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거액이 언급되는 금전 갈등의 한쪽에서는 또 다른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다름 아닌 이승기가 무려 18년 동안 같은 소속사에 몸담았다는 사실이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스타들의 소속사 이적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만큼,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소속사를 옮기지 않은 이승기의 선택에도 어떤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궁금증이다.
#‘미담’이 ‘파국’으로…장기 전속계약의 ‘나쁜 예’
연예계 관계자들은 최근 이승기와 권진영 대표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배경으로 ‘전속계약 기간 18년’에 주목한다. 1987년생인 이승기는 고등학생 때인 2004년 권 대표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했다. 이승기는 10대 후반 처음 만난 소속사에서 20대를 거쳐 35세가 된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권 대표의 울타리에서 살아온 셈이다.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영입 경쟁을 벌이는 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빈번한 일이다. 스타들이 언제 전속계약이 끝나는지를 꼼꼼히 확인하는 일은 매니저의 주요 업무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승기는 업계에서 ‘드문’ 사례로 꼽혔다. 18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이는 줄곧 ‘미담’이자 ‘의리’로 포장됐지만, 최근 민낯이 속속 드러나면서 결국 ‘파국’을 맞고 있다.
이승기가 장기 전속계약의 ‘나쁜 예’가 됐지만, 연예계에는 이승기처럼 데뷔 때부터 함께 해왔던 소속사와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가는 스타들이 몇 명 더 있다. 배우 손예진이 대표적이다. 이승기와 정확히 반대되는 위치에서 전무후무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주인공이다. 무려 22년 동안 지금의 소속사와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큰 그림’ 그려주는 소속사…장기 전속계약 비결
손예진은 고등학생 때인 1999년 화장품 광고 출연을 계기로 데뷔했다. 당시 지금의 소속사인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의 대표를 만났고, 2001년 MBC ‘맛있는 청혼’의 주인공을 맡아 정식 데뷔해 20여 년 동안 톱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교생 때 자신을 발굴한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와 인연을 이어가면서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 인기 스타의 위치에 오른 것은 이승기와 같지만, 현재 처한 상황은 백팔십도 다르다.

이후로도 손예진은 재계약을 거듭했다. 스타들의 1인 기획사 설립 붐이 일었을 때도 손예진은 굳건했다. 22년째에 접어든 지금, 연예계 관계자 누구도 손예진과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의 결별을 ‘상상’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손예진은 ‘이적’보다 ‘잔류’를 선택하면서 실리를 챙겼다. 데뷔 초 소속사의 지원에 힘입어 영화 ‘클래식’,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통해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떠올랐고, 드라마 ‘연애시대’, ‘개인의 취향’, ‘상어’ 등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두 통하는 스타 배우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던 데는 작품을 고르는 소속사의 선구안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2016년 영화 ‘덕혜옹주’를 기점으로 손예진은 소속사와 손잡고 콘텐츠 투자도 시작했다. 당시 100억 원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가 후반 작업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자, 주인공이던 손예진은 소속사와 협의해 제작비 10억 원을 투자했다. 영화는 559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손예진의 영화 투자도 성공을 거뒀다. 손예진은 2019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 전 세계에서 한국 드라마 열풍을 일으켰고, 상대역인 배우 현빈과 결혼해 최근 첫째 아들을 품에 안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문근영‧신세경, 16년‧19년 동안 몸담은 소속사 독립 이유
여전히 ‘미담’으로 남은 손예진과 달리 오래 몸담은 소속사에서 겪는 일종의 한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마련하고자 독립을 선언한 배우들도 있다. 바로 배우 문근영과 신세경이다. 아역 연기자 출신인 이들은 데뷔하고 처음 만난 소속사 나무엑터스와 각각 16년, 19년간 전속 계약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젠 각자 새로운 소속사를 찾아 독립했다. 배우로의 새로운 성장과 환경의 변화를 위한 결단이었다.
이승기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민 끝에 그는 지난해 초 후크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하고 가족과 함께 휴먼메이드라는 이름의 기획사를 설립했지만 불과 열흘 만에 다시 후크의 품으로 돌아갔다. 소속사 독립을 알리자마자 연기자 이다인과의 열애설이 보도됐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후크와 다시 계약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후 문근영은 소속사 이적 대신 1년여의 휴식기를 가졌다. 평소 관심을 둔 영화 작업에 몰두해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직접 연출한 단편영화 3편을 공개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행보를 다시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다. 전 소속사 나무엑터스에서부터 호흡을 맞춘 매니저가 설립한 크리컴퍼니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자칫 나무엑터스에서 크리컴퍼니로 직행했다면 불거질 법한 잡음을 차단할 수 있었다.
나무엑터스를 대표하던 또 다른 배우 신세경은 19년 만에 독립해 가수 아이유가 몸담은 이담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사실상 아이유의 1인 회사 성격이 짙은 탓에 신세경의 선택이 의아하다는 반응이 일었지만, 아이유가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활동 영역의 확장과 모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인 지원이 매력적인 조건이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금은 각자 새로운 소속사로 이적했지만 문근영과 신세경이 16년, 19년이란 오랜 시간 한 회사에 머물렀던 이유는 손예진, 이승기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발을 디딘 입장에서 가장 먼저 자신을 이끌어준 소속사와 각별한 신뢰를 쌓을 수밖에 없던 환경이 가장 주효했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믿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이자, 자신을 스타로 발돋움하게 이끌어준 든든한 지원도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