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건조는 연구개발 활동” 세액공제 주장…재판부 “물품구매계약 따른 업무 수행한 것일 뿐”
#거래 완료 5년 뒤, 법인세 환급 소송에 나선 이유
최근 울산지방법원 제1행정부는 한국조선해양 및 현대중공업이 동울산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인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패소 판단을 내렸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은 항소했고, 지난 1월 26일 자로 항소심 사건이 접수됐다.
앞서 2008년과 2010년 현대중공업은 방위사업청과 ‘울산급 배치(Batch)-Ⅰ전투체계 개발사업’ 관련 계약을 맺었다. 울산급 배치-Ⅰ전투체계 개발사업은 1980년대에 건조돼 수명이 초과된 호위함 및 초계함을 대체하는 함정을 건조하기 위해 약 1564억 원이 투입된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사업이다. 삼성탈레스, LIG넥스원, STX엔진이 전투체계 분야별 협상대상 및 우선순위업체로 선정됐다.
방위사업청은 삼성탈레스 등 기업들이 개발한 전투체계를 설치 및 탑재할 수 있는 호위함을 얻기 위해, 호위함인 울산급 배치-Ⅰ 전투체계 1번함 ‘인천함’ 및 정보함인 ‘신천옹함(신기원함)’에 대한 상세설계 및 함 건조 계약을 현대중공업과 맺었다. 호위함은 함대를 호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전투함, 정보함은 정보 수집·분석 임무를 수행하는 함정이다.
현대중공업은 해당 계약에 따라 인천함과 신기원함 각 1척을 상세설계 및 건조해 2013년 해군에 인도했다. 현대중공업은 납품대금으로 3091억 원가량을 지급받았다. 이중 함정 건조비용은 약 2454억 원이었다. 이와 관련한 법인세는 현대중공업의 ‘2012 사업연도 법인세’에 포함돼 고지됐다.
하지만 2018년 현대중공업이 세무당국에 돌연 법인세 환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동울산세무서에 각 함정 건조비용은 세액공제 대상에 해당한다며, 514억 원가량의 법인세를 환급해 달라고 경정청구를 했다. 당초 현대중공업은 2012 사업연도 법인세를 신고할 당시 함정 건조비에 대해 세액공제를 신청하지 않았지만, 뒤늦게 해당 비용이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세무당국은 2018년 각 함정 건조비용은 연구개발비와 상관없는 선박제조원가에 해당한다며 현대중공업의 경정청구를 거부했다. 이에 불복한 현대중공업은 같은 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지만, 조세심판원은 2021년 현대중공업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자 현대중공업이 세무당국을 상대로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됐다.
조세특례제한법(법률 제11614호로 개정되기 이전)에 따르면, 연구‧인력개발비는 해당 과세연도의 법인세에서 공제한다.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의 시행착오나 실패 위험에 세제 지원이라는 보상책을 마련함으로써,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독려한다는 게 이 법의 취지다. 해당 법 시행령에 따르면,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가 적용되는 비용에는 연구개발 전담부서에서 사용된 인건비 및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견본품 비용 등이 포함된다.
#'선도함' 건조는 연구개발 활동인가
소송의 쟁점은 현대중공업의 함정 건조 활동이 연구개발 활동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현대중공업은 함정 건조 및 시험평가 활동은 연구개발 활동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두 척의 함정은 방위사업법에서 규정하는 함정연구개발 과정 중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단계’에서 건조된 선도함으로, 그 자체가 연구개발의 산출물이자 연구개발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제작된 시제품이라는 것이다.
또 현대중공업은 삼성탈레스 등이 개발한 무기체계 등이 함정에 탑재돼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사가 각 함정의 구조 및 위치 등을 설계했고, 각 무기체계와 함정이 연동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개발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은 1세대 호위함인 ‘울산함’과 비교했을 때 자사가 건조한 인천함의 성능 및 사양이 개선됐다는 점도 증거로 제출했다. 울산함은 배수량이 1500톤, 함정길이가 102m에 폭발강화 격벽과 스텔스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인천함은 배수량이 2500톤, 함정길이가 114m에 폭발강화 격벽과 스텔스 기술이 적용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의 함정 건조 활동을 연구개발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방위사업청과 현대중공업이 맺은 계약은 ‘연구·개발 협약’이 아닌 ‘물품구매계약’이고, 현대중공업은 연구개발 활동이 아닌 물품구매계약에 따른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이 독자적인 연구개발 성과를 나타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함정의 성능 및 구조는 함정건조기술사양서, 계약도면 등 현대중공업과 방위사업청의 계약서에 이미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함정이 선도함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함정들은 연구개발에 따른 견본품이 아닌 물품구매계약에 따른 완제품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방위사업청과의 전투기 체계개발계약에 따라 항공기를 제작한 사례에서, 항공기 제조원가 전액이 연구개발비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항공기와 함정은 무기체계 특성과 양산 방식 등이 달라 사건을 같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한국조선해양에는 각하, 현대중공업에는 기각 처분을 내렸다. 법원은 한국조선해양은 사건에 대한 당사자 적격성이 없다고 봤다. 2019년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물적분할하면서, 조선‧특수선‧엔진기계‧발전소 등 사업부문에 속하는 것은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에, 사업 이외의 부문은 존속회사인 한국조선해양에 귀속시켰기 때문이다.
한 세무 전문 변호사는 “2심에서 (현대중공업이) 결과를 뒤집기 쉽지 않을 듯하다. 500억 원은 조세 불복 사건 중에서도 금액이 커서 법원도 부담이 크고 세무당국에서도 사활을 걸고 다툴 것”이라며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항소심에서 방위 산업의 특수성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전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선박 건조 과정에서 모든 방위산업 시스템과 보안 체계를 염두에 두고 기존에 없던 것을 개발했다고 주장한다면 승산이 없지는 않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재판 진행 중이라 따로 말씀을 드리는 게 적절치 않을 것 같다. 항소를 한 상태라 추후 (법원에서) 법리적인 판단이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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