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일요신문 DB |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3월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금융인으로서 이렇게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사실상 ‘47년 금융인생’을 마감하는 자리였다. 김 회장의 퇴임을 두고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숙원이던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고 유력하던 연임을 스스로 포기했으며 김정태 회장이라는 후임까지 결정하고 난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은행 직원들에게 성과급과 인수·합병(M&A) 위로금을 합쳐 기본급의 500%를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승유 회장의 ‘아름다운 퇴장’이 퇴색되는 듯해 보인다.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성과급은 200%를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말해 성과급 500% 사태는 일단 봉합된 듯하다. ‘이면합의’ 의혹을 제기하며 역차별이라고 반발했던 하나은행 노조 측은 “추후 다시 논의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윤 행장의 말을 믿기로 했다”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다.
하나은행과 같은 산별노조인 한국외환은행지부(외환은행 노조·위원장 김기철) 관계자는 “원래 200%만 팩트(사실)고 나머지는 성과제도 개선 등을 통해 논의하자는 것이었다”며 “성과제도를 논의하면서 돈에 국한시킨 것도 아니며 300%라는 추가 숫자가 어디서 어떻게 나온 얘기인지도 모르겠다”며 억울해했다. 그러나 200% 외에 추가 성과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될 수 있다”는 말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다시 말해 ‘200%만 지급한다’는 것으로 모든 게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외환은행 노조 측은 “우리가 대응하지 않는데 무슨 노-노갈등이냐”고 반문했지만 외환은행과 하나은행 노조 간 갈등의 조짐은 충분해 보인다. 외환은행 노조 관계자는 “하나은행 노조가 오버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금융노조라는 틀에 함께 있을 뿐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의 성과제도가 불만이라면 하나은행 노조도 그쪽 대표와 성과제도를 다시 논의해 개선하면 될 것”이라며 “하나은행 노조가 외환은행의 시스템을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승유 회장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 회장은 지난 2월 17일 외환은행 노조와 독립경영, 고용안정 보장 등을 합의한 당사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과 외환은행 노조 간 ‘이면합의’ 의혹이 불거졌다. 게다가 하나은행 노조 측은 “지주사 회장이 자회사 노조 대표와 합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하나은행 노조 관계자는 “통상 노사 협상이라면 개별법인 내의 문제지 지주사 회장이 자회사 노조와 합의하는 전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노조 측은 “인수 주체와 협상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당시 외환은행 대표도 공석이었다”고 말했다.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정식으로 취임한 것은 지난 3월 13일 외환은행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서였다.
어쨌든 외환은행 노조와 최종합의문에 동의한 사람은 김승유 회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그것을 승인받기까지 김 회장은 이따금 조급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외환은행 인수 문제에서 김승유 회장의 조급증이 결국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퇴임을 앞두고 최대 숙원인 외환은행 인수·승인을 매듭짓기 위해 합병에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조를 애써 달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김 회장과 외환은행 노조가 합의한 최종합의문에는 ‘IT, 신용카드의 경우에는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여 실행할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김 회장은 3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5년간 외환은행 독립경영을 보장하기로 했지만 IT와 카드부문은 통합을 서둘러야 한다”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이를 우려하고 있다. IT와 카드부문 경쟁력 강화라는 이유로 하나은행 경영진의 간섭이 심해질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외환은행 노조 관계자는 “하나은행 시스템을 외환은행에 적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하나은행 경영진이 합의사항을 준수하는지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