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의 입당을 환영하고 있다. | ||
삼성 전·현직 CEO들에 대한 대학가와 각종 사업장의 강의 초청 횟수가 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타 기업의 영입 시도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겸비한 까닭에서다. 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물난에 허덕이는 정치권이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한 대목이기도 한 것이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대제 정통부장관은 계속 고사해왔음에도 여권으로부터 경기지사 출마 러브콜을 줄기차게 받고 있다. 진 장관은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도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더불어 당선가능성이 높은 여권의 ‘구세주’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껏 진 장관 출마설로 인해 삼성과 여권의 관계가 주목을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한나라당과 삼성의 물밑관계에 더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같은 기류를 만든 인사는 바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다.
지난해 제주지사 도전설이 나돌던 현 전 회장의 향후 진로에 대해 대다수 정치권 인사들은 열린우리당행을 점쳤다. 그러나 현 전 회장은 지난 1월 보란 듯이 세인들의 예상을 깨고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했다. 현 전 회장이 거취를 결정하기 전만해도 정가에선 그의 여권행을 상정하고 여권 내 벌어질 제주지사 후보들 간의 각축전을 점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현 전 회장은 오히려 한나라당 인사들과 자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인재영입단장을 맡았던 김형오 의원은 현 전 회장 입당 직전 약 20차례 회동을 가졌다고 한다.
얼마 전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해 말 김형오 의원이 수차례 윤 부회장과 접촉했다고 전해진다. 윤 부회장의 서울시장 출마를 전제로 한 영입에 대해 한나라당의 몇몇 당직자들은 “판이 재미있어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윤 부회장이 정치권에 뛰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굳이 갈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이미 명망을 쌓은 윤 부회장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방선거전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 윤종용 부회장(왼쪽), 황영기 은행장 | ||
최근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전제로 한 삼성증권 사장 출신 황영기 우리은행장 영입설까지 나돌았다. 인재영입단장이었던 김형오 의원이 황 행장과 수차례 접촉을 가졌던 것은 물론이고 이명박 서울시장과도 교감을 나눴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울시의 주거래 은행이 우리은행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도 주목 받고 있다. 최근 서울시와 우리은행이 노숙인 특별우대 통장 개설에 합의하고 이와 관련한 공식행사에 이 시장과 황 행장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이명박-황영기’ 밀월설까지 나왔다.
이 시장과 황 행장 간 교감설에 대해 이 시장측 관계자는 “공식업무 외에 다른 사적인 관계는 없다”며 “서울시장 후보 선정작업은 당에서 하는 것이므로 (이 시장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흥행성 외에 다른 장점이 없는 강 전 장관에 비해 경제전문가적 이미지를 갖춘 황 행장이 나설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한나라당 안팎에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형오 의원측은 “(윤종용 부회장과 황영기 행장) 영입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그 분들이 당내 경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 밝힌다. 윤 부회장이나 황 행장이 아무리 대중적 인지도와 전문성을 겸비했다 해도 당내에서 기반을 다져온 맹형규 전 의원이나 홍준표 의원과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란 평가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경선에 대한 조율이 이뤄질 경우 이들에 대한 영입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당 지도부가 아직 외부인사 영입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 역시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한편 삼성의 전·현직 CEO들과 한나라당 인사들 간의 잦은 접촉에 대해 일각에선 양측이 ‘밀월관계’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거론한다. 현 전 회장이나 윤 부회장 같은 거물들이 한나라당과 접촉할 때 이건희 회장이 당연히 사전에 보고 받았을 것이란 가정 하에서다.
특히 윤 부회장은 이 회장 아들 이재용 상무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건희-이재용 승계 과정에도 관여하고 있다. 황 행장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5년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 재직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신뢰를 두텁게 받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인사들의 한나라당 접촉이 이건희 회장 의중과 무관하지 않다는 추론이 가능한 셈이다.
지난해부터 수사당국과 여권으로부터 맹공을 받아온 삼성이 한나라당과의 밀월을 통해 정치권에서의 방어 논리를 구축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현 전 회장의 경우 개인적 소신에 의한 일이라는 점과 윤 부회장의 정치권 참여 가능성이 희박한 점을 들어 한나라-삼성 밀월관계를 부인한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도 “아직 차기 대선까지 2년 가까이 남았다”며 삼성이 한나라당에 정치적 보험을 들었을 가능성을 일축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