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심이 라면 담합 주도 기업으로 지목되는 등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농심 본사. 일요신문DB |
농심의 절대강자 라면만 해도 ‘3단 공격’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지난해부터 쏟아지는 ‘하얀 국물’의 등장으로 점유율 간격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이 턱 밑까지 쫓아온 것. 여전히 왕좌는 지키고 있지만 농심은 “과거보다 제품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신춘호 회장. |
농심은 “원가상황을 고려하여 독자적으로 가격정책을 펼쳤을 뿐 사전에 가격인상에 관하여 타사들과 어떠한 논의도 없었으며 가격인상을 유도하거나 견제한 사실이 없었다”면서 “이러한 사실을 공정위에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종의결서를 받으면 법리적인 검토를 할 계획”이라며 반발했다.
게다가 과장광고·고가논란으로 출시 4개월 만에 생산 중단된 ‘신라면 블랙’도 뒤늦게 소송에 휘말렸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장도리곰탕’을 운영하던 전 대표 이장우 씨(56)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자신의) 곰탕 제조비법을 도용해 ‘신라면 블랙’을 출시했다”며 10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이 씨는 “2008년 농심이 먼저 ‘곰탕국물 조리기법을 활용한 제품을 생산하고 싶다’며 연락해 곰탕국물 샘플을 보내고 조리방법을 자세히 전수했다. 합작을 염두에 두고 막대한 설비투자도 진행했으나 농심이 특별한 이유 없이 계약을 연기했고 결국 도산에 이르렀다. 이후 농심이 출시한 ‘뚝배기 설렁탕’ ‘신라면 블랙’과 컵라면 ‘곰탕’은 (나의) 곰탕 제조기술을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상대방이 주장하는 바는 명백히 거짓으로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2008년 6월 이 씨로부터 먼저 사업협력 제안을 받고 한 차례 충북 진천 공장에 내려가 현장을 둘러보고 품질 검사를 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노하우를 들은 적은 없다. 당시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협력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통보했다”고 항변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업협력이 무산되자 이 씨는 8월에 아예 공장을 인수해달라고 요청했다. 알고 보니 그 당시에도 부채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협력과 공장인수요청도 이러한 부채 사실을 숨기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고 밝혔다.
업계 1위를 달리던 생수사업도 신통치 않다. 농심은 1998년부터 ‘삼다수’ 유통·판매를 담당해왔으나 지난해 12월 제주개발공사는 ‘삼다수에 대한 영구적 독점권은 부당하므로 2012년 3월 15일자로 협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해 법정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제주개발공사는 광동제약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며 농심은 ‘제주도개발공사 설치조례 효력정지 가처분과 본안 소송’ ‘먹는샘물 공급중단금지 가처분’ 등 4건을 잇따라 제기하며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대리점·소매상들의 반기도 농심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경기도 지역 농심 대리점주 50여 명이 모인 농심특약점전국협의회준비위원회는 “농심이 라면 값을 부풀려 매기고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만 싸게 공급해 특약점이 말라 죽고 있다”며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매상들도 “농심의 횡포에 더 이상 물건을 팔 수 없는 지경”이라며 매달 보름씩 농심 판매거부 운동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한다.
엄대현 좋은슈퍼만들기운동본부 대표는 “농심은 본인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난 1월 농심 임원과 만나 불공정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자리에서 잘못을 시인했다. 3월부터는 소상공인을 위한 특별 혜택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소매상들을 대상으로 한 경품행사를 진행했을 뿐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농심은 “라면 가격은 대형마트와 대리점·소매상 모두 같은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 프로모션의 경우는 물량의 차이로 어쩔 수 없이 차이가 있을 뿐 원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대리점과 소매점의 불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 농심의 수난은 계속 될 전망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과징금 면했지만 ‘왕따’ 위기 직면
이를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삼양의 선택은 양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업계에서는 ‘농심의 과징금 폭탄과 이미지 추락을 노린 행동’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현재 업계 1위는 농심이지만 원래 그 자리를 지켰던 곳은 삼양이다. 1989년 터진 ‘공업용 우지파동’으로 퇴출 위기까지 몰린 후 절치부심 끝에 ‘나가사끼 짬뽕’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심이 흔들리면 삼양의 왕좌 탈환이 앞당겨지는 것은 당연지사.
농심에게는 1000억 원이 넘는 과징금도 타격이 되겠지만 담합을 주도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삼양의 농심 견제는 이전에도 몇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삼양은 지난해 11월 “나가사끼 짬뽕이 신라면을 눌렀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알고 보니 전체 판매량이 아닌 일부 대형마트의 판촉행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자료로 판명돼 업계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최근에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돼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또한 삼양으로서는 라면 담합 사태로 또다시 ‘편법승계’가 구설수에 오르게 돼 난감하게 됐다.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의 손자 병우 군은 18세의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비글스’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삼양식품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기도 한 비글스는 지난해 6월 평창 개발 이슈가 부각됐을 때와 ‘나가사끼 짬뽕’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삼양식품 주가가 크게 오르자 보유한 주식을 차례로 팔아 치워 70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이를 두고 내부자 거래 의혹이 제기됐고 시민단체에서도 “전형적인 재벌오너일가 배불리기에 의한 편법 경영승계”라며 비난했다.
삼양 측은 “정상적인 대주주의 투자활동”이라고 못 박으며 애써 논란을 잠재웠으나 ‘라면 담합’으로 다시금 재조명 받게 돼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