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네버엔딩스토리>에 함께 출연한 정려원과 엄태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얼마 전 열린 영화 <건축학개론>의 제작보고회 현장. 주연 배우 엄태웅은 “다시는 결혼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유인즉 전작 <네버엔딩스토리> 제작보고회 당시 “관객수가 200만 명을 넘으면 함께 출연한 배우 정려원과 결혼하겠다”는 이색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엄태웅은 이 발언 이후로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제작보고회 콘셉트가 ‘웨딩’이었던 터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후폭풍이 대단했다.
인터뷰 당시에도 영화에 대한 얘기보다는 결혼에 관한 질문만 줄을 이었고 정려원과의 때 아닌 열애설까지 불거졌다. 게다가 인륜지대사를 감히 흥행 여부로 운운하냐는 안티성 댓글까지 폭주했다. 가족들의 꾸지람도 있었다고 한다. 누나 엄정화 또한 방송을 통해 정려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을 정도. 그의 어머님 역시 함부로 결혼 얘기 꺼내서 식구들 힘들게 하지 말고 진지하게 살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때문에 엄태웅은 <건축학개론> 제작보고회장에서 “연애와 결혼 등을 걸고(?) 홍보해봤지만 별 소용없었다”며 “이제는 진지하게 작품으로만 얘기하고 싶다”는 자신의 다짐을 전했다. 본의 아니게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고만 엄태웅의 결혼 약속. 자나 깨나 입조심 해야 함을 느끼게 해준 해프닝이었다.
자나 깨나 입조심을 하자는 말을 온몸으로 느낀 스타도 있다. 다름 아닌 배우 하정우. 그는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영화부문 최우수연기상 시상자로 나서 “내가 만일 또 한 번 상을 탄다면 트로피를 들고 국토 종단을 하겠다”는 깜짝 발언을 했다. 함께 시상자로 나선 하지원이 “(지난해에도 <국가대표>로 상을 탔는데) 또 탈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애드리브 질문을 던지자 ‘설마 그럴 리 있겠느냐’는 투로 별 뜻 없이 내뱉은 말이었던 것. 그러나 그 순간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자신이 펼쳐든 수상자 봉투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 수상의 영광과 함께 국토 종단에 대한 부담이 동시에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국토 종단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고 있느냐는 주위의 질문이 연일 쏟아지자 그는 정확히 수상한 지 6개월 뒤 기어이 국토 종단을 떠났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출발해 해남 땅끝마을까지 600㎞가량의 거리를 20일 동안 이동수단의 도움 없이 걸어서 완주한 것. 교회와 학교 등의 도움을 얻어 숙소를 정했고 진통제 등을 먹어가며 발의 물집과 싸워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국토 종단으로 얻은 것이 더 많다. 바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친동생 차현우(본명 김영훈)와의 우정이다. 30년이 넘게 별 대화 없이 지내던 동생과 허물없이 가까워져 행복하다는 게 그의 설명.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국토대장정 길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개봉할 계획도 갖고 있다. 다만 그는 예상 관객 수를 묻는 질문은 절대 사절이라고 한다. 자신의 인터뷰 철칙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관객 수를 걸고 또 무모한 약속을 할까봐서라고.
▲ 티아라 |
그러나 문제는 3주 연속 1위 달성 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공약이 이어지고 나서였다. 스타의 봉사 활동이 1위를 걸고 해야 하는 공약쯤으로 이용돼야 하느냐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폭주한 것. 실제로 티아라는 3주 연속 1위를 차지해 봉사활동을 떠났고 이 장면은 언론에 공개됐지만 홍보용 언론플레이라며 비난의 강도는 한층 거세졌다. 이에 소속사는 “원래 티아라는 봉사활동을 자주 다니지만 1위를 차지하고 가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공약을 내세웠을 뿐”이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티아라 멤버들의 생각은 어떨까? 멤버 효민은 한 인터뷰를 통해 “공약을 지켜 뿌듯했지만, 봉사활동 현장의 노인 분들이 불편해하셔서 앞으로는 비공개로 봉사활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좋은 뜻으로 공약 릴레이에 동참했지만 아쉽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스타들도 있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가문의 영광4>의 주인공들이 대표적이다. 주연배우 김수미 신현준 탁재훈 등은 개봉에 앞서 인터뷰 등을 통해 관객수 700만 명이 넘으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고액의 대학 등록금으로 학교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뉴스를 본 김수미가 후배들에게 뜻을 설명하고 주연배우들이 힘을 합치기로 했던 것. 하지만 아쉽게도 이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다.
배우들은 전작 1, 2, 3편이 누적 관객수 1500만 명을 기록했기 때문에 평균 관객수 500만에 200만을 더해 700만이라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안타깝게도 <가문의 영광4>의 관객 수는 300만 명가량에 그치고 말았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배우들의 예상 관객수에는 못 미쳤던 셈. 결국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고 배우들은 다음 작품을 벼르고 있다. 김수미는 “정치인들의 허울뿐인 껍데기 약속처럼 보일까봐서라도, 반드시 다음 시리즈를 통해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