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설탕 가격을 잡기 위해 갖은 수단을 써왔다. 35%인 관세율을 30%로 낮췄고(당초 기획재정부는 5%로 낮추는 안을 내놓았으나 제당업계의 반발로 국회에서 30%로 결정), 국내 제당업계가 설탕가격을 적정수준으로 인하할 때까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설탕을 계속해서 수입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말까지 수입되는 10만 톤의 설탕은 할당관세가 적용돼 관세율이 0%가 됐다. 할당 관세란 물가안정이나 수급 조절을 위해 수입 관세율을 40% 범위 내에서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획재정부가 설탕 가격 인하를 위해 애쓰는 것은 국제 설탕가격 추이와 다르게 국내 제당업계가 설탕 가격을 고가로 유지하면서 제과, 제빵, 음료수 등 각종 식료품의 가격이 올라 물가불안이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국제 설탕가격은 2011년 1월 ㎏당 1170원에서 올해 1월 950원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국내 설탕가격은 같은 기간 1024원에서 1127원으로 되레 상승했다. 기획재정부 등은 이러한 가격 비탄력성이 국내 제당 3사가 국내 설탕 시장을 거의 100%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독과점 구조를 깨기 위해 설탕 실수요업체 등에 대한 면담을 실시하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3월에 1차 직수입분 2000톤을 도입한데 이어 4월에는 2차 직수입분 3000톤을 도입키로 한 상태다. 기획재정부의 진짜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할당관세로 10만 톤을 들여오기로 했지만 찾는 업체가 없어 실제 수입량이 1만 톤도 안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떡류식품가공협회 등 12개 업체 2007톤, 10개 업체 1425톤에 불과하다. 제과나 제빵, 빙과, 음료 업체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할당관세 물량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기획재정부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할당관세로 들여온 설탕을 팔기로 한 것도 저렴한 가격의 설탕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는 이유보다는 이처럼 할당관세 물량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설탕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로 한 것은 설탕 할당관세 물량을 찾는 업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설탕소비 업체들의 경우 할당관세 물량을 썼다가 향후 할당관세가 끝났을 때 제당업체들에게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설탕 소비업체들로써는 또한 자칫 현재와 쓰는 것과 다른 설탕을 썼다가 소비자들에게 제품 자체가 외면당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는 할당관세보다는 관세 자체를 낮춰서 설탕 공급선을 다양화하는 데 무게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설탕의 안정적 수급 체계에 대한 우려가 있어 할당관세분 설탕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서 “안정적 수급을 위해 비축사업을 검토 중이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내에 수급안정대책단을 설치해 원당과 설탕가격, 수급 동향을 지속 관측해 사전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해 관련 업계가 불안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서찬 언론인
큰형님 넘어 시어머니 노릇?
하지만 최근 기획재정부의 행보에 대해 단순한 큰형님 노릇에서 벗어나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서 재정정책국을 폐지하는 대신 장기전략국과 국제금융협력국을 신설했다. 또 정책조정국을 거시경제를 관할하는 1차관 산하에서 예산을 관할하는 2차관 산하로 옮겼다.
장기전략국 신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경제기획원(EPB)의 일부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장 위기 국면을 수습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과거 EPB가 했던 5개년 경제개발계획과 같은 큰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2차관 산하로 정책조정국을 옮긴 것은 예산권을 무기로 타 부처들의 정책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금융소득 세제팀 신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합병될 당시 핵심 부서였던 금융정책국의 역할을 금융위원회에게 내줬다. 기획재정부 내에서는 금융업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금융정책국을 빼앗긴 것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다.
금융소득 세제팀을 만든 것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거래세 중심의 금융세제를 보유세 위주로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업계에서는 기획재정부가 금융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가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당장 반발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금융조세팀을 만들어 발 빠르게 맞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종교인 과세 발언으로 국세청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고 있다. 국세청이 2006년에 기획재정부에 종교인 과세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는데 그동안 뭉개고 있다가 갑자기 기획재정부가 선수를 치고 나간 탓이다. 종교인 과세 발언의 배경에 세금 탈루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우려가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두 기관 사이가 불편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마당발 행보는 부처 내에서만 끝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20일 복지태스크포스 1차 회의를 통해 정치권 복지 공약이 시행될 경우 향후 5년간 최대 340조 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고 공세를 가했던 기획재정부가 이번에는 정치권의 세제 공약에 대해 칼을 갈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4월 열리는 복지태스크포스 3차 회의에서 정치권이 발표한 각종 세제 관련 공약의 세수 확충 효과에 대한 추산액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이 주장하는 세수증대 효과가 정말 얼마나 되는지 실체를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