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해 7월 박용만 회장과 영국왕실골프협회 피터 도슨 총괄 디렉터가 영국 디오픈 두산 홍보 부스에서 중장비 기증식 후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5남인 박용만 회장은 1955년 2월 5일 서울에서 출생,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보스턴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올해로 만 57세인 박 회장은 바로 위 형인 박용현 전 회장(69)과 띠동갑이다. 두산그룹의 형제들, 즉 장남 박용곤 명예회장부터 고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성·박용현 전 회장 사이가 대략 서너 살 터울인 것에 비하면 나이차가 상당히 나는 셈이다.
비록 박용만 회장의 동생이자 두산그룹 3세 중 막내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있지만 박용욱 회장이 자신의 기업을 따로 경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에서는 두산그룹 3세경영은 박용만 회장이 마지막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4월 12일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두산은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 기준으로 재계 12위에 올라 있다. 자산은 29조 9000억 원, 계열사는 24개다. 박용만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서 과연 두산을 재계 10위권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할지도 관심거리다.
박용만 회장이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은 1977년, 두산이 아닌 외환은행에서다. 시작은 외환은행에서였지만 외환은행 퇴사 후 1983년 두산건설 뉴욕지사를 시작으로 두산그룹 경영과 인연을 맺었다. 두산식품, 두산음료, 두산동아, OB맥주 부사장 등 두산그룹 계열사를 골고루 거친 것이 경영수업에 큰 도움이 됐다.
1995년 박용만 회장은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에 오르며 마침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주)두산 부회장,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회장, 두산중공업 부회장·회장을 잇달아 맡으면서 식음료 전문 회사였던 두산그룹을 ‘무겁고 두껍고 길고 큰’ 중후장대(重厚長大)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데 앞장섰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그룹 고위직을 거치는 동안 계열사 매각과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IMF 외환위기 전부터 한국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의 주식을 매각하며 변신을 꾀하던 두산은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음료사업부문을 미국 코크 사에 매각했고, 서울 을지로 본사 사옥도 매각했다.
그룹의 대표 브랜드였던 OB맥주 지분을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매각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법인등기부상 (주)두산의 전신은 오비맥주, 옛 동양맥주주식회사다. 그룹의 중추였던 OB맥주를 매각했다는 것은 완전히 탈바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선대부터 이어온 두산의 전통·주축 사업을 모조리 매각하는 것에 당시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다. 두산의 앞날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두산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2006년 연합캐피탈(현 두산캐피탈), 2006년 영국 미쯔이밥콕(현 두산밥콕), 2007년 밥캣을 포함한 미 잉거솔랜드 3개 사업 부문을 잇달아 인수했다. 이후에도 BNG증권중개(2008년), 노르웨이 목시(2008년), 체코 스코다파워(2009년) 등 국내외 M&A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박용만 회장이다.
두산의 잇단 M&A에 대해서도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다. 과연 익숙한 사업을 버리고 완전히 생소한 사업을, 그것도 이전 사업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다란 사업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산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현재 두산의 기업가치는 10년 전보다 25배가량 높고 매출은 약 10배 늘어났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의 변신이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M&A 전문가는 박용만 회장에 대해 “M&A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며 “지난 10여 년 동안 두산의 구조조정과 M&A의 중심에는 박용만 회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을 가리켜 ‘구조조정 전문가’ ‘M&A의 귀재’ ‘Mr. M&A’라고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용만 회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트위터’다. 박 회장은 트위터 활동을 통해 패쇄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재벌 총수 이미지를 개방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더불어 두산의 이미지도 젊어졌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구단주로서 홈경기가 있을 때 틈틈이 잠실구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두산 팬들과 어울리는 점도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됐다. 이렇게 보면 박 회장은 두산을 사업적 측면뿐 아니라 이미지 면에서도 변신시킨 셈이다.
그러나 태생까지 탈바꿈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박 회장은 종종 서민·노동자들의 팍팍한 삶과 괴로운 심정과 거리가 먼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노사 문제에 대해 “No Work, No Pay”(무노동 무임금)라고 한다든가, 삶이 두려울 때 어떤 선택을 했느냐는 한 트위터리안(트위터 사용자)의 질문에 “삶이 왜 두렵지요? 죽음이 더 두렵지 않나요?”라고 답한 것 등이 그것이다.
박 회장의 트위터 활동에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트위터 활동을 이미지 개선과 광고 홍보에 이용한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행사 등에 참석한 자신의 신변과 두산의 TV 광고 후속작 등을 올리는 경우는 많지만 그룹의 치부를 지적하거나 관련 질문에는 침묵하기 일쑤였다.
#무리한 M&A, 트위터 활동의 이면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트위터 화면 캡처. 박 회장은 적극적인 트위터 활동을 통해 개방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얻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트위터리안들이 가만있을 리 만무. 수많은 트위터리안들이 박용만 회장에게 중앙대 사태와 관련해 질문을 쏟아냈지만 박 회장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트위터에 시시콜콜 올리던 박 회장의 침묵이기에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당시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씨도 “중대 학생사찰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고 직격탄을 날렸지만 박 회장은 침묵했다. 팔로어들의 질문에 바로바로 답변하던 이전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결국 버티다 못한 박 회장은 트위터에 “중앙대 일은 박범훈 총장께서 발표를 하셨더군요. 그것이 fact(팩트)입니다”라는 짤막한 답변만 했을 뿐이다.
최근 박용만 회장의 트위터 활동은 뜸하다. 그룹 회장직을 수행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지만 회장이 일반인과 자주 교류하는 것에 대해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탓이 더 커 보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최근 트위터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박용만 회장은 기업경영과 관련해 ‘투명성과 정직’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 회장 자신이 2005년 두산의 ‘형제의 난’ 당시 회계분식과 거액의 자금 횡령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박용만 회장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M&A에서 밥캣 인수도 박용만 회장의 오점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박 회장이 ‘밥캣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꾸준히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M&A 전문가는 “M&A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수 가격”이라며 “시너지 효과가 아무리 중요해도 인수 가격이 높으면 시너지 효과보다 금융비용 등 재무부담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시너지 효과를 낼 때까지 재무부담을 이겨낸다면 다행이지만 효과를 내기 전에 부담을 털어내지 못한다면 큰일”이라며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한 금호가 좋은 예”라고 말했다. 즉 밥캣을 너무 높은 가격에 인수해 그로 인한 재무부담이 두산을 계속 괴롭혀왔다는 설명이다.
지난 2007년 말 두산인프라코어는 해외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밥캣을 49억 달러(약 4조 500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높은 인수 가격도 문제였지만 이듬해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무리한 인수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수년간 두산이 계속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용만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분간 큰 M&A는 없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너무 공격적인 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기업문화 정립에 힘써야 할 때”라고도 말했다. 큰 M&A를 성사시킬 자금력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밥캣의 경우처럼 경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M&A에 뛰어들었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 때문에 더 조심하는 것일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벌써 ‘포스트 박용만’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두산가의 3세 중 막내인 박용욱 회장이 이생그룹을 경영하고 있어 박용만 회장으로 두산의 3세경영은 막을 내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 박용만’은 두산의 4세경영의 시작인 셈이다.
‘포스트 박용만’의 가장 유력한 사람은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다. 박용만 회장의 큰형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은 (주)두산 사장도 맡고 있으며 지난 3월 30일 주주총회 때 3년 임기 사내이사에 재선임되기도 했다. 지주사인 (주)두산의 지분율도 박정원 회장이 5.31%로 박용만 회장(3.44%)보다 많다.
이 같은 사실이 박정원 회장이 ‘포스트 박용만’이라는 재계의 분석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다만 현재 두산건설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 박정원 회장으로서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용만 회장의 임기는 3년. 3년 동안 박 회장은 큰 변화가 없는 한 두산의 4세경영 시대를 순조롭게 열어줘야 할 책무 또한 있는 셈이다.
“프로야구단(두산 베어스)을 운영하는 것만큼만 한다면 국내 ‘톱5’에 들 수도 있을 겁니다.”
박용만 회장과 관련해 지난해 한 증권사 고위 인사에게 들은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산그룹의 차기 회장으로 박용만 회장이 수면 위로 부상할 때였다. 박 회장이 과연 시즌 초 질주하는 두산 베어스처럼 두산그룹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