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상장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단순한 자본금 조달 이상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 ||
최근 생보사 상장 논의과정에서 최대 관심사는 단연 삼성생명의 상장 여부다. 지난 90년대부터 상장설이 흘러나왔지만 이익 배분과정에서 고객들에게 일부를 지급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등의 주장과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삼성의 입장이 부딪쳐 상장이 미뤄졌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가 지난 1월26일 생보사 상장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전문가 집단으로만 구성하고 금융당국과 시민단체 등은 제외시킬 것으로 밝혀 상장안 도출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그러나 교보생명 등이 상장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면서 삼성생명이 최초의 상장 생보사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삼성생명의 상장 여부가 관심을 끄는 것은 다른 생보사와는 다른 삼성생명만의 특수성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 되는 법인이다. 또 삼성그룹과 삼성자동차(삼성차) 채권단 간의 아직 풀리지 않은 금전적 이해관계 중심에 삼성생명 주식이 걸려있다. 삼성생명 상장으로 이건희 회장 일가가 누리게 될 어마어마한 이익에도 여론의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삼성생명 상장을 다른 생보사의 경우와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건희 회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로 군림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의 주식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즉 삼성생명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축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생명이 상장을 통해 기업공개를 하게 되면 주주총회와 공시 등의 부담을 안게 된다. 삼성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부담도 커지는 셈이다. 즉, 감시당할 수 있는 공개적 창구가 늘어나는 셈이다. 그럼에도 삼성생명이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생명 관계자는 1차적인 이유로 “자본금 조달에 대한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밝힌다. 상장을 하려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밝히는 이유와 다를 바 없다. 현재 상장을 추진중인 다수 생보사들은 사업 확장 비용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은 상장을 하면 막대한 이익을 취하겠지만 아직은 위험을 무릅쓰고 상장을 감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우량기업이기도 하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4천4백억원대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2~3위권인 대한생명(2천6백억원) 교보생명(1천4백억원) 등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런 탓에 업계 인사들은 삼성생명의 상장 움직임의 배경을 삼성차 채권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삼성측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지난 1998년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삼성생명 주식 3백50만 주를 주당 70만원으로 평가해 삼성차 채권단에 전달했다. 경영 부실로 인해 삼성차가 채권단 관리로 넘어가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채권단에 대한 일종의 보상 차원이었다.
당시 양측은 삼성생명 주식을 2000년 말까지 상장을 통해 현금화하기로 합의했으며 이 기간이 넘어갈 경우 이에 대한 이자까지 이 회장측에서 물어주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상장이 미뤄지면서 결국 채권단은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삼성그룹 입장에선 삼성생명 상장을 통해 채권단에 건넨 주식이 현금화되면 삼성을 괴롭혀온 난제 중 하나인 삼성차 채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채권단도 삼성생명 상장 추진에 적극 환영 의사를 보였다.
그러나 상장만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상장을 했는데 주가 70만원 이하로 책정될 경우 삼성생명으로선 상장을 ‘괜히 한’ 셈이 된다. 우선적 목표인 채무 청산도 하지 못하면서 기업공개에 대한 부담만 껴안게 되는 것이다. 삼성-채권단 양측이 지난 2000년 합의한 대로 그동안의 이자까지 감안한다면 주당 70만원을 상회해야 삼성이 상장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현재 삼성생명 주식이 장외에서 50만원선을 돌파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주가 70만원 돌파에 대해 이 관계자는 “상장시기가 중요할 것”이라 덧붙였다. 업계에선 현재 상장 추진 중인 교보생명 등이 먼저 상장돼 시장평가를 받는 상황을 보면서 삼성측이 상장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삼성생명 주가가 70만원 이상으로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란 자체판단이 내려질 경우엔 굳이 상장하려 들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업계의 예측에 대해 삼성생명측도 “다른 생보사에 비해 재무구조가 튼튼한 편”이라며 상장을 위해 ‘무리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삼성생명 상장 이후 삼성 총수일가를 향한 여론의 악화도 고려할 수 있다. 삼성생명 상장이 이뤄지면 이건희 회장 일가가 돈벼락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계열사들의 순환출자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 2백66만8천8백주(13.34%)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삼성그룹의 1차 목표가인 주당 70만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조8천7백억원이 된다. 이재용 상무를 비롯한 총수일가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주식이 50.21%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 일가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가치는 1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는 상장이익을 고객들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과 맞물려 ‘반 삼성’ 정서를 들끓게 할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에버랜드가 비자발적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될 경우 에버랜드가 소유한 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대규모 처분이 불가피하다. 이건희-이재용 일가의 삼성그룹에 대한 안정적 지배구조 근간이 흔들리는 셈이다. 업계 일각에선 에버랜드와 관련해 삼성측에 불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이번 삼성생명 상장으로 얻어질 삼성 총수일가의 이익이 안정적 지분 확보에 쓰일 ‘실탄’이 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