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아내인 정희자씨. 그는 호텔과 리조트 사업을 벌이는 필코리아리미티드사의 실질적인 오너다. | ||
지성학원 이사장이자 필코리아리미티드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인 정희자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씨의 남편은 대우그룹 창업주 김우중씨.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지난 2001년 5월 41조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9조2천억원을 사기 대출 받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지난해 김 전 회장은 귀국해 검찰에 구속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병보석으로 풀려나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중이다.
김 전 회장이 이런 풍파를 겪는 동안 정희자씨를 수식하던 단어도 줄었다. 하지만 정희자씨의 위상은 거제도에서 초·중·고교를 거느리고 있는 지성학원 이사장을 여전히 맡고 있고 호텔과 골프리조트 그룹의 오너로서 근본적으로는 대우그룹 해체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그는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던 탓인지 허리 수술을 여러 번 하고 해외 유랑을 떠난 남편을 따라 지난 몇 년 동안 주로 외국에서 머무는 등 공식적인 국내 활동이 뜸했다.
김우중 전 회장의 부인이 아닌 경영인 정희자는 호텔 경영자로 자리매김돼 있다.
지난 64년 김우중 회장과 결혼한 정희자씨는 이듬해 맏딸 김선정씨를 낳는 등 3남1녀를 낳는 동안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의 남편 김우중은 한성실업 샐러리맨에서 신흥 재벌 대우의 오너로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주부 정희자’는 창업 초기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편에게 급전을 구해다 주는 등 나름대로 큰 기여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정 회장은 남편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75년 외국어대에서 불어 연수를 받고 이어 미국 하바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막내 선용씨가 두 살 때였다. 그만큼 단단하게 마음먹고 공부하러 떠났다는 얘기다. 76년부터 1년반 동안 하바드대학에서 동양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이후에도 고려대 연세대 숙명여대 등의 경영대학원을 섭렵하면서 공부와 인맥을 꾸준히 넓혔다.
그가 공식적으로 대외활동을 시작한 것은 80년 지성학원 이사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 대우해양조선이 있는 거제도 지역의 초·중·고등학교를 거느린 학교재단에 경영 책임을 맡아 지금도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가 호텔 경영에 나선 것은 84년 동우개발(현 필코리아리미티드) 서울 힐튼호텔 회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그는 정 회장으로 불렸다.
이처럼 그는 다른 재벌그룹 총수의 안방 마님들이 미술계 등 제한적인 부분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활동 반경이 컸다. 직접 기업 경영을 맡았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기자들과의 접촉도 꺼리지 않을 정도로 대면접촉의 폭과 질이 넓고 깊었다. 때문에 그는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스타일의 여장부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남자 사주를 타고 났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남성 경영자처럼 골프를 통해 비즈니스 미팅을 갖을 정도였다.
김 전 회장이 일벌레라고 소문나면서 골프채를 잡지 않았던 데 반해 그는 골프를 즐겨했다. 포천의 아도니스CC, 에이원CC 등 골프장을 직접 경영하기도 하고, 제주도에 골프장 부지를 마련했다가 외환위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넘긴 뒤에는 많이 아쉬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 아도니스를 라온건설에 넘긴 뒤에 최근에는 거제도에 로이젠CC 건설을 추진중이기도 하다. 정 회장이 골프에 빠져 든 계기는 일중독증에 걸린 김 전 회장이 신혼 초 정 회장에게 ‘집에 있는 시간이 적은 나 대신 골프에 취미를 붙여보라’며 골프채를 사다 줬다는 것.
정 회장의 호텔 경영은 서울 힐튼으로 시작해 경주 힐튼, 베트남 하노이의 대우호텔, 중국 연변의 대우호텔 등 전세계 체인으로 넓어졌다.
그는 이 호텔 경영에 대해 대우나 김 회장과는 상관없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몇 년 전 그는 한 인터뷰에서 “대우와 내 회사(대우개발)는 별개다. 나는 대우의 일에 일절 손을 안 댔고, 자동차나 전자 공장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내 회사만 철저히 책임지자는 생각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자세는 대우 해체 뒤 김 전 회장의 재산 회수 때 아도니스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정 회장의 또다른 면모는 미술 컬렉터. 그가 본격적인 미술 컬렉터로 나선 것은 80년대 초로 알려진다. 동양미술사를 정식으로 공부한 뒤 도상봉 김환기 등 근대 한국 동양화가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
수백 점을 모은 그는 큰 아들 선재씨가 사망한 뒤 그의 이름을 따 91년 경주에 선재미술관을 세우고 98년에 서울 소격동에 아트선재센터를 세워 단순히 미술 애호가를 넘어서서 미술계의 주요 인사로 떠올랐다. 고미술쪽에서 정 회장의 컬렉션은 삼성가의 호암컬렉션을 넘어서기 어려웠지만 현대미술쪽에선 삼성과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는 게 미술계 주변의 전언이다.
특히 지난 98년 7월 서울 아트선재센터의 개막식에 당시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씨를 초청해 행사를 벌이자 삼성쪽에서도 일주일 뒤에 영부인을 초청해 조선 후기 국보전 개막식을 치르는 등 양대그룹에서 묘한 신경전을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 회장의 영향 탓인지 그 딸 김선정씨도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이다. 돈 많은 컬렉터로 불리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미술 인력으로 분류되고 있을 정도다. 선정씨는 이수그룹 김상범 회장의 부인으로 재벌가 며느리이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으로 활동하면서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기획 전시자로 선정될 만큼 미술계의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즉 일로 봤을 때 정 회장은 호텔 경영자, 경주 선재미술관-서울 아트선재센터 관장 등 미술 컬렉터, 골프광이자 골프장 경영자 등 세가지 색깔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매일 일에 쫓겨 집을 비우는 바람에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내 넘치는 에너지를 어딘가 몰두해 쏟아 부을 데가 필요했다. 그래서 애들 교육도 아주 철두철미하게 하고, 일도 열심히 한 거지…. 만일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도 많고 나한테 잘해줬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 김 전 회장은 병원에 있다. 오랜 낭인 생활 끝에 귀국해 구속된 뒤 몸이 아파 병원에 누워있다. 타의로 정지해 있는 셈이다. 끝없이 뻗어 나갈 줄 알았던 대우도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있다. 반면 정 회장의 호텔-골프 사업군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정 회장은 요즘도 김 전 회장의 병실에 정기적으로 문병을 가고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미술계 현장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의 차남 선협씨는 정 회장 관할의 아도니스에서 대표이사로 경영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필코리아리미티드그룹에서 시도하고 있는 거제도의 로이젠CC 건설 계획은 아직도 추진중이다. 병석에 누워있는 김 회장 대신 정 회장은 아직 할일이 많은 것이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