러리캡 상한액 초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결국 SSG는 이태양 에이전트 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이태양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다. 이태양 에이전트는 “SSG가 그 정도의 계약 내용을 제안했다는 건 이태양을 잡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했다”고 말한다.
SSG의 상황을 파악한 이태양 에이전트는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한화와 접촉했다. 한화도 이태양한테 관심이 컸지만 트레이드로 내보낸 선수를 다시 데려오는 데 대해 부담을 갖고 있었다. 한화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NC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NC가 이태양한테 제안한 조건은 4년에 25억 원이었고 옵션을 포함할 경우 28억 원에서 30억 원 사이였다. 이태양으로선 많은 금액을 제시한 NC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태양 에이전트는 한화가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체되는 걸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NC 구단한테도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화에 데드라인을 정해주고 이 시간까지 연락이 없으면 NC와 협상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마침내 11월 22일 저녁에 한화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계약 내용은 옵션 없이 보장금액으로 4년 25억 원(계약금 8억 원 연봉 17억 원)이었다.
이태양 에이전트는 “물론 선수 몸값을 더 올리려면 NC와 다시 협상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선수가 한화의 계약 내용을 만족했기 때문에 한화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NC 구단 측엔 죄송하다는 전화를 드렸다”고 설명했다.
이태양도 크게 만족했다. 무엇보다 다시 돌아가는 팀이 한화였고, 한화 선수들과 의기투합해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자신감도 생겼다. 물론 SSG를 떠나는 부분이 아쉽기도 했지만 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서운한 마음을 접었다.
이태양의 한화행이 발표된 23일 오후엔 NC에서 초대형 계약을 발표했다. FA 시장에서 내야수 최대어로 손꼽힌 박민우와 계약기간 8년(5+3년), 최대 140억 원에 계약을 맺은 것이다. 보장 금액은 계약금 35억 원에 5년간 총 연봉 45억 원(옵션 10억 원)이다. 나머지 3년, 최대 50억 원에 대한 계약은 5년 동안의 성적에 따라 실행 여부가 결정된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시즌 연속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했던 박민우는 올시즌 104경기 타율 0.267(390타수 104안타) 4홈런 38타점 21도루에 머물렀다. NC가 박민우를 높이 평가한 배경은 그가 NC의 창단 멤버라는 점과 20대 후반이란 어린 나이에다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제몫을 해낼 거란 기대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박민우 에이전트는 NC가 처음부터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계약 흐름을 봤을 때 마치 NC가 양의지를 놓쳐서 박민우한테 거액을 제시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NC는 비슷한 조건을 제시하며 박민우를 잡고 싶어 했다. 워낙 장기 계약이라 옵션과 세부 조항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팀의 영입 제안은 없었던 걸까. 박민우 에이전트는 “5개 팀 정도에서 관심을 나타냈지만 NC처럼 적극적이진 않았다”면서 “몸값이 높은 선수라 구단들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박민우가 NC에 남은 건 계약 규모도 규모지만 선수의 의지였다. 박민우는 처음부터 다른 팀으로 이적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NC에 남아 창단 멤버로 NC에서 은퇴하는 게 나름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박민우와 NC가 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 에이전트는 임선남 단장과 대여섯 차례 미팅을 가졌다. 계약 여부보다 5+3년이란 계약 기간에서 옵션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박민우 측은 총 계약 규모보다 보장 금액이 중요했다. 선수 입장에선 당연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우린 처음부터 보장 금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5년 이후 3년 플러스되는 계약 내용은 실행이 안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협상에 임했다. 5년 동안의 성적에서 옵션을 충족시키면 플러스 3년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옵션 내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선수가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잘 소화한다면 충족시킬 수 있는 내용이다.”
계약 기간이 길고 옵션 등의 내용이 많다 보니 계약서에 별첨 서류까지 따로 붙일 정도로 박민우 계약서와 진행 과정은 매우 꼼꼼했다. 박민우는 NC 창단 멤버로서 은퇴까지 가는 유일한 선수가 되고 싶었고, 그 부분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는 후문이다.
퓨처스 FA 최대어로 꼽힌 이형종은 키움 히어로즈와 계약 기간 4년 총액 20억 원에 계약했다. 키움은 24일 오전에 이형종과 계약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이형종은 LG에서 올시즌 1억 2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퓨처스 FA는 첫 해 전 시즌 연봉과 동일한 액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2024시즌부턴 연봉이 6억 8000만 원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2025년, 2026년은 6억 원이다. 이형종 계약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계약금 없이 연봉 20억 원을 모두 보장금액으로 받는다는 사실이다.
FA 시장이 열리면서 이형종한테 가장 관심을 나타낸 구단이 한화 이글스였다. 한화는 말로만 협상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금액도 제시했다. 이형종 에이전트 측에서 KBO에 퓨처스 FA와 관련된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퓨처스 FA도 다년 계약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이 부분은 이형종의 키움행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형종 측에선 한화에 다년 계약이 가능하냐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형종의 다년 계약은 한화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주장 하주석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것이다.
한화는 FA 시장이 열리기 전 양의지를 잡는 데 총력전을 펼칠 계획이었다. 실제로 양의지와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양의지 측에 구단이 생각한 금액을 전달하기도 했다. 140억 원대의 규모였다. 하지만 두산의 박정원 구단주가 나서면서 양의지의 두산행이 급물살을 이뤘다. 플랜 A로 세운 한화의 양의지 영입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화는 이후 플랜 B로 삼은 채은성과 이태양 영입에 집중했다. 자연스레 이형종과 계약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형종 측은 23일 오후까지 한화의 입장을 체크했다. 한화는 당시 SSG 오태곤의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이형종 측은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키움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형종 에이전트의 설명이다.
“키움이 이형종한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화와 계속 협상을 진행하기보단 키움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연락했더니 키움은 몇 시간 안에 협상안을 제시했다. 그 내용이 4년에 20억 원 보장액이었다. 23일 밤에 이형종이 한화에서 키움으로 마음을 바꿨고, 한화한테는 키움으로 결정했다고 연락드린 후 24일 아침에 키움 구단 사무실에서 고형욱 단장과 이형종이 만나 사인할 수 있었다.”
한화는 보장금액보다 옵션을 강조했다고 한다. 선수 입장에선 보장액을 내세운 키움에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선수 측에서 한화에 역제안했던 내용은 계약기간 5년 또는 3+2년이었다. 하지만 한화가 4, 5일 동안 답변을 주지 않았던 터라 이형종 측에선 다른 구단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퓨처스 FA인 선수가 20억 원을 보장금액으로 받은 건 1군 선수가 80억, 90억 원에 계약한 거나 비슷하다. 마지막 퓨처스 FA로 다년 계약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키움의 홍원기 감독이 이형종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점도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크게 작용했다. 또 이형종이 고척돔에서 성적이 좋았다. 이형종의 처갓집이 고척돔 근처라 아이 키우는 아빠 입장에선 지역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형종은 고형욱 단장 앞에서 4년 계약 기간 동안 500경기 출장을 목표로 몸을 잘 만들어서 스프링캠프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만약 에이전시 측에서 KBO에 퓨처스 FA 관련 유권해석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형종의 4년 다년계약은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KBO 규약을 꼼꼼히 살핀 후 KBO에 문의해서 유권해석을 도출해낸 에이전트의 승리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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