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푼 한 씻어내어 평안한 세계로 인도하다
씻김굿은 불교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진도씻김굿은 굿을 하는 시기와 장소 등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르다.
초상이 났을 때 시체 옆에서 직접 하는 ‘곽머리씻김굿’, 죽은 지 1년 되는 날 밤에 하는 ‘소상씻김굿’, 죽은 지 2년 되는 날 밤에 하는 ‘대상씻김굿’, 집안에 병자가 있거나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날 때 벌이는 ‘날받이씻김굿’,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넋건지기굿’, 총각이나 처녀로 죽은 사람들끼리 혼인을 시켜주는 ‘저승혼사굿’ 등이 있다.
진도씻김굿은 부엌의 신인 조왕신을 위해 드리는 굿거리인 ‘조왕반’과 조상께 굿하는 것을 알리는 ‘안땅’(안당)으로 시작된다. 이어 길에서 죽어 떠도는 혼을 불러들이는 ‘혼맞이’,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들이는 ‘초가망석’, 불러들인 영혼을 즐겁게 해주는 ‘처올리기’가 진행된다.
그 다음으로 ‘손님굿’이 펼쳐지는데, 대개의 경우 손님굿은 천연두의 신인 마마신을 불러 대접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진도씻김굿에서는 이와 함께 망자가 친했던 이승 친구들의 영혼을 불러 즐겁게 해준다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뒤이어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제석신을 모시는 ‘제석굿’, 원한을 상징하는 고(무명으로 엮은 일종의 매듭)를 풀어가며 영혼을 달래주는 ‘고풀이’, 망자의 옷가지를 돗자리로 말아 망자의 형상을 만드는 ‘영돈말이’, 영돈을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 즐겁고 편안한 세계로 가도록 기원하는 ‘이슬털기’, 영돈 위의 넋을 끄집어내어 손에 들고 십왕풀이를 하는 ‘왕풀이’,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모두 풀어주는 ‘넋풀이’, 억울한 원한의 넋두리를 풀어주는 ‘동갑풀이’, 약을 구하지 못해 죽은 한을 풀어주는 ‘약풀이’ 등이 진행된다.
그 뒤에 펼쳐지는 ‘넋올리기’는 굿을 하는 가족의 머리 위에 죽은 이의 넋을 올려놓은 뒤 망자의 한이 풀어졌는가를 알아보는 굿이다. 이 과정은 사실상 죽은 이와의 이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어 가족이나 친척들이 손대(굿에 쓰이는 소나무나 대나무 가지)를 잡으면 죽은 이의 혼이 내려와 이승에 맺혔던 원한을 이야기하는 ‘손대잡이’, 저승의 육갑을 풀어주는 ‘희설’이 진행되고, 끝으로 무명베를 깔아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깨끗이 닦아주는 ‘길닦음’, 객귀들을 달래고 죽은 이의 혼을 공손히 보내는 ‘종촌’으로 씻김굿이 마무리된다.
진도씻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천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한 의례 내용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예컨대 가신과 조상에게 아뢰는 굿인 안당, 남은 이들이 무병하고 풍요롭게 살기를 축원하는 제석굿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망자의 영혼을 달래는 고풀이부터는 본격적으로 ‘떠나는 이’를 위한 의례가 펼쳐진다 할 수 있다.
진도씻김굿은 가장 예술적인 굿 중 하나로 꼽히는데, 특히 아름다운 음악과 춤이 인상적이다. 당골(무당을 뜻하는 전남 방언)이 부르는 무가는 남도 특유의 육자백이목(판소리의 계면조에 해당되는 무가의 선율) 중심이라 굴곡이 많고 활발하다. 반주 악기로는 전통적으로 장구, 징과 같은 타악기와 피리, 대금, 해금 또는 아쟁과 같은 선율악기가 쓰인다.
씻김굿의 음악은 대체로 흘림(동살풀이), 진양(느린 장단), 대왕놀이(대학놀이), 떵떵이(덩덕궁이) 위주로 구성되지만 선부리(씻김굿 ‘처올리기’에서 춤출 때 치는 장단), 마음조시(어느 장단에서 다음 장단으로 넘어가는 것을 알리는 리듬) 등 다른 지역에서 듣기 어려운 특이한 장단이 있어 이채롭다.
씻김굿은 전체적으로 굿의 내용이 서정적이기 때문에 춤 역시 서정적인 특징이 강하다. 무당이 흰색 옷에 다홍색 띠를 걸치는 정도의 소박한 옷차림으로 춤을 추는데, 그 춤은 우아하면서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제자리에서 무릎을 굽혔다 펴는 정도의 굴신으로 무겁고 정숙하지만 깊은 한을 딛고 추는 춤은 매우 의식적이고 상징적이다. 춤은 대개 손에 들고 추는 것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지전을 손에 들면 ‘지전춤’이 되고, 고를 풀면서 춤추면 ‘고풀이춤’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당은 신들린 무당과 집안으로 세습되어 내려오는 세습무로 나뉘는데, 진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세습무들이 굿을 했다. 대체로 여자가 굿을 하는 ‘당골’이 되고, 남자는 무악(무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고인’이 되었다. 1980년 진도씻김굿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던 때만 해도 진도에는 상당수의 세습무가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이 죽거나 굿을 그만두어 현재는 박병원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악사)를 비롯해 몇몇 전승교육사에 의해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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