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된 대기업을 나와 유공압 회사를 차린 조홍래 한국도키멕유공압 대표. 32년간 한 우물만 판 결과로 지난해 매출 520억 원을 달성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 한화그룹 계열 한화기계 정밀시스템사업부장 조홍래 이사(당시 43세)는 총괄본부장을 마다하고 명예퇴직을 신청한다. 자동화기기 핵심인 유공압 외길 18년 만이었다. 함께 ‘업’을 택한 40여 동료들과 이듬해 설립한 한국도키멕유공압(주)은 꾸준히 성장, 지난해 매출 520억 원(잠정, 중국법인 60억 원 포함)을 올렸다. 한화그룹 시절을 합쳐 업력 32년, 조홍래 대표의 ‘정밀경영’ 속으로 들어가 봤다.
“자동화기기는 왕복운동 회전운동 등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걸 말하죠. 그 운동 매체가 기름이면 유압, 공기면 공압입니다. 유압은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내고, 공압은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유압은 파워, 공압은 스피드입니다.”
한국도키멕유공압(한국도키멕)의 ‘업’, 유공압에 대한 조홍래 대표의 설명이다. 제철 설비부터 항공 중장비용까지. 액추에이터(구동장치), 펌프, 밸브 시스템을 생산·수입하는 한국도키멕은 포스코 대우조선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중공업 등을 주요 거래처로 확보하고 있다. 조홍래 대표가 유공압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영남대 기계공학과 졸업과 함께 한화그룹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종합기획실, 당시 기획조정실 신규사업부로 발령이 났어요. 엘리트들이 즐비한 곳에서 같은 출발선에 선 거죠. 그 때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느끼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선배가 검토하던 유공압을 물려받았어요. 미국 파트너 잡아서 기술제휴 하다가 잘 안 된 거였는데요, 일본하고 연결해서 사업이 진행돼 1년 만에 계열사 한화기계로 내려갔습니다.”
1980년 한화기계는 도쿄게이키와 손잡고 유압기기 사업을 시작한다. 그가 기획했다지만 그래봤자 2년차 신입사원. 시장 밑바닥부터 훑어야 했다.
“펌프 둘러매고 영등포시장부터 납품 다니고…. 하루는 집에 갔더니 집사람이 구두 밑창이 어디 갔느냐고 물어요. 구두 밑창 빠지는지도 모르고 돌아다닌 거죠. 제가 원래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인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몰라요.”
담당 5명으로 시작한 유공압사업부는 점차 성장해 직원 100명까지 늘어나며 회사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도 입사 18년 만인 1997년 유압·시스템사업부가 통합된 정밀시스템사업부장(이사)에 올랐다. 뒤이어 터진 IMF 외환위기, 회사는 주력이던 베어링사업부를 독일에 매각하고 새로 부임한 사장은 그에게 총괄영업본부장을 제안했다. 대신 30%를 구조조정해야 했다.
“회사보다는 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 저는 명퇴를 하고 나와 1년간 회사를 설득, 정밀시스템사업부의 인원 설비 재고 모두를 인수했습니다. 창업자금이 없으니 일본 도키멕사의 투자를 받았는데요, 사업부 인력이 저와 함께하겠다는 연판장을 제출하라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었습니다. 당시 40여 명이 안정된 대기업을 버리고 저를 따라 업을 택했습니다.”
1999년 출범한 한국도키멕은 김해공장을 준공하고 첫해 매출 140억 원을 기록했다. 3년 뒤인 2001년에는 평택공장에서 첫 국산화 제품을, 이듬해 2차 국산화 제품을 출시했다. 어렵게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힘 빠지게 하는 일이 많았다.
“100원에 수입해 120원에 팔던 걸 국산화해 원가 60원에 만들어 120원 가깝게 팔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가격이 80원으로 떨어집니다. 결국 마진은 20원으로 똑같은 셈이죠. 지금도 제조가 수입보다 이익이 적어요. 그래서 제조업, 특히 자본재기업의 성장이 더딘 겁니다. 그래도 우린 기업의 정체성이 있기에 국산화를 계속했고 처음 5%도 안 되던 국산화 비율을 80% 이상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이후 2003년 공압기기 사업 시작, 2006년 중국공장 준공과 이노비즈(Inno-Biz, 기술혁신형중소기업) 인증 등 회사는 순항한다. 그런 한국도키멕도 2008년 금융위기는 비켜가지 못했다.
“그간 물건을 받고 6개월 뒤 대금지급을 해왔는데요, 환율이 급등하는 바람에 환차손이 동시에 60억 원이나 났어요. 일본과 30년간 거래해온 신뢰로 담판을 했습니다. 수입할 때 환율금액을 먼저 주고 차액은 일본 측과 우리가 반씩 나누는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상당히 어려웠지만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면서 자기도 모르게 방만해진 관리를 다잡을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이 같은 위기의 극복과 지속 성장의 배경에는 조 대표의 ‘투명·정밀 경영’이 자리 잡고 있다. 본인부터 매일 전 임직원의 업무 스케줄을 그룹웨어를 통해 공유할 정도로 철저한 기획주의자를 자처하는 그가 중소기업 경영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현금유동성이다.
“기업의 자산은 사람으로 치면 체격이고 이익은 체력입니다. 체격이 커도 죽을 수 있고 체력이 작다고 바로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피의 흐름, 현금유동성이 끊기면 바로 죽습니다. 6개월 앞의 자금흐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매년 사업계획을 책으로 만들어 임직원과 공유합니다. 또한 현금유동성과 재고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화 해 매 시기 업데이트하며 점검해요.”
조 대표 정밀경영의 목표는 더불어 성장하는 것. 그래야 멀리 갈 수 있단다.
“현재 조선 국책과제를 수행하는 등 유공압 연관 분야에서 다양한 신사업을 인큐베이팅(육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기업수가 절대부족합니다. 기업수를 늘려야 해요. 각 사업부문을 키워 10개 회사로 계열화할 계획입니다. 이게 바로 장사꾼이나 사업가가 아닌 기업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배움에 끊임없이 펌프질을
① 어빌러티(Ability) : 능력, 외국어 컴퓨터 등 스킬의 개념이다. 갈고 닦아야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이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은 문제다.
② 캐퍼빌리티(Capability) : 어빌러티와 같이 능력으로 해석되지만 스케일을 말한다. 호연지기를 키워라.
③ 릴라이어빌리티(Reliability) : 신뢰, 가치를 만들어라.
④ 지속성장 : 끊임없이 학습하라. 베스트 드라이버도 사고 나는 건 한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