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석채 KT 회장(왼쪽)의 자신감 넘치는 행보에 업계 일각에선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과의 밀접한 인연이 힘이 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돌고 있다. 임준선ㆍ유장훈 기자 |
최근 이석채 KT 회장의 행보는 자신감이 넘친다. 정부, 삼성전자 등 KT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거침이 없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1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주가 하락의 책임을 묻자 “정부 정책(통신요금 인하) 때문에 통신 사업자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회장은 “전 세계 20대 통신사의 수익이 17% 증가했는데 한국만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며 “KT의 경우 지난해 정부 규제 때문에 4000억~6000억 원의 수익이 줄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사흘 뒤 KT의 올레경영 2기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이 회장은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접속 차단 논란과 관련해 “공짜 점심은 없다”며 “큰 건물을 지으면 교통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교통유발분담금을 내게 되어 있다. 네트워크는 고객이 만든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는 관리자일 뿐이다. (특정인이 이를 점유해서) 90%의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안 된다”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선포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남발한 것에 대해 “ARPU(Average Revenue Per User, 가입자 당 수입)는 계속 감소해왔다. 그럼에도 통신비가 비싸다고 느끼는 데는 단말기 값에 문제가 있다. 단말기가 외국에 비해 훨씬 비싸다. 글로벌 가격대로 하면 훨씬 싸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페어 프라이스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이 회장이다. 굳이 누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국내 단말기 제조사 중 가장 고가 제품을 판매하는 삼성전자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통신사업은 일종의 규제사업으로 가격 정책 등 인허가에 민감하다. 대개의 경영인은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검찰 등 규제기관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이 보통이다. 또 어떻게 보면 ‘갑(甲)’일 수도 있는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럼에도 가장 직접적인 규제기관인 방통위는 물론 삼성전자에까지 불만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간담회에서 그는 “스마트폰(아이폰) 도입 때 모두 반대했다.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정보기술(IT) 발전을 일으키지 않았느냐”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이 회장의 자신감 넘치는 행보에 대해 구설수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제일 불만이 많은 쪽은 아무래도 SK 통신 계열사들이다. SK 측의 한 인사는 “최근 이 회장이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하는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며 이계철 방통위원장과의 ‘밀월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 인사는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KT는 이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 내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방통위와의 밀월설을 묻자 KT 측은 “(방통위원장으로서) 선배로 모셨던 분이 편한가, 후배가 편한가. 후배에게 이것저것 부탁하기가 쉽지 않은 것 아닌가. 그런 논리라면 LG유플러스의 이상철 부회장이 더 유리한 상황이지 않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방통위원장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이 없다는 얘기냐’고 재차 확인하자 “그 질문에 공식 입장을 내놓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므로 답변하기 곤란하다”고만 답했다.
SK텔레콤 측은 KT의 페어 프라이스에 대해서도 “말이 안 되는 정책”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이라면 임대료가 비싸므로 단말기를 비싸게 팔아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마진을 줄여서라도 가격을 낮춰야 고객이 찾아오는 것인데, 이걸 하지 말라는 것은 대리점에게 장사를 하지 말라는 소리”라고 얘기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특히나 필수설비개방과 관련해 최근 KT와 민감하게 맞붙은 상황이다. KT는 공기업이던 시절 구축한 필수설비(전봇대+지하관로)를 개방해야 하는 의무제공사업자이지만, KT는 그간 ‘(고시상의) 용어의 불분명함’과 ‘자체 정비’를 이유로 개방에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SK 측이 ‘고시 개정’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현재 방통위에서 개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KT는 ‘의무제공사업자 해제’라는 강수로 맞받아쳤고, 다시 SK는 ‘필수설비 분리(KT에서 분리해 공동 관리)’를 꺼내든 상황이다. 방통위의 결정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두 회사의 희비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같은 KT와 SK의 신경전에 대해 LG유플러스 측은 색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사실 SK는 선발사업자인 데다 방통위 쪽에 ‘SK 장학생’이 많다. 전임 방통위원장이 언론인 출신이라 통신은 잘 몰랐다. 방통위의 싱크탱크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SK 출신이 많은데, 여기서 SK에 유리한 의견으로 안건을 올리면 방통위에서 심의할 때 SK에 유리해지는 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 위원장이 통신 전문가이다 보니 지금까지와 많이 다를 것이다. ‘밀월설’로 계속 공격하다 보면 위원장이 KT에 유리한 정책을 내리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겠는가.” 방통위가 KT에 유리한 정책을 내리지 못하도록 기선 제압용으로 밀월설을 제기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 KT의 올 초 인사도 구설이 오가고 있다. 지난 1월 KT는 ‘상무보 승진 예정자’ 7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승진’도 아니고 ‘승진 예정자’라는 희귀한 인사 내용이었다. 승진 예정자들은 시차를 두고 올해와 내년에 걸쳐 상무보가 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정권이 바뀌면 자리가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자기 사람을 심어 놓은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KT는 “임원이 되려면 직급에 맞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그 교육기간이 1년이다. 제도화된 것으로 큰 의미는 없다”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인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