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손문권 PD의 여동생 손 씨가 오빠의 죽음에 대해 진실 규명을 위한 경찰 재수사를 요구키로 했다. 전영기 기자 |
“변호사와 함께 오빠의 사망확인서를 떼어 보니 사인이 자살이 아닌 ‘원인불명’으로 나와 있더라. 새언니(임성한 작가)가 스스로 작성한 사망확인서에도 사인이 원인불명이다. 우리는 그 ‘불명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인의 여동생 손 아무개 씨가 밝힌 법적 대응의 이유다. 여동생 손 씨는 우선 임 작가를 상대로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예정이다. 자살을 심장마비라고 속인 점, 사망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장례식을 치러 고인의 지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한 점, 문자 등을 통해 손 씨에게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한 점 등을 이유로 한 소송이다. 고인의 부모는 유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고인의 자살 사실을 알고 있었던 터라 소송은 여동생 손 씨가 홀로 청구했다. 손 씨는 지난 2일 이재만 변호사를 만나 법적 대리인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3월 셋째 주 무렵에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돈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이는 게 우려돼 소송금액을 적게 잡았다. 대신 참조 사항으로 유서와 CCTV와 관련된 의혹을 해명하라는 부분을 소장에 함께 기재할 예정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진실이다. 따라서 경찰 재수사도 함께 요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새언니가 스스로 우리를 찾아와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하길 기다렸다.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어 이렇게 법적으로 나서게 됐다.”
이미 유가족은 유서 조작설을 매스컴에 제기한 바 있다. 유서의 필체가 고인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면 CCTV에는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혹 조작 의혹이 있다는 것일까.
여동생 손 씨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CCTV가 조작됐다는 얘긴 아니고 그 내용이 자살의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는 거다. 우선 새언니가 도착해 불을 켜기 전까진 너무 어두워 목을 맨 게 오빠인지 구분이 불명확하다. 물론 오빠가 목을 매고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발견됐다면 나도 수긍했을 거다. 그렇지만 발견 당시 오빤 계단에 편히 누워 있었다. 난간에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다시 올라와 계단 쪽으로 가서 누워 사망했다. 다시 말해 목을 맨 것이 직접적인 사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현장에 도착한 새언니가 계단에 누워 있는 오빠의 시신을 계속 아래로 끌어내리려 한 부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제3자가 그 집에 있었을 수도 있다.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자꾸 CCTV를 신경 쓰는 게 이상하다. 그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빠가 아닐 수도 있다.”
▲ 여동생 손 씨의 휴대폰에 저장된 임성한 작가와 고 손문권 PD의 생전 모습. |
“새언니가 시신 공개를 꺼려 나는 뒤늦게 볼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늦게 본 터라 시반일 수도 있지만 먼저 어머니가 오빠의 시신을 봤을 때에도 이미 얼굴색이 그랬다고 한다. 독살일 경우 얼굴이 금세 파랗게 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매장돼 있는 오빠의 시신을 다시 부검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그러나 유서와 CCTV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일산경찰서 측은 “재수사 여지는 전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선 유서 조작에 대해선 “수사과정에서 필적 감정을 한 결과 고인의 글씨가 확실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CCTV 내용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형사는 “제3자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었고 모든 CCTV를 분석한 결과 당시 집에는 고인 혼자 있었던 게 확실하다”면서 “독살이라면 얼굴 이외의 부분에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 데 전혀 없었다. 당시 시신을 확인한 결과 독살로 볼 근거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계단에 누워서 사체가 발견된 이유에 대해서도 유가족과는 전혀 다른 설명을 들려줬다.
“계단에 편히 누워서 발견된 게 아니라 계단에 목을 맨 채 발견된 것으로 계단은 평지가 아닌 45도가량의 경사가 있는 곳이다. 충분히 계단에 누워 목이 매어 사망할 수 있다. CCTV를 보면 당시 고인은 난간에 넥타이로 목을 매고 뛰어 내리려 하다가 무슨 연유인지 돌연 난간 아래가 아닌 옆에 있는 계단으로 뛰었다. 고인의 몸이 계단 위로 떨어진 뒤 계단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목이 매어 사망했다.”
경찰 설명에 따르면 자살로 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목을 매는 형태의 자살은 낮은 문고리나 샤워기에 목을 매는 경우도 잦기 때문. 따라서 경찰은 CCTV와 유서 등을 근거로 고인이 자살한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던 것이다. 재수사의 여지가 전혀 없는 종결 사건으로 보인다는 게 해당 형사의 설명이다.
CCTV 내용에 대한 경찰과 동생 손 씨의 설명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경찰은 ‘처음부터 난간 아래가 아닌 계단 쪽으로 뛰어서 목이 매 사망했다’고 설명하는 데 반해 손 씨는 ‘난간 아래로 뛰어 내려 자살을 시도했다가 계단 위로 올라온 뒤 거기에 누워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이 재수사를 요구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 역시 바로 CCTV 내용에 대한 이런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