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소로 펼치는 대결과 화합의 한마당
대체 무엇에 대해 묘사한 글일까. 바로 국가무형문화재 ‘영산쇠머리대기’ 예능보유자였던 고 김형권 선생이 글로 남긴 쇠머리대기의 한 장면이다(‘민속자료조사보고서 12 -영산지방의 나무쇠싸움과 줄다리기’). 영산쇠머리대기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서 대보름 축제를 배경으로 전승해온 대동놀이를 말한다. 나무로 엮어 만든 거대한 소를 양쪽 진영의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서로 맞부딪쳐서 상대방의 쇠머리를 쓰러뜨리거나 주저앉혀 승패를 가른다.
영산쇠머리대기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영산의 영축산과 작약산(함박산)의 형상이 마치 두 마리의 황소가 겨루고 있는 것 같다 해서 산의 나쁜 기운을 풀어주고, 불행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영산쇠머리대기는 일종의 편싸움 놀이로,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 패로 편을 짜는데 이긴 편 마을에는 풍년이 들고 진 편 마을에는 흉년이 든다고 해서 농경의식의 하나로 전승돼 왔다. 놀이 때 격렬한 힘겨루기가 벌어지지만, 대결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승패를 떠나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신명을 풀어내고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풍요로운 새해를 염원하며 축제를 즐긴다.
쇠머리대기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 과정은 나무로 소머리 모양을 만드는 일이다. 놀이 때가 다가오면 마을사람들은 산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산에서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베어온다. 그 후 통나무 3개를 엇갈리게 세워 위는 새끼줄로 하나로 묶고 아래는 넓게 펴 넘어지지 않도록 큰 통나무에 고정시킨다. 또한 세운 나무의 중간에 또 다른 나무를 가로로 대고 튼튼하게 묶어 사람이 잡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나무 소의 모양이 갖춰지면 그 밑바닥에는 통나무를 가로, 세로 5~6개씩 대고 엮어 땅에 놓아도 안정적이면서 싸울 때 메기 좋도록 만든다. 세워둔 통나무 앞부분에는 소머리 모형을 깎아 세우거나 가면을 만들어 씌우기도 한다.
결전의 날이 밝으면 동·서 양쪽 진영에서는 풍물패를 앞세워 농악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마을을 돈다. 놀이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기세를 올리고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다. 싸움터인 마을 광장에 마을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이번 대결을 지휘할 대장, 중장, 소장 등 세 명의 ‘장군’이 경건하게 고사를 지낸다. 쇠머리대기에 출전하는 장정들의 안전과 승리, 그리고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농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각 진영에서 장정 50여 명이 나무 소를 메고, 쇠머리 위에는 세 ‘장군’이 올라타 지휘를 시작한다. 본 대결에 앞서 전초전 격인 서낭대 싸움(양편을 대표하는 서낭대를 서로 부딪쳐서 먼저 넘어지거나 부러지는 쪽이 지는 놀이)과 진잡이 놀이(양편이 진을 치고 서로 상대편의 진지를 공격하고 막는 놀이)가 펼쳐진다.
이윽고 양측의 쇠머리가 격돌하는 본 대결이 시작된다. 주민들의 환호와 응원 속에서 대장의 지휘에 따라 힘차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장정들(쇠머리꾼들). 결국 상대방의 쇠머리를 쓰러뜨리거나 자기편의 쇠머리로 상대방의 쇠머리 위를 덮쳐 땅에 닿게 하는 진영이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누구도 결코 패자가 되지는 않는다. 앞서 소개한 고 김형권 선생의 글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이쪽에서는 동부가 이겼다고 좋아라 하고, 저쪽에선 서부가 이겼다고 야단법석이다. 판가름은 아주 주관적이다. 우열을 가리는 경기가 아닌 어디까지나 놀이이기에 동서 양군의 적대시하던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화합은 더욱 돈독해진다.”
나무쇠싸움, 목우전(木牛戰)이라고도 불리던 영산쇠머리대기는 원래 영산 지방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던 민속놀이이다. 하지만 1961년 3·1문화제(현 삼일민속문화제)가 출범한 이후 이 고장의 고유 민속놀이인 영산줄다리기 등과 함께 3·1절에 연행되고 있다. 이 문화제는 영산에서 기미년(1919년) 격렬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3·1 항쟁의 전통과 지역의 민속놀이 등 문화적 자산을 함께 기념하고 이어가기 위한 축제다.
영산쇠머리대기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에 전승이 중단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 초 하봉주, 김형권 선생 등의 노력으로 복원되었고, 마침내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사)영산쇠머리대기보존회를 중심으로 명예예능보유자인 정천국(목우전), 조대권(쇠머리 제작) 선생 등이 전승에 힘쓰고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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