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국채금리 상승으로 유럽 재정위기가 재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12일 코스피 지수. 연합뉴스 |
세계경제와 국내 증시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는 크게 두 가지 문제에서 비롯된다. 먼저 프랑스 대통령 1차 선거에서 사르코지 현 대통령이 사회당 후보인 올랑드에 밀리면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진 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독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유럽 재정위기를 위해 양국이 재정을 긴축해 유로존의 어려운 나라를 돕기 위해 돈을 내놓겠다고 합의했다. 그런데 올랑드 후보는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은 “올랑드 후보가 당선돼 프랑스가 돈을 내놓지 않으면 독일만 돈을 내놓을 리가 없다. 그럼 이탈리아 스페인 등 덩치 큰 유럽 국가들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지난해 하반기 내내 양국이 머리를 짜낸 문제 해결책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다시 양국이 합의할 수 있지만, 재합의안이 나올 때까지는 상황이 어찌될 지 불안해지면서 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수출이 많은 독일로서는 당장 돈을 내놓지 않으면 유로화 가치가 더 하락해 자국 상품의 해외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프랑스가 시큰둥하게 나오면 독일도 굳이 돈을 내놓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두 번째 문제는 스페인이다. 스페인 사정이 생각보다 나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페인 정부가 돈이 고갈되고, 정부에 돈을 빌려준 은행이 어려워지면 제2의 그리스 사태가 터질 수 있는데, 그 규모와 충격파는 더 클 것이란 불안감이다. 스페인 은행들은 정부에 빌려준 돈 가운데 떼일 부분을 미리 예상해 6월 말까지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데, 돈 빌릴 곳이 독일과 프랑스다. 그런데 프랑스 대선 결과에 따라 돈을 빌릴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난다. 이래저래 5월의 유럽은 ‘보릿고개’인 셈이다. 조병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문제가 터진다면 스페인이다. 확률이 굉장히 높다. 스페인은 유로존에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경제규모가 큰 나라다. 그리스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유럽이 어려워지면 국내 증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크게 미국과 유럽인데, 유럽 투자자들이 자국 사정을 빌미로 한국에 투자한 돈을 빼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한 이후 유럽의 상황변화와 코스피의 방향은 상당부분 일치했다. 즉 유럽 사정이 나아지면 코스피가 오르고, 나빠지면 코스피가 하락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경기가 좋아진다는 미국도 유럽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독야청청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세계 3대 소비지역인 중국도 문제다. 올해 정권교체를 앞두고 물가는 잡고 소비는 늘려 경기를 살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장쩌민 전 국가주석파와 후진타오 현 주석파 간의 권력암투만 치열하다. 정치가 경제를 삼키는 상황에서 중국의 소비가 늘어 주요 수출국들이 물건을 팔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이처럼 유럽을 중심으로 외국인이 돈을 뺄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데, 국내 투자자들은 거의 속수무책이다. 개인들이야 주식을 팔아 치우면 그만이지만, 펀드는 법적 최소 주식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시장이 어렵다고 주식을 다 팔아 치우면 주가가 더 떨어지는 것은 물론 손실을 보고 주식을 팔아야 할 경우도 생긴다.
익명의 증권업계 고위관계자는 “몇몇 대기업을 빼면 올해 이익이 늘어날 기업들이 그리 많지 않다. 경영성과가 좋아지지 않는데 주가가 오를 리가 없다. 게다가 최근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은 단기성 투기자금이 많은데, 이들이 한꺼번에 떠날 여지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올 들어 들어온 외국인 자금의 상당수는 컴퓨터에 일정한 조건을 걸어놓고 자동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형태의 시스템 트레이딩 자금이 많다. 이런 돈은 길어야 수개월, 짧게는 며칠 만에 사고팔기를 반복한다.
외국인의 공매도에 대해서도 거의 속수무책이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파는 매매기법으로 주가가 떨어질수록 이익이 난다. 일반적인 국내 주식형 펀드는 이 같은 공매도가 금지돼 있다.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도 외국인 공매도로 자문형랩 수익률이 박살이 났다. 내국인들이 많이 들고 있는 종목을 중심으로 공매도를 실행해 주가를 떨어뜨리는데, 국내 기관들은 공매도가 어렵다”며 “외국인들은 칼을 빼 들고 덤벼드는데, 맨몸으로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면서 증시에 ‘위기설’이 떠돈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실제 위기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시기가 조금 다르고 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 경제와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5월 위기설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증권가의 ‘호들갑’일 수 있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귀 기울일 만한 의견임에는 분명하다는 데는 긍정론자조차도 동의한다.
홍기석 드림자산운용 본부장은 “글로벌 증시를 움직이는 큰 축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선진국 거대자본들의 움직임이 결국 증시를 좌우한다”면서 “IT(정보기술)의 발달로 이들 거대금융자본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고, 그 영향력도 광범위하다. 전세계적으로 경제시스템에 대한 도전이 이뤄지는 상황인 만큼 언제든 5~10% 정도의 시장 조정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