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모주 투자 열풍이 불고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재미를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증권사 객장. 일요신문 DB |
공모주와 관련한 이해 당사자는 크게 넷이다. 상장하는 회사, 주간사, 기관투자자 그리고 개인투자자다. 여기서 개인투자자만 빼고는 모두 공모가 결정에 영향력을 갖는다. 상장회사는 자금조달액을 늘리기 위해 공모가를 높이 받길 원한다. 그래서 유리한 자료 중심으로 공개를 한다. 주간사인 증권사는 고객인 상장회사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공모가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주간수수료도 ‘공모금액의 몇 퍼센트’로 정해지기 때문에 증권사로서도 공모가를 높이는 게 유리하다. 심지어 신텍의 경우처럼 상장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하는 경우까지 있는데, 주간 증권사들이 이를 상장 전에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 담당 관계자는 “서류상으로 문제없으면 그냥 그런 것인 줄 안다. 회사 측이 작정하고 하는데 그걸 증권사가 무슨 수로 다 알겠느냐”며 “수수료를 받는 입장에서 일일이 다 확인한다면 어떤 고객이 좋아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결국 주간 증권사도 회사 측의 의도와 입맛대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기관투자자들도 공모가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 초기 공모물량의 일정 비율은 상장회사의 우리사주조합이나 기관투자자에게 먼저 배분된다. 특히 기관투자자는 공모가 확정 전 이뤄지는 수요예측에 참가하는데, 수요예측도 공모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결국 개인만 가격결정 과정에서 빠지는 셈이다.
익명의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가는 보통 비슷한 종목이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적용 받는지를 기준으로 하는데 정확한 잣대가 될 수 없다. 또 최근에는 비교대상 종목이 국내에 없어 해외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시장 환경이 다른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 정확한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며 “결국 공모주 시장은 회사 증권사 기관 마음대로인 셈”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공모주가 상장된 후 시간이 갈수록 기관들의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는 약세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금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기업공개 공모주의 평균 수익률은 상장일 29.9%, 1개월 후 19.9%, 3개월 후에는 16.6%로 낮아졌다. 상장 초기, 공모 청약을 받지 못한 투자자들의 매수세로 주가가 크게 오르면 기관들은 물량을 처분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통정매매가 이뤄질 여지도 있다. 기관 보유 물량이 시장가에 쏟아지면 주가가 크게 하락하므로, 기관들은 지분을 덩어리로 넘기고 싶어 한다. 만약 작전세력이 있어 이 물량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받아온다면 일종의 통정매매가 된다. 물량을 확보한 작전 세력은 허수 주문 등으로 물량을 끌어올린 후 보유 지분을 높은 가격에 털어버리는 매커니즘이다.
또 다른 유형의 ‘공모’(共謀)도 있다. 개인이 청약을 통해 받을 수 있는 물량이 한정되다 보니, 개인이 기관의 명의를 빌려서 공모주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보통 자산운용사 고유계정이 활용되는데, 기관은 주가 등락에 관계없이 일정의 명의대여 수수료를 받고 개인은 투자기회를 챙기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는 경우가 늘면서 최근에는 기관들 가운데도 다른 기관의 고유계정을 빌려서 공모주에 투자하는 경우도 적잖이 존재한다.
한 증권가 인사는 “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 가운데 투자자로부터 받은 돈이 없어 수수료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들은 자기자본을 굴려서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그냥 주식에 투자했다가는 손실 볼 확률이 높다 보니 안정적으로 은행예금이나 채권보다 나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공모주 투자가 이들에게는 인기 아이템”이라고 귀띔했다.
기업인수특수목적회사(SPAC·스팩)를 통한 상장도 투자자를 울리기는 마찬가지다. 비상장사와의 합병을 통해 상장 및 자본조달 기회를 제공하고 투자자에게는 유망 기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됐지만, 투자자의 곡소리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들이 처음 스팩을 설립할 때는 액면가로 주식을 취득하지만 유상증자를 통해 일반 투자자를 모집할 때는 액면가의 두 배가 넘는 값으로 주식을 발행한다. 따라서 정말 유망한 기업과 합병해 주가가 액면가의 두 배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 한 투자자들은 이익을 얻기 어렵다. 물론 증권사 입장에서는 스팩 유지 관련 비용 등이 있지만, 합병 후 주가가 액면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한 큰 손해는 아니다. 그나마 합병에 성공한 경우도 거의 없다. 국내 스팩 합병성공률은 10% 미만이다.
상장 전부터 이뤄지는 ‘공모’도 있다. 상장 예정사가 상장 전 기관들에게 싼 값에 지분을 팔고, 기관들은 상장 청약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공모 전 주당 1만 원에 주식을 샀는데, 공모가가 2만 원이라면, 이 기관의 지분취득원가는 1만 5000원이 된다. 개인들은 주당 2만 원이 손익분기점이지만 이 기관의 손익분기점은 주당 5000원이 낮은 셈이다. 기관에게 일부 물량을 싸게 팔았지만 대주주로서는 공모가가 높이 결정된 데 따라 더 유입될 자본을 생각하면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기관 역시 평균 매수단가를 낮출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