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 이전·영국 여왕 조문 취소·이태원 참사 조문 등 의심 끊이지 않지만 대통령실 별다른 언급 안해
문제는 용산 대통령실 이전, 영국 여왕 조문 취소,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 중단 등 윤 대통령 결정이 천공 발언에 영향 받은 것 아니냐는 세인들의 의심어린 눈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윤 대통령 정치 행보와 천공 발언은 여러 번 겹쳤다. “국정에 무속이 개입하면 온당치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는 배경이다.
‘천공’이라는 이름이 대중에 처음 알려진 것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TV토론회에서다. 지난해 10월 5일 열린 토론회에서 유승민 당시 경선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혹시 천공스승님 아시냐”고 물었다. 이에 윤 후보는 “천공이란 말은 못 들었다”고 부인했다. 유 후보가 “본인 스스로 ‘윤석열 후보의 멘토’ ‘지도자 수업을 시키고 있다’고 자칭하는 분인데 모르냐”고 재차 묻자, 윤 후보는 “내가 알기는 하는데, 멘토니 하는 얘기는 좀 과장됐다”고 입장을 바꿨다.
더 나아가 이날 토론회가 끝나고는 ‘천공’을 두고 윤 후보와 유 후보 사이에 마찰이 발생해 ‘진실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 후보 측은 “유승민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 악수하고 지나가려 했는데, 윤 후보가 대뜸 ‘정법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법 유튜브를 보라. 정법은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정법에게 미신이라고 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며 유 후보 면전에 손가락을 흔들며 항의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11일에 벌어진 토론회에서도 ‘천공’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유 후보가 “정법을 만났느냐”고 다시 화두를 꺼냈고, 윤 후보는 “만난 적 있다. 좀 오래 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부인과 같이 만났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그 말(윤 후보의 멘토, 지도자 수업 등 발언)이 인터뷰 기사를 통해 나오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 이후론 서로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며 “아예 딱 끊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도 윤 후보는 무속 개입 논란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검사로서 해온 일이 법정에서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라며 “무속으로 판단하는 그런 것은 내가 살아온 공직 경로에 비춰봤을 때 합당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에도, 천공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주요 고비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천공은 주로 ‘정법시대’ 유튜브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발언이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의 결정에 영향을 준 것 아닌가 하는 정황들이 나오고 있는 것.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당선 직후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을 추진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천문학적인 예산과 안보 공백 등을 우려해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당시 당선인 신분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직접 앞에 나서 조감도를 펼쳐놓고 지시봉으로 가리키며 브리핑을 하는 등 강행 의지를 보였다.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던 중 천공의 유튜브 강연 하나가 이목을 끌었다. 지난 4월 3일 올라온 영상에서 천공은 “예산을 지금 못 준다 한다. 국방부 앞에 마당은 있으니까 ‘거기다 천막을 치겠다. 천막을 쳐서 거기에서 직무를 보면서 준비하겠다’ 이러고 그 앞에 천막을 치는 거”라고 조언한다. 천막을 쳐서라도 대통령실 이전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공교롭게 바로 다음날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들을 만나 “취임 전까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마치지 못하면 ‘야전 천막’을 치더라도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 전해졌다. ‘천막’ 등 천공과 거의 비슷한 발언을 윤 대통령이 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도 천공은 여러 말을 내놓았다. 참사 나흘 후인 11월 2일 공개된 ‘정법강의’ 유튜브 영상에서 천공은 “나라님인 대통령이 애도기간을 선포해놨으면, 온 국민은 애도기간을 가져야 한다”며 “토요일까지인데,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애도부터 하는 것 말고 할 게 없다”며 ‘매일 조문’을 강조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이후 매일 추모에 나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천공은 “우리 아이들을 먼저 상기하고 ‘미안하다, 우리가 노력하마’ 이 말을 입으로 뱉어야 한다. 속으로만 하면 안 된다”며 “지금은 입으로 뱉었다고 해서 흉볼 사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당시는 윤 대통령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총책임지는 통수권자로서 참사 발생에 대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아 논란이 불거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영상이 공개된 지 이틀 뒤인 11월 4일, 윤 대통령은 조계사에서 진행된 추모 법회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실상 사과의 뜻을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전격 중단을 두고도 천공의 영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11월 18일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배제’에 대해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질타한 데 대해 MBC 출입기자가 윤 대통령에게 항의성 질문을 하고, 대통령 비서관과 공개 설전을 벌였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은 “불미스러운 사태”라고 정의하며 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
대통령실이 윤석열 정부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어스테핑을 전격 중단하자, 일각에선 천공의 과거 발언을 소환했다. 지난 6월 23일 공개된 영상에서 천공은 ‘윤 대통령이 출퇴근 시간에 질의응답 시간을 계속 가져야 하나’라는 질문에 “기자들 수준이 너무 낮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제일 좋은 방법이냐 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자회견을 하면 된다. 기자들과 노상 말한다고 국민 소통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던 것이다. 이에 윤 대통령이 MBC 기자와의 충돌을 빌미삼아 천공이 부정적 입장을 밝혀온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명백한 거짓”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윤 대통령이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을 두고도 천공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천공이 지난 10월 31일 ‘정법시대’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노동자 퇴치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천공은 “대한민국은 노동자가 있으면 안 된다”며 “노동자라는 이름은 과거에 노예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현대판 노예가 노동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동자한테 돈을 더 주면 또 탐을 낸다. 3일 쉬게 하면 4일을 쉬자고 한다. 일은 하기 싫고 돈은 더 내놓으라는 게 노동자의 근성”이라고 폄훼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노동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노동자’라는 명칭을 ‘연구원’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공은 “노동자가 단합해서 데모하는데, 누가 뭐라 하면 싸운다. 노동자이기 때문”이라며 “연구원은 싸움 안 한다. 우리가 연구원으로서 일을 하면 이 나라 데모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국제적으로 여행을 가는데, 노동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국제적으로 다니면서 무엇을 해야 하나 살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일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대가를 받기 위해 일하면 노동자가 되는 것이고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다. 이러면 발전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도 천공이 영향을 주는 듯한 발언이 나왔다. 앞서 김 여사는 대선 과정에서 허위경력·논문표절·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본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쏟아지자,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남은 선거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 달 후 천공의 최측근이자 수제자로 알려진 신 아무개 씨가 유튜브에서 김 여사와 관련된 발언을 했다. 신 씨는 6월 13일 공개된 영상에서 “영부인은 굉장히 젊다. 특히 영부인은 국제적인 행사도 많이 주관하신 분이다. 국제적인 감각과 센스가 있다”며 “여사가 지금은 당분간 남편의 그림자 내조를 하겠지만, 어느 정도 하고 나면 바깥에 나와 여성들과 정말 멋진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공도 힘을 보탰다. 6월 19일 공개된 유튜브에서 천공은 “대통령 부인이 할 일은 뭐냐 하면, 이 세계의 대통령 부인들과 사귀어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은 세계 대통령 부인들하고 상대를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윤 대통령이 첫 외교 무대로 스페인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발표되면서, 김건희 여사의 동행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던 시점이다. 실제 천공 강연이 나온 뒤, 대통령실에서 “김 여사도 가급적 참여하는 쪽으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 나왔다. 결국 김 여사도 윤 대통령과 함께 순방길에 올랐다. 이 순방 과정에서 ‘김 여사 지인’ 민간인의 전용기 탑승과 값비싼 장신구 논란 등이 불거졌다.
지난 9월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 조문을 위한 해외순방 과정에서도 뒷말이 나왔다.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부부가 조문을 위해 영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 부부는 영국 현지에 도착해 다른 나라 정상들과는 달리 시신에 직접 참배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대통령실은 “현지 교통 통제로 이동이 어려워 계획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권에선 “전용기 출발 시간을 2시간 늦추는 등 조문을 안 가려 일부러 지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천공의 발언을 그 내막으로 들었다.
9월 15일 유튜브로 공개된 영상에서 천공은 “조문 같은 것은 4차원하고 연결돼있기 때문에 필요 없이 그런데 돌아다니면 거기서 4차원 기운을 나한테 묻어서 나올 수도 있다. 탁한 기운이 하나 붙어올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이 강연은 엘리자베스2세 여왕 서거 한 달 전에 찍은 건데, 영상이 올라온 것은 서거 뒤였다.
앞서 언급했듯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천공과의 관련성을 부정한 바 있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천공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천공은 점점 정치적 발언 강도를 높이고 있는 모양새다. 이태원 참사 관련 발언을 한 11월 2일 영상에서 천공은 “이대로 놔두지 않겠다. 이제부터 내가 움직이겠다”며 “내가 창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혼신을 쏟아 이 나라를 빛나게 하겠다. 이제 그 일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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