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 장인의 손끝서 영롱한 보석으로 피어나다
나전(螺鈿)이란 나무로 짠 가구나 기물 위에 무늬가 아름다운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갈고 문양을 만들어 옻칠로 붙이는 공예 기법이다. 조개껍질을 뜻하는 우리말 ‘자개’를 써, ‘자개박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전통 기술 자체, 또는 그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가리켜 ‘나전장’(螺鈿匠)이라 부른다.
나전은 나무 바탕에 직접 새겨 상감(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서 금, 은, 자개 따위를 박아 넣는 공예기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칠 바탕 위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칠을 올린 뒤 표면을 연마하여 무늬가 드러나게 만든다. 이 때문에 나전에는 으레 ‘칠’이라는 말을 붙여 나전칠기라고 쓰는 것이 보통이다.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나전 공예품은 옛 가야 땅에서 출토된 ‘나전 화문 동경’이다. 나전 기법으로 꽃무늬 장식을 한 아름다운 청동거울로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부터 나전 공예가 활발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통 나전 기법은 고려시대 들어 더욱 화려하게 꽃피우게 된다. 고려의 장인들이 만든 나전 공예품은 정교하고 예술성이 뛰어나 귀한 특산품으로 꼽혔다. ‘동국문헌비고’에서는 11세기에 문종이 요나라 왕실에 나전칠기를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도 발견된다. 나전 기법은 당시 융성하던 불교 용품은 물론 서책이나 붓 등을 담는 함부터 말의 안장 장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고려시대 이래 나전장은 중앙 관서에 소속된 장인으로서 왕실과 조정에 필요한 나전칠기를 제작했다. 조선 전기에 관에서 편찬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공조에 나전장 2명이 소속돼 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나전 공예품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조선 후기부터는 그 수요가 증가하면서 사장(관부에 소속되지 않은 장인)도 생겨났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경상남도 통영에서 나전칠기가 활발히 제작됐는데, 이는 통영에 설치된 통제영의 12공방에서 진상용 공예품의 하나로 나전칠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방의 전통과 전복껍데기의 채취가 용이한 지역적 입지 때문에 통영은 대표적인 나전의 고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나전칠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자개와 옻나무 수액인 칠이다. 자개의 재료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가 주로 사용되며,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아름답고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강원도 원주는 예로부터 우수한 옻칠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왔다.
나전칠기는 기법에 따라 30개 과정 내외의 힘든 공정을 거쳐야 하나의 공예품으로 탄생한다. 나무로 기본 틀인 백골을 짜고 그 표면을 사포로 문지르거나 틈새를 메워 고르게 한 다음 자개를 붙이고, 그 후 연마, 옻칠, 광내기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자개로 무늬를 만드는 방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를 끊어 붙여가면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과 자개를 문질러 얇게 만들어 줄칼로 다듬어 국화, 대나무, 거북이 등 각종 도안 문양을 만드는 ‘줄음질’ 기법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모란·국화·연꽃 등의 식물무늬를, 조선 중기에는 사대부의 취향이 내포된 화조·쌍학·포도·사군자 등의 무늬를 주로 나전으로 표현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나전 공예품이 점차 대중화되면서 나전 무늬도 산수풍경, 십장생문, 석류문 등 자연관과 행복관을 반영하는 민화풍의 요소들을 담게 되었다.
개화 이후 발전하던 전통 나전칠 공예는 일제의 침략과 더불어 시련을 맞게 된다. 일본 취향의 나전칠기가 제작되면서 왜색에 물들기 시작하고, 칠공예의 전반적인 경향이 일본 양식으로 변모되었던 것. 그러나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나전칠 공예는 외길 인생을 걸어 온 장인들에 의해 우리 주체성을 지키며 명맥을 이어왔다. 1966년 나전장(당시 나전칠기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래로 김봉룡 초대 기능보유자, 심부길(끊음질), 송주안(끊음질), 김태희(나전칠장), 송방웅(끊음질) 보유자를 거쳐 현재 이형만(줄음질), 최상훈(끊음질), 장철영(끊음질), 박재성(끊음질) 기능보유자가 작품 활동을 펼치며 후학을 키우고 있다.
고 이어령 박사는 자신의 저서 ‘우리 문화 박물지’에서 나전을 “황금을 압도하는 보석”이라 표현했다.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영롱한 빛의 보석, 나전이 아무쪼록 시공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전통공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료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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