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서울모터쇼를 둘러보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 | ||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0.3%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30%가량 줄었다. 그러나 ‘얼마나 장사를 잘했나’의 척도가 되는 순이익면에서는 2조원을 돌파해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장사를 잘해놓고도 연초부터 비상경영을 선포한 현대차의 진짜 속사정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비상경영 조치에 대해 ‘환율 급락’을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2월2일 현재 9백70원까지 하락한 달러 대비 원 환율에 대해 현대차측은 9백50원 상황까지 상정해놓은 상태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로 먹고사는 기업들의 이익은 급감하기 마련. 업계에선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 현대차의 매출은 2천억원, 순이익은 7백억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현대차의 비상경영 원인이 오직 환율 급락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수출을 주동력으로 삼는 삼성전자에선 현대차와 같은 비상경영 움직임이 없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월 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경쟁사인 유럽이나 일본 기업도 환리스크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라며 “환율 타령으로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현대차와는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 셈이다.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달러 환율에 얽힌 이해가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현대차는 삼성전자에 비해 북미 지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달러 환율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앨라배마 현지 공장을 완공한 현대차는 미국 현지에서 연간 3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춰놓은 상태다. 지난해 미국시장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46만 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앨라배마 현지 생산·공급 체제가 안정될 경우 달러 환율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대차측은 앨라배마 공장이 지난해 6월에 완공돼 목표량인 연간 30만 대 생산과 현지공급체제를 갖추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현대차의 이번 비상경영 체제 선언을 내부 사정에서 찾아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얼마전 새로 출범한 제12대 현대차 노조집행부가 임금협상에서 강경투쟁 방침을 선언하자 회사 사정을 근거로 노조집행부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비상경영 선포 이후 매일 아침 정신재무장 교육 지시, 골프장 출입 자제 지침, 원가 절감 아이디어 수시 요구 등을 통해 직원단속을 강화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환율 급락을 내부 단속용으로 활용한다는 시각에 대해 현대차측은 ‘일부 호사가들의 앞서간 추측’으로 못박는다.
정몽구-정의선 승계 체제 가속화에 대한 사전포석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해 정몽구 회장(MK)은 수시인사를 통해 ‘MK 1세대’ 임원들을 전원 퇴진시킨 바 있다. 업계에선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순조로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장애물 제거 차원으로 받아들였다. 삼성의 구조본을 방불케 하는 막대한 권한의 경영전략추진실 신설을 통해 조직 장악력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감사실 기능 확대는 대규모 임원 인사에 대비한 ‘X-파일’ 수집 기능 강화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몽구 회장 특유의 수시인사를 통해 정의선 사장의 후계체제 연착륙을 도모하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추진 중인 일관제철소 건설과 관련짓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말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INI스틸 김무일 부회장은 충남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에 들어갈 비용에 대해 “대략 5조원”이라며 “내부 자금으로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환율 급락과 더불어 제철사업 지원을 위해 정몽구 회장이 허리띠 졸라매기 차원에서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비상경영 도입은 순전히 환율문제 때문”이라며 항간의 추측들을 일축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